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헤밍웨이..우리는 날마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 바다로 간다
“늙은 어부가 돛단배에서 홀로 4일 밤낮을 청새치와 싸운다는 줄거리야. 카를로스 영감의 배를 타고 이 얘기가 그럴듯한 지 바다로 나가보려고 해. 다른 배는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긴 싸움을 하는 중에 그가 한 모든 행동과 생각들이 그럴듯한 지 말이야. 제대로만 해내면 정말 멋진 이야기가 될 거야, 작품이 되겠지!”
1939년 헤밍웨이가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헤밍웨이는 작품을 구상하고 실제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스스로 늙은 어부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했다. 쿠바의 아바나 근처에서 바다낚시를 즐겼던 헤밍웨이의 개인적 경험이 ‘노인과 바다’에 잘 드러나 있다.
‘노인과 바다’는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고전이다. 사실 ‘노인과 바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1950년대 초 멕시코만에서 고기를 잡는 노인 산티아고와 그를 변함없이 도와주는 도제 소년 마놀린이 주요 인물이다. 노인이 80 여 일간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자 사람들은 어부로서의 운이 다한 것이라 생각했고, 마놀린도 부모의 강요로 노인에게서 떠나 다른 배로 갈아탄다. 85일째 혼자서 배를 타고 나간 산티아고는 5.5m의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다. 혼신을 다하여 청새치를 잡는 과정과, 배보다 60cm나 더 큰 청새치를 배에 붙들어 매고 몰려드는 상어 떼와 사투를 벌이는 3박 4일의 여정이 소설의 주축이다.
처음에는 힘들게 잡은 청새치를 상어로부터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청새치의 대부분을 상어 떼에게 빼앗긴 다음부터는 항구로의 안전한 귀항을 위해 노인 자신과 사투를 벌인다. 노인은 앙상한 뼈만 남은 고기를 배와 함께 항구에 남겨두고 집에 돌아와 사자 꿈을 꾼다.
산티아고는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고 말한다. 이 문장에 대한 민음사 번역의 해설은 파멸(destroy)은 물질적 가치, 패배(defeat)는 정신적 가치를 상징한다고 보면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 노인은 물질적으로는 실패하였지만 험난한 사투에서 살아남았으므로 패배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덧붙이자면 인간은 승리하도록 창조된 것도 아니고 패배하도록 창조된 것도 아니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며 인간 삶의 과정은 파멸을 피하고자 하는 노력, 패배에 대한 저항, 더 높은 곳을 향한 이상을 품고 살아간다. 노인의 거대한 청새치 잡이는 물질적 가치로 환산하면 얻은 게 하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인과 청새치의 사투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청새치 고기는 상어의 몫이 되었지만 노인은 삶에 대한 혹은 어부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한다. 노인은 상어 떼와의 사투에서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앙상한 뼈 밖에 없는 물고기를 끌고 왔지만 이미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는 상어 떼 덕분에 가벼워져서 끌고 가기 좋다고 위안을 삼았다.
노인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또 다른 예는 젊은 날 시엔푸에코스 출신의 건장한 흑인과의 팔씨름 시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미 노인의 손이 8센티미터나 기울어 패배가 확정될 뻔했음에도 최선을 다해 원점으로 돌려놓았고 꼬박 하루에 걸친 대결은 결국 노인의 승리로 끝났다. 겉으로 보이는 불리한 조건과는 달리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노인의 정신력이 승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 ~ 했으면 좋을 텐데”라는 가정이 번번이 등장한다. 무언가를 가정한다는 것은 ‘지금 그것이 여기 없다.’를 전제로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에 대한 결핍의 원인을 주변 상황에서 찾으려 한다. ‘~이 없어서 ~을 할 수 없다.’로 귀결 짓는 것은 참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 걸. 운이 있다면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우선은 지금 하려는 일에 집중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 세상 무엇보다 나쁜 것은 희망을 버리는 것이며,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야. “라고 말한다. 결핍에 치중하는 대신 기회가 찾아올 때를 위한 대비,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언젠가 올 희망을 기다리는 산티아고의 모습은 아름답다. 노인은 지난날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어부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직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결핍을 극복할 최선의 대안임을 보여준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사자 꿈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니체는 낙타-사자-어린아이의 단계로 인간의 발달과정을 설명한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해야만 한다’는 복종과 당위로서의 인간, 사자는 ‘~할 것이다. 하고 싶다.’라는 의지로서의 인간, 어린아이는 삶 자체를 유희로 즐기는 인간의 단계이다. 헤밍웨이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어부 산티아고가 사자 꿈을 꾸는 장면을 자주 표현함으로써 삶에 지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지닌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다른 등장인물과의 대화보다는 노인의 독백으로 스토리를 전개해나간다는 점이다. 망망대해에서 노인은 혼잣말로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데 때론 격려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독백이라 해도 스스로 입을 통해 뱉은 말이 다시 청각 기간을 통해 자신의 귀로 들어오는 과정을 통해 노인은 자신의 생각을 정립한다. 타인과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과 나누는 대화는 노인의 생각과 행동을 구체화시킨다.
바다는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하는 곳이다. 뜻하지 않은 일, 급변하는 날씨, 바닥난 체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변수들에 당당히 맞서며 살아가야 한다. 3박 4일의 사투가 끝나고 돌아와서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무용담을 허풍을 섞어가며 자랑하지도 않는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면 그는 또다시 바다로 달려갈 것이다. 설령 어부로서 그에게 주어진 행운이 85일째가 마지막이었다고 해도 산티아고는 계속해서 바다로 갈 것이고 그 바다에서 자신의 삶을 완성해갈 것이다.
날마다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3박 4일 동안 바닷가에서 물고기와 사투하는 노인의 이야기는 진부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노인과 바다’가 아직까지도 고전으로 회자되는 것은 산티아고를 통해 한 인간의 고통과 불안, 좌절과 극복, 격려와 희망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고기를 잡는 직업인으로서의 어부 산티아고, 이면적으로는 바다에서 삶을 낚는 어부다. 삶을 낚는 어부는 배와 함께 낡아가더라도 바다를 포기할 순 없다. 바다에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고 패배하지 않는 정신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우리도 그와 함께 배를 타고 나가 그의 여정에 동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노인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투영해서 보게 될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는 삶을 낚는 어부에 투영된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백 명이 읽으면 백 권의 책이 되고, 만 명이 읽으면 만 권의 책이 된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오직 한 편의 ‘노인과 바다’를 썼지만 이 책을 읽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우리는 이미 자신만의 ‘노인과 바다’를 새로 쓰고 있을 것이다. 당신 앞에 펼쳐진 바다로 거침없이 나아가 삶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헤밍웨이가 독려하고 있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