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문학이 만났을때 4편>
; 세상과 소통하는 참된 마음의 창이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의 크기는 얼마만한가요?
그리고 자신 있고 솔직하게 무엇을 보여주며 함께 친구들과 아니 사회와 공유하며 맘껏 삶을 즐기시는지? 혹 나를 보여주는 그 무엇은 꾸며지고 계획되어진, 오랜 시간 학습 되어진 어떤 것으로 부분적으로만 세상에 보여지는 건 아닌지?
오늘은 이런 <세상과의 소통>에 대해 러시아 그림과 소설을 엮어 말해 보려 한다.
안톤 체홉의 소설은 복잡 다난한 삶의 이면에 숨어있는 단순한 진리를 적확한 단어로 그리고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로 유명하다. 센스 있고 위트 넘치고 그리고 진실되다. 오늘 소개할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또한 그런 체홉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대표작이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은 30대 후반의 남자 드미트리 구로프와 스물을 갓넘긴 유부녀 안나 세르게예브나의 사랑을 다룬 불륜에 관한 소설이다. 두사람은 얄타라는 러시아 휴양지에서 만나 일회적인 밀회를 나누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서지만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그들의 사랑이 점점 깊어져 사람들을 속여가며 숨어 만나는 관계가 된다. 둘은 서로의 불륜에 대해 어떤 자책감도 가지지 않으며 막 시작된 진실한 사랑에 대해 ‘어떻게 해야 좋을까?”를 연신 외치지만 그들의 미래는 아름다울거라 기대한다.
작가는 그들의 부도덕한 사랑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고 오로지 독자에게 그 판단을 맡긴다. 세상은 이 둘의 사랑에 박수를 보낼수도 아님 철저히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체홉은 이 소설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자 한 거 같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유부녀 안나를 달리는 기차에 내동댕이 쳐버리며 그녀의 부도덕을 꾸짖는 톨스토이와는 달리 쉽게 현실적 조건에 갇히지 않는 사랑의 기본 속성과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더욱 선명해 지는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세상사 기준, 윤리적 잣대로만 재단하고 끼워 맞출수 없음을 체홉은 순수한 언어로 밝힌다.
현실적 기준에 철저히 부합해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사랑의 열정이란 알약을 투여하고 그들을 통해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하게 한 체홉이다.
사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 나오는 불륜구도를 분석하고 진정한 사랑에 대해 운운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언젠가 이 부분은 다시 자세히 이야기 나눠 보기로 하자.
세르게이 볼코프의 <빈공간> 과 안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자한다.
소설 중에 남자 주인공 구로프의 삶을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 그에겐 두 가지 삶이 있었다. 하나는 원한다면 누구나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공적인 삶이었다. 그 삶은 그의 지인이나 친구들의 삶과 쏙 닮은, 조건부 진실과 조건부 기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면에 다른 하나는 비밀스럽게 흘러갔다. 몇몇 낯선 우연들이 겹치다보니, 말 그대로 우연이겠지만, 그에게 중요하고 흥미로우며 꼭 필요한 모든 것, 그가 자신을 속이지 않고 진실할 수 있는 모든 것, 그의 삶의 알맹이를 이루는 모든 것은 다른 이들 모르게 이루어졌고, 진실을 가리기 위해 덮어쓰고 있는 그의 거짓과 껍데기, 가령 은행업무나 클럽에서의 논쟁, 저급한 인종이라는 말, 아내와 함께 기념일 파티에 가는 일만이 명백하게 겉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기 기준에 따라 다른 이들을 판단했기에, 보이는 대로만 믿지 않았고, 모든 사람에게는 마치 하늘 같은 비밀의 장막 아래로 각자의 가장 흥미로운 삶, 진짜 삶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개인의 존재는 비밀리에 유지되고 부분적으로는 이 때문에 교양인들이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해야 한다고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 지도 모른다. >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은이),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이현우 (옮긴이) | 문학동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모습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어 이 대목을 읽고 나니 들키지 말아야할 뭔가를 들킨 기분이 든다. 나는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가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러시아 초현실 주의 화가 세르게이 볼코프 또한 <빈공간>이란 작품을 통해 우리 인간이 세상과 소통하는 속성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다. 각자 필요한 크기 만큼의 창문을 내어 놓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커다란 창을 가진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심지어 빚장을 치고 필요할때만 창문을 열어주기도 하며 아주 잘 꾸며진 색깔로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진정 혼자만 즐겨야 할 자신만의 하늘을 내면 깊숙히 숨겨놓고 은밀한 세상을 즐기는 우리들이다.
그림 속 남자로 보이는 사람도 넥타이를 매고 슈트를 차려 입은 것을 보니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엘리트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이런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수록 많이 부유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화가 볼코프는 은연중에 드러낸다.
보여지는 그의 얼굴엔 검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어떤 생명도 없는 것이다. 진정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그러다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주인공들처럼 가식과 허영의 연속 속에서 어느 순간 다가오는 진심 앞에 삶 전체가 초토화 되고 무릎 꿇게 되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 안톤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꼭 읽기를 강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