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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라 Nov 05. 2022

이태원은 모두에게 가장 슬픈 도시가 되었다.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이었다.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밥을 먹고 아디다스에 가서
겨울용 운동복을 하나 사고 집에 와서 넷플릭스를 보고 있을 때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루머겠지. 생각했다. 요즘 인터넷 기사는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하고. 하지만 새벽이 지날수록 모든 채널에서 기사들이 쏟아졌고 자고 일어났을 때는 사망자가 집계되었다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그리고 핼러윈 기간 동안

10만 명쯤 되는 사람들이 이태원에 방문했고

그리고 굉장히 많은 악플을 봤다. 모든 뉴스 기사와 라이브 방송 댓글에서, 인스타에 사진을 올린 사람들의 댓글에서 죽으러 갔다는 둥 잘 죽었다는 둥 옷을 야하게 입었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악플들을 봤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났다. 세상에 죽어도 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옷을 야하게 입고 놀러 나갔으면 죽어도 된다고?

10만 명이 이태원에 갔고 누가 그런 사고를 겪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10대 20대가 대다수의 사망자라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삶이 있었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놀다가 죽었으니 그럴만하다는 말은 말이 되지 않는다.

몇 년 전에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가 불꽃축제를 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 역시 불꽃축제를 본 적이 없어서 친구와 나는 돗자리를 들고 여의도를 향했다. 축제가 시작되기 전이었는데도 돗자리 하나 펼 자리가 없었었다. 정말 낭떠러지 같은 비탈길에도 모두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주최 측인지 후원사인지는 무슨 선 같은 걸 그어놓고 그 선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강압적인 멘트를 여러 번 반복했다. 어쩐지 축제라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돗자리를 들고 몇 바퀴를 돌다가 포기하고 그냥 집에 돌아갔다.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불꽃이 터지는 걸 봤다.

만일 불꽃축제를 보다가 다치거나 죽었다면 그럴만하다고 했을까? 놀다가 죽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일걸 알고 갔으니까?

세상에 그런 이유로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올해는 이유 없이 슬픈 일들이 많았다. 비가 많이 와서 반지하에 있던 사람들이 죽었고 침수될까 봐 차를 가지러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던 사람들이 죽었다. 빵공장에서 반죽기를 만지다가 사람이 죽었다. 죽어도 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애도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개개인의 것이지만 죽은 사람까지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은 그 이상의 문제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봤을 때에는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서울 곳곳에 추모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분향소가 생겼다. 택시를 기다리다가 분향소에 사람들이 써놓은 편지를 봤다. 아주 작은 글씨로 포스트잇 여러 개를 이어 붙여서 쓴 편지도 있었다. 나는 포스트잇에 뭘 적을 수가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살아서 텔레비전을 본 게 전부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서 가끔 메모장에 글을 적었다. 오늘은 마지막 애도기간이다.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그날 이후로 이태원은 가장 슬픈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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