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taraxia Sep 30. 2024

심야 택시 안에서

술에 취한 밤, 심야의 취객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도 애주가에 속하는 편이지만 이 일을 시작하면서는

일체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새벽 4시에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씻고 나서 조용히 김치냉장고에 있는

캔맥주를 하나 마시는 게 나의 유일한 음주생활이다.


우리나라의 음주량은 언제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술에 대해서는 참으로 관대한 편인 사회 분위기가

다양한 사건사고로 문제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하지만 여전히 퇴근 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술모임을 가는 사람들로

택시는 분주하다.

그뿐인가 10시 30분에서 12시에는 그나마 일찍 술자리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려는 승객들로 택시 잡기는 하늘에 별따기가 된다.

이 시간대에 택시는 골든타임으로 많은 승객을 태워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0시 30분에 탄 손님이 목동이나 불광동, 상계동 같은 외곽 쪽이면

한 손님 모셔다 드리고 시내로 복귀하면 골든 타임은 마무리가 되니 말이다.


그날은 손님이 많지 않아 일이 신나지도 않고 조금 지쳐갈 무렵의 시간이었다.

자정을 넘어 1시 20분쯤, 영동고등학교 앞길을 내려오는데 남자손님 한 분을 태웠다.

목적지를 말하는데 광진구 능동이다. 

마지막으로 모셔다 드리고 차고지로 복귀를 해야겠다 하고 가는데

취기가 오르는지 잠이 들었다.

주소지에 도착하여 실내등을 켜고 창문을 열고 손님을 깨우는데

숙취와 잠이 덜 깨어 비몽사몽이다.


단말기에 카드를 대야 하는제 손에 꼭 들고 있는 전자담배를 연신 대고 있다.

'손님 카드를 대셔야 결제가 됩니다'라고 말하니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카드가 없단다... 여기가 집은 맞냐고 물으니 맞단다. 

집에 들어가서 지갑을 가지고 나오겠단다. 기다리겠다고 하고 비상등을 켜고 순진하게 기다렸다

5분, 10분.... 빌라로 들어간 손님은 나올 생각이 없었다.

심야 할증비 22,500원, 새벽운전의 고생에 비하면 적은 돈은 아니다.

새벽 주택가에서 큰소리로 불러낼 수도 없다.

무전승차로 112에 신고하자니  그 시간가 수고가 더 번거롭다.

내 지갑에 있는 카드로 결제를 하고 차고지로 향했다.

그날은 운수가 참 없는 날이었다.


을지로 3가에서 태운 손님은 주소지를 말하는데

처음엔 발음이 어눌하여 외국인인 줄 알았다. 

가는 동안 자꾸 소지품을 떨어뜨린다.

도착하여 차를 정차하고는 창문을 모두 열고 실내등을 켠다.

취기가 오르고 잠결에 비몽사몽이다. 좌석옆에 떨어뜨린 소지품을

주워 챙겨드리고 정신을 좀 차려보라고 하니

연신 죄송합니다를 반복한다. 그래도 정신줄을 다 놓치는 않아 보인다.

이 손님도 카드 결제기에 자꾸 다른 물건을 갖다 댄다.

결국 카드를 찾아 결제를 받기는 했다. 

주섬 주섬 소지품을 챙겨 조심히 들어가라고 하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아파트로 들어가는데 휘청휘청 아슬아슬하다.


11시가 넘으면 손님의 90%가 취객이다.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진상고객은 많지 않지만

본인의 주량을 넘어서 정신을 놓는 사람들은 많은 편이다.

길에서 누워 자는 사람, 버스 정류장 의자에 누운 사람...

밤이 깊어 갈수록 도심 속에 취객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회식이다 모임이다 술에 관대한 우리나라지만

본인의 주량을 알고 적당히 마시며 즐기고

집에 가는 시간에 정신줄을 놓지 않을 정도로만 마셨으면 좋겠다.

취객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순간이 있지는 않았는지 회상하게 된다.

길에서 만나면 언제나 편하고 안전하게 집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

제발 적당하게 기분 좋을 때까지만 마셔주세요 여러분~

오늘 밤도 도심의 밤은 취해갈 터이다.

내일이 임시휴일이니 더욱 달리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그들도 달리고 나도 그들을 태우러 도심의 밤 속으로 달려 나가 본다. 렛츠! 스타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