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 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

주오.... 박완서 티베트 여행기 <모독 > 중에서 /특별판

1.22일이 박완서 작가 타계 10주기다. 출판사마다 그녀의 책들 개정판을 내거나 미발표 원고를 긁어모아 소설집, 에세이집을 발간하였다.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10주기라니 세월의 빠름을 실감한다. 그녀의 미소를 가리켜 ‘박꽃 같은 미소’라 한다. 박꽃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그녀의 미소와 박꽃을 머릿속에서 연결 지어볼 뿐이다.

20210121_200646.jpg

그녀의 노란집에서 / 사진작가 구본창


『나목』으로 등단하여 나목의 계절에 나목으로 돌아간 그녀를 생각한다. 그녀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그 남자네 집, 그 여자네 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등

그녀의 산문집과 소설집은 어느 출판사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지만 그녀의 티베트 여행기 『모독』은 의외로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녀의 티베트 여행기는 민병일 작가의 제안으로 세계문화예술 기행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된 곳이 많아 사진 찍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박완서 작가는 서문에 언급한다. 민병일 작가의 손을 거쳐 티베트 초원의 바람 냄새, 푸른 공기, 설산의 서늘함, 시리도록 푸른 하늘,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소, 오체투지의 정신으로 절을 하는 여인, 주술과 신비와 야성이 어우러진 사진이 『모독』에 들어있다. 1996년에 첫 출간되었고 2014년 개정판, 그리고 2021년 박완서 작가 추모 특별판이 최근 문학판에서 출간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 같다.

햇빛을 보면 그걸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바늘쌈을 풀어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엔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

……

티베트 하늘의 푸르름은 뭐랄까,

나의 기억 이전의 하늘이었다

본문 중에서 - 박완서 작가의 말 -


그리움을 빚는 문학, 그리고 티베트 여행

시든 소설이든 문학이란 예술은 그리움을 빚는 공간이다.

티베트는 선생님의 전생이 불러낸 그리움 같았다. 그래서 선생님은 티배트 하늘의 푸르름 앞에서 “나의 기억 이전의 하늘이었다.”라고 고백한 게 아닐까?

에테르 혹은 고대 그리스에서의 아이테르는 어원상 ‘항상 빛나는 것’을 뜻하는데 ‘거기로부터 사라질 리가 없는 하늘빛’을 의미한다. 지상에 산 모든 것은 시간의 속절없음 앞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인생이 그렇고 예술이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우주에서 푸른 별이 빛나는 한, 문학과 예술이 꽃과 나무와 공기처럼 존재하는 한, 티베트가 지워지지 않는 한, 박완서의 『모독』은 에테르처럼 아이테르처럼 남아있지 않을까 그것이 문학의 은유가 주는 힘이지 않을까.

2014년 민병일 서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10121_195310 (1).jpg

2021년 추모 10주기 특별판은 티베트 고원에 앉아 수첩에 메모하시던 박완서 선생님을 모티브로 표지 디자인이 바뀌었다.

20210121_195221.jpg

렌즈 앞에서 포즈를 취하지 않는 사람의 사진에선 피사체가 갖는 내면의 힘이 느껴진다.

티베트에서 슬라이드 필름에 박힌 박완서 선생님의 모습은 고원 풍경보다 강인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터키석 빛깔 영롱한 호숫가를 묵상하듯 산책하는 선생님 사진이 그렇고, 흙바람 부는 고원에 앉아 수첩에 메모하시는 선생님 사진이 그렇다. - 중략 -

고개만 돌린 자세로 티베트 고원 해발 5,200미터 얌드록초 호숫가를 산책하는 선생님을 향해 황급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줌으로 풍경을 당긴 뷰파인더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검은 개 한 마리가 선생님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현자의 모습이라고 할까. 선생님 생의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Edle Einfalt und stille Größe”가 묻어나는 이 사진은 작가로서의 품격과 인간적인 소박함이 순간에 담긴 참 아름다운 사람 풍경이다. - 중략 -

사진은 우연성의 미학이며, 롤랑 바르트 역시 사진의 푼크툼(punctum, 라틴어로 점點)은 화살처럼 날아와 우리의 가슴을 찌르고 상처 입히는 우연성이라고 말한 바 있다. 티베트 고원에 앉아 무엇인가 수첩에 쓰시던 선생님 사진을 보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을 찌르는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이 느껴진다. 선생님 가신지 10년이 되었지만 사진을 볼 때마다 상처를 찌르는 비수의 정체는 헤아릴 길이 없다.

세상살이가 때때로 꿈결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선생님과 함께 했던 티베트 여행을 생각하면, 언제, 어떻게, 야생으로 가득한 그 길을 걸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너무도 엄혹한 자연환경 때문에 내 생애에서 가장 고된 여행이었다”라고 하신 선생님 수첩엔, 아마도 기억 이전 태초 같던 초원의 길과 햇살 한 줌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적혀있을 것만 같다.

2021년 추모 특별판 민병일 서문 부분 발췌



『모독』이란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책 표지를 넘기자마자 제일 먼저 나오는 단 두 줄의 문장 때문이었다.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 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 주오."

