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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araxia Sep 04. 2024

심야 택시 안에서

나의 상상력은 손님과 함께 사라진다

하루에 12번에서 17번 정도 타고 내리는 손님들을

만나게 된다.

택시 안에서의 대화는 목적지를 묻는 내 목소리와

목적지를 알려주는 손님의 대답이면 충분하다.


택시승객들이 가장 싫어하는게 의미없는 대화다.

의도하지 않은 대화는 의도하지 않은 불편함만

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손님을 태우면 나는 혼자

나만의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압구정 아파트단지에서 저녁 11시쯤,

화이트셔츠에 정장을 입음 남자손님을 태웠다.

목적지는 강북의 모 종합병원이다.

말끔한 차림과 은은한 스킨향이 차 안에 퍼진다.

'야간근무가 있는 당직 의사 선생님인가?'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데...

공부를 참 열심히 했겠다' 싶다.

요즘 의대열풍에 대한민국이 들썩이는데

정말 대단하다싶다...

전공은 뭘까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남자가 '얼마나 걸릴까요?' 라며 시간을 묻는다.

'서둘러 가드릴까요?'라고 말하자 '괜찮다'라고 한다.

당직근무에 늦을까 봐 그러신가?

조금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병원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뒷좌석에서 손님이 말한다. '장례식장이 어디죠?'

‘저런...조문객이셨구나...’


병원건물을 돌고 돌아 장례식장에 손님을 내려드리고 병원을 나서며 20분동안 승객을 태우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나의 허탈한 상상력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다음날, 저녁 10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신촌의 주택가에서 호출콜이와 달려간다.

어두운 골목어귀에 여자손님 한 분을 태운다.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묵묵부답이다.


순간 나의 머리에는 '아 혹시 말을 못 하는 손님일 수도있겠다'

간단한 수화라도 배워놓을 것을 하며 대로변으로 나와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수화하는 택시기사라니 아주 멋지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잠시후,

뒷좌석에서 애기고양이 소리 같은 게 난다.

목뒤로 소름이 쫙! 뭐지?

귀를 열고 들어보니...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다.

애교 가득한 작은 목소리다

아! 아니구나... 쓸데없는 나만의 생각이었다.


나의 무지한 상상력으로 잠시나마 지루한 업무를

잊어보는데

오늘도 그 상상은 손님의 하차와 함께 사라지기

일쑤다.


다음은 어떤 손님과 함께 상상의 드라이브를 하게

될지 기대하면서

나의 택시는 어두운 도심 속으로 달려 나간다!

렛츠 스타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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