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미워하고 근본적으로 꺼려하는 감정, 혐오와 맥락을 같이하는 단어인 경멸이 이번 주제였는데요. 개인적으로 경멸은 똑같은 뜻으로 써도 읽을 때마다 받는 감상이 달라지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터부시되는 마음과 거부하고픈 의사를 임의로 모두 경멸이라 부를 수 있기 때문이죠.
다른 감정과 이웃하고 있는 경멸인지, 밑도 끝도 없이 밉고 혐오스러운 경멸인지. 그걸 구별하는 것이 이번 주제의 핵심이었습니다. 과연 어떤 경멸들이 우리를 흘겨보고 있을까요. 같이 살펴봅시다.
1. L비트겐슈타인님의 '사랑은 경멸과 함께'
https://m.fmkorea.com/4563018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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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안다
눈웃음이 화사하다는 걸
손이 조그마하다는 걸
잠버릇이 귀엽다는 걸
그 모든 게 사랑스럽다는 걸
사랑하기에 안다
웃음소리가 언뜻 경박하다는 걸
때때로 휴지를 멋대로 버린다는 걸
술에 취하면 냅다 울어버린다는 걸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걸
그래, 사랑하기에
온관심이 네게 쏠린다
그래, 사랑하기에
조금은 너를 경멸한다
그렇게, 사랑은 경멸과 함께
끊임없이 서로를 비추며, 그렇게.
사랑하기에, 또 경멸하기에
비로소 온전한 너를, 품에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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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모르는 사람을 다짜고짜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거북해 할 순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 사람의 장점은 깊은 관심을 가져야 보이는 법이죠. 단점도 마찬가지고요.
관심이 밝은 쪽으로 깊어지면 사랑이 됩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모습에 콩깍지를 씌우죠. 하지만 그 콩깍지가 결점까지 덮어주진 않습니다. 깊이 알면 알수록 보이고 마는 것들. 사랑이 팍 식어버릴 만큼 치명적인 결점은 아니지만, 완벽하다는 환상을 깨기엔 충분한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도 화자는 상대를 계속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경멸 또한 사랑하기에 생긴 것이므로. 완벽하지 않고 조금 부족함이 있는, 그제야 비로소 온전해진 상대를 품기 위해.
잘 읽었습니다.
2. 축알못효수님의 '경멸'
https://m.fmkorea.com/45750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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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무언가 되기위해 달려왔건만
지금 이 순간만은
인간은 모두가 서로 달라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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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제가 봤을 때 경멸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의 다름을 틀리다고 생각해서 느끼는 경멸과 비슷한 사람에게 느끼는 경멸. 아마 이 두 가지 중에선 전자 때문에 생기는 경멸이 더 많을 겁니다.
화자의 눈에 자기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보였다면 아마 화자는 그 사람을 혐오했을 겁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달려온 세월의 가치를 훼손당하는 기분이 들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 화자가 보기에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 달랐습니다. 그리고 화자는 남의 다름을 틀리다고 생각지 않고 있죠. 다행입니다.
그럼 화자는 누군가와 똑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서 뛰었던 걸까요.
잘 읽었습니다.
3. 달그밤님의 '경멸'
https://m.fmkorea.com/456532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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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 품은
무거운 부담감과 책임감
그럼에도 가라앉지 않고
벚꽃 하나에도 웃어보이는
그런 너를
어떻게 경멸할 수 있을까
거친 땅에 핀
작은 꽃을 흔드는
세찬 바람
작은 뿌리마져 뽑으려는
이런 세상을
어떻게 경멸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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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세상을 비관하는 경우는 종종 봤는데, 경멸은 꽤 신선하게 읽히네요. 세상의 모진 풍파에 힘겨워하는 못난 이를 경멸하기보다 세상 그 자체를 원망하는 쪽을 선택하다니. 사랑과 경멸이 전혀 다른 곳에서 서로 반발하고 있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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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쓰기가 어려운 주제였는지 참여율이 좀 저조했던 한 주였네요. 부정의 뜻이 원색적으로 드러나는 단어라 확실히 다루기가 어렵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