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우리는 불행해질 권리를 원합니다
멋진 신세계
이 책의 원제가 Wonderful world가 아닌 Brave new world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Brave에 new를 붙이면 용감한의 의미가 아니라 반어적 의미로서의 ‘멋진’이란 의미가 된다. 『멋진 신세계』라는 표제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5막 1장에 의거하지만 과학에만 맹목적으로 의존한 진보와 발달이 암담한 미래를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하기에 꼭 맞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멋진 신세계』는 윌리엄 헉슬리가 1932년 발표한 작품으로 인공부화연구소에서 유전자 조합으로 태어난 미래 인간들에 대한 공상과학 소설이면서 풍자소설이다. 기계 문명의 극한적인 발달을 그리고 있으며 동시에 인간 스스로 발견한 과학의 성과 앞에 인간이 노예화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상실하는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
인간들은 αβγδε의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소수 리더그룹, 보통 계급, 천한 노동자 계급, 역할에 따라 옷 색깔과 직업, 거주지가 다르다. 수정란 시기부터 α plus계급으로 부화될 시험관에는 책, 지식, 아름다운 음악, 꽃향기, 새소리 등의 조건이 주어지나 하등 한 계급은 척박한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훈련을 받는다. 척박한 환경에 대한 각인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태어난 그들은 현실을 불평하지도 않으며 더 높은 계급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의 계급에 합당한 일만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문명국의 지도자는 사회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사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정해진 계급 간의 명확한 위계, 계급에 잘 적응할 기질, 심리적 요인까지도 통제하고 있다, 문명국 사람들은 ‘소마’라는 환각제를 배급받으며 철저히 쾌락을 즐기며 살아간다.
문명국에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불법이다. 여러 명이 동시에 교제를 해야 한다. 인공 배양되기 때문에 부모 자식의 관계가 성립할 수 없고 ‘만인은 만인의 것’이라는 기치 하에 극단적 자유연애, 완전한 잡혼이 장려되는 사회다. 욕망도 격정도 불안도 없다. 소마를 먹으면 모든 것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소마는 쾌락의 묘약이며 만병통치약이다.
보카노프스키 법에 따라 인공 배양되지 않고 인간의 모태에서 태어난 사람을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두 사람 사이 사랑의 결과 태어난 인간은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문명국의 방침 때문이다.
감마 계급의 린다와 연구소장 사이에 실수로 태어난 야만인 존과 알파 플러스 계급에 속하면서도 하등 한 신체 구조를 지니고 태어나 열등감에 시달리는 버나드 마르크스가 완벽하게 통제된 <멋진 신세계>를 뒤흔들어 놓는다.
버나드는 야만인 ‘존’과 린다를 데리고 문명국으로 돌아와 연구소장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린다는 헬기 추락사고로 인해 문명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야만국에서 존을 낳아 기르며 뚱뚱하고 추한 외모로 늙어간다. 린다와 존은 야만국에서도 소외당하며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존은 행복과 고뇌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고난 없이 욕망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격정, 영혼의 동요를 수시로 느끼는 청년 존은 우연히 셰익스피어를 탐독하면서 더욱더 인간 내면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된다.
버나드를 따라 문명국으로 돌아온 린다는 ‘소마’에 의지하며 환각 상태에 빠져 지낸다. 존은 문명국의 금기어인 ‘아버지’라는 말을 연구소장에게 꺼냄으로써 그곳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존과 전체주의적 문명국 통치자 무스타파 몬드와의 대화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존은 어머니 ‘린다’가 죽자 ‘소마’를 창문 밖으로 집어던지며 “이것이 바로 진짜 야만이다.”라고 울부짖는다. 그들이 문명이라 부르는 것이야말로 야만이라는 존의 외침은 옳다.
멋진 신세계, 문명국에 사는 어느 누구도 문명국의 현실을 비판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은 조건반사적으로 학습되도록 프로그램화되어있기에 존의 일탈은 문명화되지 못한 야만인의 야만적 행동으로 치부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까지 출동한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 야만인이란 개념은 통제된 조건이 아닌 인간의 몸을 통해 무계획적으로 탄생된 이들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생로병사의 모든 것들을 거치는 종족이다. 문명사회에 길들여지는 것이 두려운 존은 그 모습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채찍질하는데 그 행동마저도 문명국에서는 조롱거리가 된다. ‘야만인의 자책’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에 이르고 존의 일거 일투족은 감시당한다. 존은 투명 유리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들이 관찰당하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에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이 소설이 1932년에 쓰인 소설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꽤 오래전 소설인데도 최근 소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쩐지 이런 사회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만 같아서다. 어떤 이는 이런 사회로 가기에는 사람들의 도덕이나 윤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헉슬리가 이 소설에서 그려낸 미래는 지나치게 디스토피아적이다고 말한다.
‘born in with silver spoon’이라는 말처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새로운 계급 문화에 비춰볼 때 현재는 1932년 헉슬리가 그려낸 ‘멋진 신세계’와 별 차이가 없다.
우리 사회가 만든 보이지 않는 인공부화기 안에서 금수저 계급과 은수저 계급이 최상의 조건에서 배양된다, 동수저와 흙수저 계급도 경제적, 문화적 수준에 맞게 꼭 그만큼의 삶의 질을 누리며 성장한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하나의 거대한 인공 배양소가 아닐까?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고 개천의 피라미, 붕어가 더 좋은 세계로 옮겨질 일도 거의 없다. 간혹 드물게 뛰어난 피라미와 붕어가 더 높은 곳으로 신분 상승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갈수록 계급의 상향 이동은 현실적으로 볼 때 어렵다. 기득권 세력은 개천에서 올라온 능력자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과 같은 계급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멋진 신세계란 없다. 우리가 몸을 담고 사는 세계는 문명국 사람들이 보기에 무능해 보이고, 더럽고 추하며, 통제 불가능한 인간 야만인 ‘존’이 사는 세계다. 총통 앞에서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존의 외침은 건강한 야만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존에게 총통은
“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라며 냉소적으로 응수한다.
사실 현대인들에게 불안 요인은 수없이 많다. 사고, 질병, 가난, 실직, 이별, 좌절...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뿐이다. 존은 그 모든 불확실한 것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지 않는다. 존은 행복해질 권리만큼이나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헉슬리가 작품 속에서 구현한 ‘멋진 신세계’에는 불행해질 권리는 당연히 없지만 그렇다고 행복해질 권리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사랑, 순수, 아름다움, 소멸에 대한 수용, 존중, 인정과 배려가 없는 사회는 더 이상 멋진 신세계가 아니다. 소마를 먹고 환각에 빠진 채 자신을 망각해버리는 곳.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곳, 불행한지 행복한지에 대하여 의문조차 품을 수 없는 그곳이야말로 야만의 세계다.
획일화된 문명, 지나친 경쟁, 기형적인 엘리트 양산, 계급과 계급 간 격차 심화. 만인은 만인의 것이라는 전체주의적 발상, 인간 존엄의 상실, 무기력, 무제한적 쾌락...
나는 헉슬리의 1932년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보았다. 그리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