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성이 감정을 더 크게 흔들어놓는 역설적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나는 종종 내 머릿속에서 ‘두 번째 회로’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겉으로 보면 별일 없는 상황에서도, 내 안에서는 이미 머릿속에서 크고 작은 시뮬레이션들이 끝없이 전개되는 것이다. 일을 단숨에 해결하려고 달려들기 전에, 혹은 한 번 겪은 일을 마무리 짓고 난 후에도, “이건 정말 최선이었나? 만약 이 시점에서 다른 식으로 접근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같은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치 스스로를 이성적이라고 믿지만, 현실에선 그 이성성이 감정을 더 크게 흔들어놓는 역설적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과도한 사고 과정이 내가 가진 ‘능력’이라고만 생각했다.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한다는 건 분명 장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누구는 대충 결정하고 넘어가는 반면, 나는 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따져본다. 그러다 보면 의외의 결함을 미리 발견해 예방할 수 있거나, 더 나은 해법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이런 태도로 손해를 줄였다는 경험이 몇 번 있기에, 한때는 “역시 좀 더 철저한 고민이 필요해”라며 스스로를 독려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과도한 사고’가 가져오는 이득만큼이나 손해도 크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단순히 작은 문제 하나를 놓고도 끝없이 시나리오를 돌리다 보니, 내가 감정적으로 지쳐버리는 순간이 잦아졌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그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친구와 사소한 말다툼이 생겼을 때 스스로 “이건 어떤 맥락에서 나왔던 말일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다 보면, 실제보다 훨씬 복잡한 갈등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생생히 재현되곤 했다. 혹시나 그 갈등이 커질까 두려워하거나, 혹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잘못한 게 없는지’ 집요하게 따지며 자책하는 식이다. 이론상으론 “논리적으로 잘 따져보면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정작 감정이 개입된 문제는 오히려 더 어렵게 꼬여버린다.
이런 감정적 혼란은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서도 폭발적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상사에게서 작은 지적을 들으면, “왜 내가 이걸 못 알아챘지?” 같은 후회로 시작해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문제는 다시 생길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라는 예측을 거쳐, “만약 이게 반복되면 내 커리어가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어”라는 공포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분명 시작은 아주 사소한 일이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 과정이 불안감을 한없이 부풀리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괜히 너무 걱정하는 건 아닐까?”라는 이성적 목소리가 들리면서도, 이미 불안이 가속을 붙은 뒤라 마음이 그 불안을 놓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나는 가끔 ‘지혜의 저주’라는 표현을 쓴다. 무언가를 깊이 알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능력이 오히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분명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떠한 문제든 정답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생각이 깊을수록 그 ‘답이 없을 가능성’까지 뚜렷이 깨닫게 되면서 오히려 감정이 더 큰 불안을 느낀다. 반대로 누군가는 “좀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지 않나?”라고 하지만, 내겐 그것이 ‘문제를 덮어두는 일’처럼 느껴져 쉽사리 해방감을 얻기 어렵다. 이처럼 이성적 사고와 감정적 동요가 부딪히면서, 때론 내가 가진 ‘생각의 힘’이 감정을 잠재우기는커녕 더욱 격렬하게 흔드는 기폭제가 된다.
감정과 이성의 충돌은, 일종의 ‘언어가 다른 두 개의 자아’가 내 안에서 씨름하는 느낌을 준다. 한쪽은 “조금 더 파고들면 위험 요소를 예측할 수 있을 거야”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이대로 두면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텐데”라며 경고한다. 두 목소리가 동시에 커지면, 나는 이성과 감정 모두에게 휘둘려버리는 일이 생긴다. 머릿속에서는 “이건 정확히 A가 문제고, 다음에 B가 문제를 일으키겠군”이라고 논리적으로 결론 내렸지만, 마음은 그 문제를 불안과 공포의 모습으로 훨씬 크게 부풀려버리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내 생각을 좀 멈출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는 순간이 온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오히려 강제로 ‘멍해지기’를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면, 결국 자기만의 치유법을 마련해야 하는데, 나는 몇 가지 방법이 그럭저럭 도움이 됐다. 첫째, ‘생각의 범위’를 어느 선에서 제한하자는 작은 원칙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오늘은 더 이상 안 찾아봐야지”라는 선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다. 처음엔 “이렇게 하면 완벽한 해답을 놓치는 것 아니야?”라는 두려움이 컸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알아보는 게 불안을 더 키운다는 점을 의식하자 확실한 선 긋기가 가능해졌다.
