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보니 차라리 “나도 잘 모르겠다”라고 한 발 물러서는 게 편해졌다
나는 내가 가진 높은 지능이 진짜로 뭘 의미하는지 깨닫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예전에는 그냥 “생각이 조금 빠른 편인가?” 정도로만 여기고 지나쳤다. 그런데 일상에서 겪는 여러 상황을 다시금 되짚어보니, 나는 정말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면서도, 어이없을 만큼 사소한 일에서 발목이 잡혀 한없이 고민하기도 하고, 그런 모순적인 면들이 내 삶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대학 초년 시절 나는 주변 사람들보다 강의를 훨씬 빨리 이해하고는 했다. 교수님이 정리하지 않은 부분도 미리 직감적으로 파악해서, 조용히 필기에 반영해두곤 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한참을 고민하고 질문을 이어가는데, 난 이미 그 과정이 끝났다는 사실이 때론 몹시 불편했다. 내 입장에서 분명한 답이 보이는데, ‘더 들어볼 것도, 더 의논할 것도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빨리 결론을 냈다는 걸 내보이면, 괜히 잘난 척한다고 느껴질까 봐 꾹 삼켰다. 나만 먼저 알면 뭐하나, 결국은 함께 맞춰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에, 교묘하게 스스로의 속도를 늦추곤 했다.
이처럼 “다운플레이(Downplay)”를 하는 이유는 간단치가 않다. 단순히 “주변 눈치 때문에”라고 요약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내 속에서 “내가 너무 나댄다 싶으면, 오히려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들지도 몰라”라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다. 또 한편으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답을 숨긴다는 것이 꽤나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수업 중에 누군가 막히는 부분을 물어보는데, 사실 나는 그에 대한 해결책을 오래전에 생각해놨다고 해도, “사실 이거 이렇게 하면 돼”라고 대답했다가는 “오, 너 혼자 다 알고 있네?”라는 반응이 돌아올 게 뻔하다. 그러다 보면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과 미묘한 거리감이 생기는 걸 몇 번 겪었고, 그러다 보니 차라리 “나도 잘 모르겠다”라고 한 발 물러서는 게 편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내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해결해버리는 건 아니다. 때로는 반대로, 너무 사소한 일에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변수를 고려하다 보니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한다. 이른바 ‘오버띵킹(Overthinking)’의 늪이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해?” 하는 간단한 선택조차, 내 머릿속에는 날씨부터 교통편, 함께 갈 사람, 그 사람의 성향, 장소 분위기, 심지어 옷에 따른 내 기분 변화까지 일렬로 나열된다. 이런 식으로 일상 곳곳에서 ‘무의미한’ 정보들이 홍수처럼 몰려오니, 결국엔 나 자신이 피로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부분이 특별히 두드러졌던 건 팀 프로젝트나 발표 때였다. 다른 친구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정확도만 확보되면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나는 좀처럼 쉽게 만족하지 못했다. 논문의 한 문장이 내포하는 뜻이 완벽하게 해석되지 않은 것 같으면, “혹시 이게 오역이거나 통계적으로 잘못된 증거면 어쩌지?” 하는 식으로 눈덩이처럼 의심이 커지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이 돌아가니, 미세한 오류 가능성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밤새워 문서를 재검토하기도 했다. 마치 제대로 된 정답을 찾을 때까지는 쉬어도 쉴 수 없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기분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런 집중력 덕분에 종종 놀라운 성취를 얻기도 한다는 점이다. “대체 저걸 어떻게 발견했지?”라는 반응을 들을 만큼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일이 생기고, 이는 분명 내가 가진 지능이 한몫한다. 업무 현장에서 누군가 몇 시간, 며칠씩 씨름하던 문제를 난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해내곤 했고, 그때마다 “남들에겐 안 보이는 무언가가 보이네?”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러면 잠깐은 기분이 좋아지지만, 동시에 ‘내가 이런 능력을 계속해서 보여줘야 하나?’라는 부담감이 함께 찾아온다. 칭찬도 반복되면 의무감이나 압박감으로 변질되는 법이다.
