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그 불을 댕길 수 없다/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우리는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댕길 수는 없다.”
카카푸 인디언 할머니의 말 중에서
우리 몸 안의 성냥갑.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댕길 수 없다... 삶은 끝없이 불을 끌어당겨 타오르는 작업이다. 우리 안의 성냥을 발화되지 못한 체 버려둘 수는 없지 않을까? 궁극적으로도 타서 소멸되는 게 성냥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삶을 젖은 성냥 인체로 혹은 태우지 않은 성냥 인체로 방치해두는 것은 삶에 대한 직무 유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아침. 아주 오래전 읽었던 멕시코 소설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다시 집어 든다.
로사우리 누나와 페드로의 결혼식을 위해 티타는 음식을 준비한다. 차벨라 웨딩케이크, 사랑하지만 결혼할 수 없는 페드로를 생각하며 만든 차벨라 웨딩케이크를 먹은 하객들은 케이크를 한 입 먹은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힌다. 좌절과 극심한 슬픔에 사로잡힌 하객들은 저마다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단체로 구토를 한다. 그 케이크를 먹고도 토하지 않은 이는 티타뿐이었다. 16살의 티타. 페드로의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데라가르사 가문의 마마 엘레나는 집안의 막내딸은 무조건 늙은 어미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운명이라며 티타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느닷없이 2살 위인 로사우라 언니가 페드로의 신부가 된다. 페드로는 티타와 결혼은 못하지만 같은 집에 살면서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을 늘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로사우라와의 결혼을 받아들인다.
티타가 페드로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은 팔팔 끓는 기름에 도넛 반죽을 집어넣었을 때의 느낌이었다. 수탉 200마리를 거세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티타는 거세할 상대는 수탉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며 울부짖는다 집안의 요리를 책임지는 나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부엌을 도맡게 된 티타, 어느 날 티타에 대한 사랑을 참을 수 없던 페드로가 티타에게 장미 꽃다발을 선물하는데 그 장미꽃을 꽉 끌어안자 티타의 가슴에서 피가 흐르고 그 피로 장미는 더욱 붉게 물든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고통과 연인의 뜨거운 피가 스며든 장미는 폭발적인 최음제가 된다. 그 장미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먹은 언니 헤르트루디스가 목욕을 하다가 발가벗은 채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간다. 육감적인 해르트루디스가 까맣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들판을 달려간다. 뜨거운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헤르트루디스의 모습에 반한 혁명 대장 후안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헤르트루디스는 후일 멕시코 혁명 여전사가 되어 당당한 모습으로 귀향한다.
로사우라와 페드로 사이에 태어난 아들 로베르토의 죽음 때문에 마마 엘레나에게 대들다 비둘기장에 갇혀 반미치광이가 된 티타는 데라가르사 가문의 주치의인 브라운이 존중 어린 사랑을 받으며 정서적 안정을 되찾는다. 브라운 박사의 마차를 타고 떠나는 티타의 어깨 위로 긴긴밤 불면증에 시달리며 덮었던 총천연색 어마어마한 크기의 담요가 웨딩드레스처럼 바닥에 끌려간다.
카카푸 인디언 출신 할머니는 티타에게 “우리는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댕길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티타 안의 성냥에 불을 지펴줄 사람은 현실적으로는 브라운 박사였지만 페드로에 대한 사랑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였다. 티타는 자신의 정열에 불을 지펴줄 누군가가 멋지고 온화하며 예의 바른 존 브라운이기를 바라면서도 존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토록 오랜 시간 가혹하게 티타를 괴롭힌 어머니 마마엘레나의 죽음. 그녀의 장례식에서 티타는 일생동안 자신을 억압하고 거세시켰던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상대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호세 트료비뇨와의 사랑을 거부당했던 것 가엾은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애도했다. 초콜릿과 주현절 빵을 만들던 9월, 잠깐이라도 좋으니 아주 오래전 언니들과 살았던 따뜻한 추억을 돌이켜 보고 싶었다. 주현절 빵 속의 인형을 발견하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 다지만 이미 어른인 그녀가 정당하지 못한 희망을 바랄 수는 없었다. 티타는 삶에서 수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구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선.
브라운은 평화, 이성, 행복, 차분함을 지녔지만 그것만으로 삶을 채울 수는 없었다. 브라운 박사의 정중한 청혼을 거절하고 마음의 불을 찾는다. 마마엘레나가 쓰던 침대에서 페드로와 사랑을 나누며 사회적으로는 용납되지 않는 연인으로 살아간다. 로사우라와 페드로 사이에 태어난 딸 에스페란자에게는 여자로서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로사우라가 병으로 죽고 페드로로부터 정식 청혼을 받는다. 무려 20년의 기다림 끝에 맺어진 티타와 페드로 부부. 나차가 꾸민 수많은 촛불이 밝혀진 방에서 아름다운 첫 밤을 보내던 중 페드로는 심장마비로 죽고 티타는 인을 집어삼킨다. 티타의 뜨거운 열정과 인이 반응하여 농장에 불꽃이 튀고 엄청난 규모의 불이 며칠 째 꺼지지 않았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부엌에서 매월 만들어지는 멕시코 전통 음식을 중심으로 여성의 억압과 착취,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제목은 우리나라에서 붙인 제목이고 멕시코 원전에서는 초콜릿 음료가 부글거리며 끓는 소리를 제목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음식의 재료를 다듬고 재료들끼리의 조화, 불의 강도, 만드는 이의 마음이 어우러지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요리가 탄생한다. 티타의 부엌에서 티타의 손을 따라 함께 움직이며 맥시코 전통 요리를 함께 요리하며 맛보았다. 다소 주술적이고 미신적인 의미들을 중간중간 끼워 넣어 사실적인 사건들을 몽환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로 바꾸어 놓은 작가의 감각에 감탄하게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처럼 마마엘레나에게 있어서 티타라는 존재는 자신의 좌절된 사랑에 대한 한풀이 대상이었다. 호세 트료비뇨와의 좌절된 사랑을 숨기며 살아온 마마엘레나. 티타가 태어나던 날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심장마비로 죽는다. 어찌 보면 그녀는 티타에게도 좌절된 사랑을 대물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티타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가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페드로와의 사랑을 이룬다. 부엌은 티타가 삶을 끓이는 성소였다. 어떤 음식은 사랑을 얻게 하고 또 어떤 음식은 자유를 쟁취하게 한다. 어떤 음식을 지난 추억을 소환하게 한다. 누구나 마음 안에 성냥갑 하나 품고 산다고 하는데 그 안의 성냥들이 젖지 않도록, 차가운 입김들이 닿아 그 성냥갑이 적셔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당신 안의 성냥들을 잘 지켜야만 한다고 저자 라우라 에스키벨은 말한다. 당신 안의 성냥들의 안부를 묻는 아침이다.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