두 번째로, “감정이 조금이라도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그 흐름을 먼저 살펴본다”는 습관을 들였다. 생각은 분명 이성적이지만, 정작 내 몸이나 마음에서는 ‘이제 그만 쉬어줘’라고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그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고민하다가 과도한 흥분 혹은 우울로 치달은 적이 많았는데, 미리 알아채면 꽤 효과가 있었다. 예컨대 가슴이 답답하거나, 머리가 무거워지면, 아예 책상에서 일어나 산책을 하거나 물을 마시고, 내 머릿속을 잠시 비워주는 식이다.
세 번째 조언은 ‘완벽한 답변을 당장 얻으려 하지 말기’다. 인간관계나 감정 문제는, 객관적 답안지가 존재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한 번의 대화로, 혹은 한 번의 반성으로 문제가 확실히 풀리리라 기대하면 오히려 자꾸만 좌절만 커진다. 회사에서 실수를 했다면, 오늘은 할 수 있는 만큼만 복구하고 내일 다시 차분히 점검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유예 시간을 준다. 조급해지면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생각’을 갈구하게 되고, 결국 그게 감정 폭풍을 더욱 거세게 만들 공산이 크다.
이 외에도, 내가 시도해본 방법 중엔 ‘일부러 다른 집중 활동을 해보는 것’이 있었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계속 맴돌 때, 단순히 멍때리는 것도 좋지만, 아예 다른 영역에 집중해보는 식이다. 예를 들어 간단한 요리를 하면서 레시피에만 집중하거나, 음악 연주를 취미로 익혀 직접 악보에 몰두해보면, 사고의 고리를 끊는 데 꽤 큰 도움이 된다. 모든 물음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기에, 내 의식 자체를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리면 뇌가 숨 쉴 여유를 찾게 된다.
정말 힘든 상황이라면 전문가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낀다. 특히, 자꾸만 ‘이렇게 많이 고민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하고 스스로를 탓하기 쉬운데, 심리상담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보면 의외로 “이런 패턴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위로가 된다. 거기서 얻은 작은 팁, 예컨대 ‘사고 기록지’ 같은 것을 활용해보면서, 불안을 느낄 때마다 객관적으로 내 사고 과정을 적어보는 습관을 들이면 감정 폭발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이런 노력들도 결국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지혜의 저주’라는 말 자체가, 지식이나 사고력이 성장할수록 감정적 소모도 커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알고 싶은 게 늘어나고, 신중하게 살피고 싶은 분야가 넓어질수록, 내가 다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사고가 결국엔 내 감정까지 통제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때가 있다면, 나는 이것을 ‘자연스러운 성장통’ 혹은 ‘통찰의 비용’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쩌면 이런 과정은 우리가 진짜 성숙해지기 위한 필수 단계일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건 그만큼 크고 작은 불편함과 모순을 발견한다는 뜻이니, 감정적으로 평온하기만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과 고통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한 질문이다. 과거의 나처럼 온종일 고민만 하다 스스로를 소진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충분히 생각하되,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 ‘이쯤이면 됐다’며 마음을 내려놓고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다. 그 선택의 차이가 결국엔 삶의 질과 방향을 좌우한다.
‘지혜의 저주’가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는, 단지 많은 걸 안다는 게 아니라, 그 아는 것을 감정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생기는 부조화에 있다고 본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 사고와 감정을 동시에 의식하며, 너무 앞서 가는 사고에 브레이크를 걸어주거나, 감정이 폭주하기 전에 살짝 숨을 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가진 사고력과 지식이 더 이상 ‘저주’가 아니라,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잠재력’이 될 테니까 말이다.
나는 아직도 완벽하진 않지만,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느낀다. 한때는 고작 물건 하나 살 때도 가능한 모든 옵션을 비교하며 불안이 극에 달했으나, 이젠 “적당히 괜찮아 보이면 사겠다”라는 태도를 연습 중이다. 사람들과의 갈등이 생겼을 때도 “내일 다시 얘기하자”며 시간을 두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니, 과도한 사고가 불러오는 감정 폭풍도 예전만큼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여전히 그 폭풍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제는 내가 잠시 비를 피해갈 안전한 처마를 찾아낼 수 있게 된 기분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폭풍조차 삶의 일부로서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내 마음과 머릿속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