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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Dec 19. 2024

깨닫는 일상은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든다.

소소하게 깨달음이 나를 완성한다.

어제저녁의 일이다.


김장 때 담근 총각김치가 딱 알맞게 익었다. 바깥 항아리에서 숙성을 시켜 저녁에 처음 개시를 했는데  밥 한 공기가 금세 온데간데 없어졌다. 너무 아쉬워 찰진 밥을 또 펐다. 밥 한 숟가락을 뜨고 손가락으로 집은 알타리 무를 오독오독 깨물어 먹었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느낌도 재밌고 총각김치만의 감칠맛이 목구멍을 타고 꿀떡꿀떡 넘어갔다.


막내 배드민턴 레슨을 가려다 말고 밥을 선택했다. 첫째와 둘째는 학교에서 2박 3일로 스키 캠프를 떠났고 셋째만 남았는데 남편보고 대신 레슨을 가라고 했다. ㅎ


어머님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다. 어머님은 주로 호박김치지짐하고 식사를 하셨고 나는 홍어찌개와 총각김치를 폭풍흡입했다. 작년에는 총각김치가 너무 짜서 도통 손이 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간도 꼭 맞고 친정엄마 솜씨만큼이나 맛도 일품이었다. 우리 어머님 손맛도 끝내준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밥 진짜 맛있게 잘 먹는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사람들이 다 나 같지 않은가 보다. 

맛있는 걸 맛있게 먹는 게 제일 쉬운 거 아닌가? ㅎ

먹을 때 진짜 행복한데! 특히 집밥 먹을 때.


오늘 아침에 냉장고를 열었는데, 새 반찬통에 총각김치가 가득 차 있었다.

부지런하신 시어머니께서 꼭두새벽부터 나가셔서 바깥 항아리에 있는 총각김치를 새로 꺼내놓으신 모양이다.


남들은 '누구네 아들, 누구네 며느리가 뭐 되었다더라, 뭐 한다더라'로 막 자랑하던데 우리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은 밥 잘 먹고 밥 잘하는 거로 자랑을 하신다. ㅋ

대하 먹을 때 껍질도 까지 않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씹어먹고, 상추쌈을 먹을 때도 세 장, 네 장 겹치게 싸서 한 입 가득 복스럽게 먹는다고 흡족해하신다. 


"안사돈 닮아서 음식도 내 입맛에 딱 맞게 잘한다."라고 시아버님께서 칭찬하고 다니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진짜 기분 좋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거의 일 년 내내 상추가 떨어지지 않고 일 년 내내 풍년인 상추 찐맛집이다. 어머님께서 해마다 초봄, 초여름, 초가을 이렇게 상추씨를 계속 심으시고 물도 새벽같이 주신다. 어린 상추부터 다 자란 상추까지 그때그때 맛보는 상추맛은 어디 가서도 구경할 수 없다.

그만큼 공을 들여 가꾸시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나라는 것을 알고 감동받았다.


우리 성화가 상추를 좋아해서
  우리 성화 먹이려고 심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던 걸 한 다리 거쳐서 들었을 때 정말 울뻔했다.


결혼하면서부터 같이 살았는데, 시어머니의 속정을 아직도 확인받고 싶은 나다.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툭툭 내뱉으시고 다듬지 않은 말로 투박하게만 말씀하시니 무방비로 상처를 자주 받으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말을 멈추게 되었다. 꼭 필요한 말 아니면 어머니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먼저 꺼내지도 않았다. 일부러 상처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남들처럼 가식적인 칭찬 말고 진짜 칭찬을 하시는 우리 시부모님이 찐이다.

얼마 전에 어머님께서 건강검진을 받으셨는데,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건강하다고 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고된 떡방앗간 일로 허리가 휘고 굽으셔서 겉으로 보면 80대 할머니 같고 수술을 해야 하나 어떡해야 하나 늘 걱정이 많았는데, 검진 결과는 정 반대였다.

겉모습과 다르게 허리근육을 강화시키는 운동을 하고 근력을 키우면 수술 없이 괜찮아진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은 친정엄마에 비해 시부모님은 병원에서도 놀랄 만큼 건강하신 편이라 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두 분 다 요즘 흔한 당뇨나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것도 전혀 없고 건강하시다고 해서 진짜 한걱정을 덜었다. 감사하고 행복한 오늘이다.

앞으로도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란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말처럼 자기 직분에 맞는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부모는 시부모답고 친정 부모는 친정 부모다워야 한다.

며느리는 며느리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관계가 좋다고 해서 '시엄마'라고 부르거나 며느리를 '딸'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어서 서로를 존중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라 생각한다. 그래야 나도 시부모님과 오래오래 좋은 관계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님과 아버님의 진심을 왜곡하지 않고 나도 계속해서 잘하고 싶다. 속에 있는 따뜻한 마음이 바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하지 않도록 나의 내면도 더 갈고닦아야겠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13년 차 며느리로 살아오면서 보다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같이 살게 된 게 아닐까? 남들은 다 뿌리치는 시부모님과의 동거를 순수히 받아들인 나도 뭔가 깨닫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무의식 중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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