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부락
닉은 숙부 조지와 함께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인디언 부락으로 향한다. 난산인 인디언 여인의 출산을 돕기 위해서다. 2층 침대의 아래 칸에는 여자가 누워있었고 침대 위 칸에는 여자의 남편이 누워있었다. 여자의 남편은 사흘 전에 도끼에 다리를 크게 다쳤다.
“ 이 여자는 지금 아기를 낳으려는 거야. 닉. 여자가 소리를 지르는 건 진통 때문이야.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고 싶고 어머니도 낳아야 한다. 어머니의 온몸이 근육이 아기를 내보내려고 힘을 쓰고 있는 거다.”
“아버지, 빨리 약을 주세요,”
“마취약은 가져오지 않았다. 아빠의 귀에는 여자의 고통소리가 들리지 않는단다. 아기가 태어나는 일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
아버지는 제대로 된 수술 도구 하나 없이 잭나이프와 9피트 길이의 가느다란 낚싯줄로 제왕절개 수술을 마쳤다. 인디언 여자는 기절이라도 했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을 터였다.
“아기 아버지 얼굴이나 보고 갈까. 그러고 보니 용케도 잘 참았군,”
아버지가 인디언의 얼굴에 덮인 담요를 걷어냈다. 축축한 것이 손에 닿았다. 남포등을 비추자 얼글을 벽 쪽으로 돌린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목이 이쪽 귀에서 저 쪽 귀까지 베어져 있었다. 흘러나온 피가 침대의 움푹 꺼진 곳에 고여있었다. 시퍼런 면도날이 담요 속에서 빛났다. -중략 -
그들은 배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닉은 고물에 앉고 아버지가 노를 저었다. 호수 저편, 언덕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농어 한 마리가 뛰어오르며 수면에 파문이 퍼져 나갔다. 닉은 물속에다 손을 담갔다. 새벽의 날카로운 한기 속에서도 물은 따스했다. 노 젓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닉은 절대 자살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헤밍웨이의 단편 <인디언 부락>은 1925년 『우리 시대에(In our times)』라는 단편 모음집에 수록된 헤밍웨이의 초기작이다. 실제로 의사였던 아버지가 인디언 부락에 왕진 갈 때 따라갔던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토대로 쓰인 소설이다. <인디언 부락>에 등장하는 소년 닉은 어쩌면 소년 헤밍웨이 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저녁에서 밤, 다음날 아침까지이다. 닉이 아버지를 따라 인디언 부락으로 들어가는 저녁부터 산모의 수술이 진행되는 밤,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남편의 자살이 밝혀지는 아침까지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강은 백인 거주지와 인디언 부락을 나누는 경계다. 밤은 처절한 고통 속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시간. 그와 비슷한 시간 여인의 남편은 자살한다.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짓누르는 충격을 받곤 한다. 사내아이의 탄생과 남편의 자살, 삶과 죽음이 거의 동시에 벌어진다. 마취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잭나이프로 자궁을 절개하는 수술을 감당해야 하는 여인의 고통, 여인은 공포와 두려움에 비명을 지른다. 2층 침대 위칸에 드러누운 남편은 다리를 심하게 다쳐 여인에게 내려올 수 없고 여인의 모습을 보기도 어렵다. 남편은 오직 여인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의 강도로 여인의 상태를 추측할 뿐이다. 아마도 아기가 탄생하는 바로 그 순간 여인은 극도의 고통을 견디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고 여인의 극심한 고통은 침대 위 칸에 드러누운 남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이다.
인디언 남자는 여인이 죽어가고 있다고 짐작하였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벤 것은 여인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죽어가고 있는 아내의 길동무가 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위로, 공감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우리는 흔히 위로와 동정을 착각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온정이 위로인지 동정인지 천천히 생각해 볼 일이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는 자에게 자신의 우산을 건네주는 것, 우산을 함께 쓰는 것, 우산 살 돈을 주는 것....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비를 맞는 자에게 진정한 공감은 함께 비를 맞는 것일 것이다.
인디언 속담에 친구의 고통을 이해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친구가 신는 신을 신고 걸어보는 것이라 한다. 같은 상황에 처해보는 것만큼 온전한 공감은 없을 것이다.
강을 건너가 인디언 부락에서 보낸 밤 시간은 닉의 삶을 변화시켰다.
인디언 부락을 향해가는 배 위에서 아버지에게 안기듯 기대어 있는 닉은 한기를 느낀다 잠시도 쉬지 않고 노를 젓는 인디언들... 물 위는 추웠다.
모든 일을 마치고 배가 있는 곳으로 아버지가 노를 저을 때 닉은 물속에 손을 담갔다. 새벽의 한 기 속에서도 물은 따스했다.
부락으로 갈 때 물 위는 춥다고 느끼고 마을로 돌아올 때 물속은 따스하다고 느낀다. 같은 ‘물’에 대해 ‘닉’은 왜 온도 차이를 느끼는 것일까? 출생과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며 절대로 ‘자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닉은 자신의 인생에서 앞으로 건너게 될 수많은 강들을 잘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은 것일까?
여전히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남편의 자살이다. 고통 동참 때문에 남편이 자살을 한 것인지, 백인 남자의 손을 거쳐 아기를 받아내는 것에 대한 수치스러움 때문인지. 다리를 크게 다쳐 사냥을 하지 못하면 생계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 때문인지, 아내가 고통 속에 죽었다고 오해를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짧은 소설.... 묵직한 주제... 그 어떤 장편 소설보다도 대하드라마보다도 장중한 느낌을 주는 소설.
헤밍웨이는 헤밍웨이다.
다만 인디언들은 이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본문에 등장하는 "빌어먹을 인디언 같으니"라는 표현이라든지. " 조지, 이번 일은 의학지에 실릴 만한 사건이야. 잭 나이프로 제욍 절개를 하고 9피트 길이의 가느다란 낚싯줄로 봉합했으니까."와 같은 표현은 연민과 이해가 배제된 백인의 입장만 두드러지는 표현이다.
왜 그는 죽어버린 것일까.... 여전히 끝나지 않은 물음을 다시 한번 던져본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