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 카프카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시골의사』는 슬프고 고독하고 허무하다. 1919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알 수 없는 어떤 근원적인 힘에 의해 절망에 빠지는 인간의 모습을 ‘시골의사’를 통해 보여준다.
시골의사는 야간 비상벨이 울리자 눈보라 치는 날 먼 곳에 왕진을 가야 한다. 마차는 있으나 늙은 말은 죽어버렸고, 급히 이웃에서 말을 빌리려 하지만 빌리지 못한다. 자신의 곁에서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젊고 아름다운 로자는 말을 빌리러 종종걸음 치지만 헛수고다. 바로 그때 느닷없이 나타난 한 남자가 말을 빌려주는데 그 남자는 대가로 로자를 요구한다. 놀란 로자는 허둥지둥 집 안으로 달아나 빗장을 걸어 잠그고 당황한 시골의사는 왕진을 포기할지를 고민하는 순간 사악하고 눈치 빠른 그 남자가 말들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친다. 말들은 미친 듯 질주한다. 시골의사의 허름한 집. 가여운 토끼 같은 젊은 간호사 로자. 탐욕스러운 늙은 사내. 시골 의사는 멈추지도 못하고 미친 듯 달리는 말 위에서 괴로워한다.
그 험한 눈보라를 헤치고 도착한 곳. 어이없게도 환자는 생각보다 멀쩡하다. 다시 돌아오려다 우연히 발견한 환자 몸의 상처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다. 자신의 의술에 대한 실망, 로자에 대한 미안함으로 시골 의사는 황급히 말을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말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다급한 마음에 말들을 서투르게 재촉하자 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그 쏟아지는 눈 속에 시골의사는 남겨진다. 폭설이 쏟아지는 마을. 저항조차 못하는 무기력한 로자, 아무도 찾지 않는 눈길에서 외로이 죽어갈 순박한 시골 의사의 모습이 슬픈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리에 맴돈다.
이름도 나와있지 않고 단지 시골의사로만 등장하는 주인공은 세 번 실패한다. 첫째는 아름다운 하녀 로자.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성실한 하녀의 가치를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로자는 낯선 마부의 희생양이 되었다. 두 번째는 눈보라를 헤치고 왕진을 갔으나 환자의 깊은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다. 세 번째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자신,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 말들은 길을 잃고 자신의 겨울 외투는 손이 닿지 않는 마차의 끝자락에 걸쳐있다.
실패라는 표현은 어쩌면 부적합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실패는 내가 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느냐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쓰이는 표현인데 이루지 못한 원인이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일 때 그것을 '실패'라 칭할 수 있을까. 실패라기보다는 레뷔나스가 말한 근원적 무력감 ‘할 수 있을 수 없음’이라 표현하는 게 적합할 듯싶다. 세 가지 사건을 놓고 보면 로자의 구원은 자신의 의지로 가능한 것일 수 있으나 치유 불가능한 환자, 길을 잃고 날뛰는 말, 엄청난 눈보라는 시골의사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기뻐하라, 그대들 병든 자여
의사를 너희 침대 위에 눕혔나니!
결코 나는 이 모양으론 집에 갈 수가 없다. 나의 찬란한 의술은 사라져 버렸다. 후계자가 나의 자리를 넘본다. 그러나 소용없다. 왜냐하면 그가 나를 대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의 집에서는 구역질 나는 마부가 미쳐 날뛰고 있다. 로자는 그의 제물이다. 나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벌거숭이로 이 불행한 시대에 몸을 내맡기고 현세의 마차와 현세의 것이 아닌 말을 몰고 이 늙은 나는 빙빙 돌고 있을 뿐이다. 나의 털외투는 마차 뒤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그것에 손이 미치지 않는다. 환자 주위의 불한당 중에서 움직일 수 있는 그 어떤 놈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속았구나! 속았구나! 한번 야간 비상 종이 잘못 울린 것을 따랐더니 결코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구나. - <시골의사 > 마지막 부분 인용
‘현세의 마차와 현세의 것이 아닌 말을 타고 늙은 나는 빙빙 돌고 있다.’는 표현에 카프카가 이야기하고 싶은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있다. 현세의 마차, 현세의 나는 유능하고 친절한 시골의사. 그러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세의 것이 아닌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있다. 게다가 눈보라 속에 반드시 입어야 할 털외투는 마차 끝자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카프카의 작품 『시골의사』는 페이지를 다 덮고 나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소설이다. 그의 작품 『변신』에서도 성실한 영업사원 그레고르 잠자가 아무 이유 없이 벌레가 되어 죽어가듯. 이 소설에서도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는 시골의사가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생을 잃어버린다.
이 소설을 우리의 삶에 견주어 생각하면 우리가 원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질주하는 말 위에 올라타고 있다. 누군가가 우리 대신 말 엉덩이에 채찍을 휘두른다. 우리는 얼떨결에 말 엉덩이에 매달려 질주한다. 돌아보니 평소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생이 뒤에 남아 있다.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곱고 소중한 것들이, 너무 사소해서 별것 아니다고 생각해버린 것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우리가 말 위에 올라타기 전까지는 그저 지루한 일상이고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들이 미친 듯 질주하는 말 위에 올라 돌아보니 슬프도록 소유하고 싶은 것이 된다. 소유하고 있었으나 소유의 기쁨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들이 이제는 미치도록 소유하고 싶어 진다. 우리는 날뛰는 말 위에 올라타 있고 분명 어디론가 달려가고는 있으나 그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도착지에서도 기대와 어긋난 황당한 일들이 기다리던 시골의사 이야기처럼 우리들의 삶도 그러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놓쳐버린 일상들이 도자기 파편처럼 부서지지 않도록,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멀어지는 것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지 않도록 ‘지금’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우연히 울린 야간 비상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시골의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