세상의 어느 편에 서야 할까를 고민하다

김혜진 < 딸에 대하여> 민음사

세상의 어느 편에 서야 할까를 고민하다


시몬느 드 보부와르는 ‘제2의 성’에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자로 길러진다.’고 했다. 여자이면서 누군가의 딸인 우리는 ‘딸에 대하여’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딸을 제대로 잘 키우기 위해 누군가의 딸이었던 우리는 끝없이 희생한다. ‘제대로 그리고 잘’이라는 정의는 모호하다. 어느 정도가 ‘제대로’이며 또 어느 정도가 ‘잘’인지를 범주화하기 어렵다. ‘제대로 잘 키운 딸’이라는 말은 딸의 행복을 전제로 깔고 있지만 ‘제대로 잘’의 의미 속에는 엄마의 인생도 들어있다. 어쩌면 ‘제대로 그리고 잘’은 누군가의 딸이면서 딸의 엄마이기도 한 나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제대로 그리고 잘’은 세상의 모든 딸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나는 달랑 하나뿐인 딸을 잘 키우기 위해 교직을 버리고, 교습소, 도배, 유치원 통학버스, 보험세일즈, 구내식당 일을 거쳐 현재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딸이 보통의 일상적인, 누구나 흔히 그러하기를 바라는 범주 내에서 잘 살아주기를 바라지만 딸은 일찍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달은 뒤 독립해버린다. 대학 강사 자리를 찾아 수없이 보따리를 싸며 레인이라는 동성친구와 함께 7년을 보낸다. 배 속에 열 달을 품었던 엄마인 나도 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너희가 아기를 가질 수 있는지, 너희의 성적인 탐닉이 이성끼리 누리는 그것을 흉내라도 낼 수 있는지 묻는다. 어리석은 불장난 했다 치고 적당한 신랑감 만나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적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레인과 딸이 같은 침대에서 잠드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밀고 위층에 세든 사람의 시선에도 예민해진다. 길거리로 차마 쫓아낼 수 없다면 다른 이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은폐라도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딸은 길거리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만방에 떠들어대고 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대학 강사 자리를 사전 통보도 없이 빼앗아버린 것이 부당하다며 악을 쓰고 있다. 길 위에 서 있는 딸. 욕설과 비난이 향하는 자리에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작심하고 뱉어버린 나에게 레인은 자신들의 삶을 왜 존중해주지 못하는지 되묻는다. 이해를 구하지도 않겠다고 다만 존중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요양보호사인 내가 돌보는 젠은 아동 인권 분야에 내로라할 만한 업적을 지닌 인물이지만 지금은 대소변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작고 마른 치매노인에 불과하며 전 재산은 천 조각에 꼭꼭 싸 둔 표창장 2장과 공로패가 전부다. 취재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조차 못하는 젠을 보고 권 과장은 병원 홍보용으로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버린다. 동시에 젠의 간병인인 나에게도 해고를 통보한다.

열악한 요양병원에서 하루하루 죽어가는 젠을 집으로 데려와 돌보는 것은 자신도 딸도 언젠가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동성애자인 딸을 바라보는 엄마이면서 죽어가는 여인의 최후를 바라보는 요양보호사인 나는 쉴 새 없이 세상의 어느 편에 서야 할까를 고민한다. 어느 편에 서 있어야 할지 아직은 모호하지만 그린이 상처 받고 눈물 흘리는 곳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레인의 모습에 점점 마음을 열어간다. 마치 그린이 잘 키운 나의 딸인 것처럼 레인도 누군가의 잘 키운 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같은 여성으로서 그린과 레인이 선택한 삶을 인정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바라게 된다.


살아가면서 적어도 한 번은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느 편에 선다는 말 자체가 모순적이지만 누구의 편이어야 했던 때가 더 많았다. 지난 시간 나는 어느 편에 서 있었을까? 약자이면서 약자들의 편에 선 것도 아니었고 유리한 쪽으로 늘 갈아타면서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고. 굳이 어느 편에 서야 한다면 이익이 되는 쪽에 서야 한다고, 다수와 소수 중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한다면 가능한 다수의 편에 서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나의 딸도 그러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속에 감추어진 딸의 모습이 큰 괴리감으로 다가올 때에야 비로소 내가 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음을 깨달았다. 세상의 편에 서야 할까. 딸의 편에 서야 할까? 세상의 정해진 질서 앞에 질식할 거 같다고 외치는 딸에게 남들은 잘도 견디는데 왜 너만 세상을 힘들어하냐고 질책하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돌아보면 젊은 날. 엄마의 딸이었던 나도 엄마에게 세상 편에 서고 싶지 않다고 항변하던 날들이 있었다. 가두지 말아 달라고,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삶의 매뉴얼을 자꾸만 주입시키려 하지 말라고. 이제 딸은 꼭 그 나이만큼 자랐고 나는 꼭 그 나이만큼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 나는 세상 속에서 세상 편에 서서 모든 것을 바라본다. 젊은 날 ‘딸’로 살아가며 고민해왔던 그 모든 기억들을 망각하고 세상이 원하는 모습대로 나를 재단해가면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자위하는 이중성의 나를 본다.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는 같은 여자이면서도 같은 편에 설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서로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여인들의 이야기다. 정상성이라는 범주로 규정짓지 말고 좀 더 본질적인 측면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주어진 지금을 잘 견디다 보면 언제가 다가올 내일은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딸로 자라고 누군가의 어미가 되고 또 잉태하고 자라고 어미가 되는 모성의 순환 속에 우리는 ‘딸에 대하여’ 실은 ‘세상의 모든 여인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애정과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 책은 묻고 있다. 모두가 젠처럼 살 수 없고 모두가 그린이나 레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속에서 ‘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라도 세상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지는 말아야 한다. 내 안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딸, 내 안의 것들에 집중하면서 내 안에서 들려오는 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살아가야 한다.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며 레인과 그린이 맞서며 살아가야 할 세상, 젊은 날 무엇인가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나와 젠이 늙어가며 맞이하게 될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딸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세상의 모든 여인들이 서로의 숨결을 나누며 저마다의 삶을 존중받으며 아름답게 살아갈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엄마인 내가 그린의 일인 시위 현장에 한 걸음씩 다가가듯. 더디더라도 전진하는 기다림 속에 언젠가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결국 누군가의 딸이었던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끊임없이 ‘딸’에 대하여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며 그들의 걸음에 동참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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