이 두 줄의 문장이 가슴을 심하게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여행 간 이들을 용서하지 말아 달라는 작가의 고백이 진정성이 느껴져서였다. 박완서 작가가 이 여행기의 제목을 왜 『모독』이라 지었는지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모독』 P 220을 보면

‘밖으로 나와 보니 이 작은 도시 여기저기 뒹구는 게 화석 연료의 마지막 쓰레기인 비닐 조각, 스티로폼 파편, 찌그러진 페트병 따위 등 생전 썩지 않는 것들이었다. 식당 주인을 나무랄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결의 땅엔 모독이었으니....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 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 주오. 랏채를 떠나면서 남길 말은 그 한마디밖에 없었다.’ 고 적혀있다.


20210121_225928.jpg

여행이라는 목적으로 순결한 것들을 기어이 타락시키고야 마는 우리들의 야만을 작가는 그곳에 대한 ‘모독’이라는 단어로 일갈한다. 과시하듯 포장된 여행서의 대부분은 우리의 욕망을 부추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모독’이란 단어만큼 딱 어울리는 여행서의 제목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곳들에 우리가 남긴 흔적들이 거기 그곳에 사는 모든 생명들에게는 ‘모독’인 것이 분명하니까.


P. 53-54 지방에 사는 티베트 사람들은 라싸의 조캉 사원(大昭寺)과 포탈라 궁을 일생에 한 번 참배하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걸어서 순례길에 나선 순례자들은 멀리 포탈라 궁의 아름다운 금박 지붕이 보이면 거기서부터 오체투지를 시작해 라싸에 이른다. 우리 상식으로는 걸어서 거기까지 오는 데 며칠, 몇십 일이 걸렸으면, 목적지가 바라보인다 싶으면 힘이 나서 뛰든지 조급한 마음에 차라도 얻어 타고 싶으련만 온몸을 던져서 땅을 가는 오체투지라니, 시간관념의 차이일까, 목적과 과정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일까.


P. 154 마을 사람들은 우리하고 동시대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건 뒤떨어졌다는 뜻하고는 다르다. 거기에는 우리가 오래전에 잃은 자연과의 일치와 교감에서 오는 근원적인 평화와 행복감이 있을 것 같다.

20210121_195754.jpg

P. 193-194 이 거친 산야를 바람처럼 스쳐가는 이방의 여행자가 어림짐작하기로는, 티베트 민족은 인간 정신의 저 아득한 심연, 그 극한까지 도달했다가 그 밑바닥을 박차고 높이높이 부처라는 깨달음의 최고 경지까지 상승할 수 있기를 꿈꾸는 민족처럼 여겨진다. 그건 혹독하게 단련된 정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것이 평준화를 지향하는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그들의 독특한 정신의 깊이와 높이는 존경받아 마땅하리라.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 구원이 차이가 아닐까. 외부와 단절된 독특한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고루 의식이 충족되고 행복을 향유할 수 있었을 적에 누릴 수 있던 정신문화였다.

P 47 하나같이 무욕하고 겸손하고 착해 보이기만 하는 이곳 사람들을 바라보며 문득 혼란스러워졌다. 부처와 인간, 성(聖)과 속(俗)이 헷갈렸다. 내가 보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저 사람들이 바로 부처로 보이고 절 안의 부처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저들이 부처에게 그리도 열렬하게 그리도 겸손하게 갈구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인간적인 욕망을 초극하려고 몸부림치듯이 저들은 저절로 주어진 성자 같은 조건을 돌파하려고 몸부림치는 게 아닐까 하고


P 40 티베트의 절은 참배객이 바치는 향이나 초가 아니라 버터기름이라서 그런지 우리의 절과는 공기부터 다르다. 그 냄새는 강렬하고 누릿한 게 동물을 태우는 냄새에 가깝고 그을음이 나서 목이 아리게 공기가 탁하다. 참배객들은 손에 손에 마니차와 버터기름을 들고 있을 뿐 돈도 여기저기 아낌없이 바친다. 그들이 바친 기름은 커다란 양동이 같은 그릇에 합쳐져 그 안에 수많은 심지를 꽂아놓고 온종일 태운다. 그 때문에 녹아내린 기름으로 바닥에는 신바닥이 눌어붙을 것처럼 끈적끈적한 더께가 앉아 있다. 그 바닥 위에서 참배객들은 벌레처럼 몸을 극도로 낮추는 오체투지로 참배를 한다.

20210121_195501.jpg

인상적인 사진 중 하나는 여인이 온몸을 낮추며 오체투지로 절을 하는데 그 옆에 커다란 누렁이 한 마리가 다리를 쭉 뻗고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는 사진이다. 누렁이는 마치 잠을 자면서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리석은 중생. 너는 아직도 멀었구나.’ 이미 해탈한 누렁이가 꿈속에서 증얼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여인의 새까만 맨발, 땅바닥에 온 몸을 밀착시킨 그 간절함은 무엇을 향한, 무엇을 위한 염원일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아주 오래된 미래가 그녀의 발바닥에 있었다.



박완서 작가 10주기를 맞이하여 다시 『모독』을 펼쳐본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더 모독스러웠을까를 생각한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행한 모든 행동과 내가 무심코 뱉어버린 말들과 내가 지닌 편견들과 욕망과 이기심.... 그런 모든 것들이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에 행한 모독인지를 헤아려볼 시간이다. /려원

keyword
이전 16화우리는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