그렇다고 이런 능력이 늘 꽃길만 열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내 ‘정서적 기복’이다. 일이 잘 풀릴 때는 기분이 끝없이 상승해 창의력도 폭발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작은 변수 하나만 생겨도 “왜 이걸 예상 못 했지? 난 부족한가?” 하는 자책이 밀려온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 극단을 오가는 감정에 굉장히 지쳐서, “도대체 왜 나는 이렇게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나?”라며 내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뇌과학이나 심리학 논문을 찾아보면, 나와 같은 고지능자가 ‘과잉분석’이나 ‘오버띵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자주 보인다. 단순히 “머리가 좋다”는 말에 그치지 않고, 그 머리가 훨씬 많은 정보와 패턴을 동시에 받아들이므로, 한 번 빠져들면 걷잡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어느 연구에서는, 고지능자 그룹이 일반 그룹보다 우울감과 불안 증세가 잦다는 상관관계를 내놓기도 했다. 물론, 통계적 연관이 항상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유명한 천재들에게도 심리적 어려움이 흔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물리학자 폴 디락이나 수학자 존 내시 같은 인물들은 꽤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겪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다른 분야에서도 극단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번아웃이나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생각하다 보니, 세상의 모순들이 남들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똑똑한 자가 불행해지는 건 삶의 모순을 더 많이 발견하기 때문”이라는 식의 해석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닐 테다.
그래서 내 경우, ‘이 과잉분석의 폭풍’을 좀 잠재우기 위해 정신과 상담과 진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병원에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막상 찾아가 보니, 내가 느끼는 혼란과 피로를 훨씬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의사가 권한 건 아주 간단한 명상이었다. “생각을 놓으라”는 말을 들으면, 난 “이걸 어떻게 놓지?”라며 더 많은 생각이 몰려오는 타입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의식적으로 내 호흡이나 몸의 감각에 신경을 기울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렇게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안이었다.
운동 역시 큰 도움을 준다. 한창 머릿속이 지저분해지고 잡념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달리기를 시작하면 이상하게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나는 특히, 조깅 후에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오거나, 따뜻한 티를 마시면서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 한동안 컴퓨터처럼 ‘과열’되어 있던 뇌가, 잠깐이라도 휴식을 갖게 되는 기분이다. 이처럼 내가 가진 ‘비범한 인식의 세계’를 온전히 부정하거나 억누르는 대신,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제어하는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완벽하게 해답을 찾은 것은 아직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이 높은 지능이 때론 무기를, 때론 약점을 만들어내는 이중성은 여전히 내 일상을 요동치게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전에는 “이렇게 머리가 빨리 돌아가니까 문제없지!”라고 무턱대고 생각했거나, 반대로 “왜 이렇게 복잡해? 차라리 둔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스스로를 원망했던 극단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주변에서도 “너 원래 일 잘했는데, 요즘은 좀 여유가 생겼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나도 그 말이 딱히 틀린 것 같지 않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전하고 싶은 건 단순하다. ‘비범한 인식의 세계’는 분명 멋진 장점이지만, 동시에 무시하기 힘든 그림자도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남들보다 훨씬 빨리 문제를 풀고, 다양한 관점을 종합해 최적의 해법을 만드는 일은 정말 짜릿한 기분을 준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그만큼 더 많은 감각을 곤두세워야 하고, 때론 다운플레이를 해야 하며, 과도한 오버분석의 늪에 빠질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고지능자라고 하면, 대부분은 “부럽다, 얼마나 편하겠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나조차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삶을 사는 입장에서는 그 이면에 감춰진 부담과 고독,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의심이 존재함을 절실히 느낀다. 1화에서 내가 왜 이 ‘고지능’이라는 레이블에 대해 복잡미묘한 감정을 품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다면, 지금 이 글에서는 그 레이블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빛과 그림자’를 드러내는지 좀 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니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비범한 인식’을 갖게 된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또 그 과정에서 얻은 상처와 깨달음이 무엇인지 조금 구체적으로 나눠보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내가 너무 별난가?”라고 불안해하던 걸 조금 덜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고, 그 특별함이 꼭 장밋빛 축복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내 경우에는 오히려 큰 위로가 되었다.
다음에는 감정적 갈등이나 사회적 소외, 그리고 내 안에서 샘솟는 창의성이 어떻게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는지 더 깊이 살펴볼까 한다. 왜냐하면, 두뇌가 빠르게 돌아간다는 건 단지 문제 해결이 빨라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외로움도 커지고,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능성도 눈앞에 펼쳐진다. 그 경계에서 나는 여전히 헤매기도 하고, 때론 의외의 돌파구를 찾기도 한다. 이 마스터키를 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조급한 마음에서 조금은 벗어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이 길에서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