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읽는 눈: 고지능자가 바라보는 진실의 퍼즐

사소한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논리’를 발견하는 일은 내게 작은 재미다

by Youhan Kim

나는 세상을 볼 때, 눈에 띄지 않는 규칙성과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데 매력을 느낀다. 가령 지하철 노선을 살펴보면서 “왜 이 구간은 이렇게 배치되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면, 이용객 통행량이나 지역 개발 계획을 추측해보는 식이다. 이런 관점을 유지하면, 단순히 “이 노선은 편리하다” 정도로 끝날 이야기가 훨씬 다채로운 배경을 품고 있음이 드러난다. 마치 누군가가 대충 그린 낙서 속에서도 의외의 패턴이 숨어 있을 수 있듯, 사소한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논리’를 발견하는 일은 내게 작은 재미다.


어릴 적부터 질문하기를 좋아했다. 주변 친구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상도, 나는 꼭 ‘왜?’라는 말을 덧붙이며 한 번 더 뒤집어보았다. 그 습관 덕분에 일상 속에서도 자잘한 장면들을 좀 더 깊이 살피게 되었다. 예를 들면 식당 메뉴판을 볼 때도, 단순히 ‘어느 음식이 인기 있나?’를 넘어 ‘왜 인기 메뉴가 이렇게 묶여 있고, 가격이 이렇게 책정되었을까?’를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호기심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상관관계를 짚어볼 때 떠오르는 통찰은 의외로 삶의 다른 측면에도 이어지곤 한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느끼는 부분은, 이렇게 찾은 규칙이나 패턴이 단순히 경제나 판매 전략 같은 데서만 작동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뉴스나 사회 이슈를 마주할 때, 누군가는 단순히 “그런 일이 있구나”라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시점에 왜 이 이슈가 부각될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어떤 정치·사회적 배경이 작동했는지 상상해보려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사에 명시되지 않은 이해관계나 흐름이 서서히 떠오를 때가 있다. 이를테면, 특정 산업 분야에 대한 규제가 느슨해진 순간, 그 산업에서 힘을 발휘하던 기업이나 단체들이 어떤 로비를 펼쳤는지, 관련 법안이 도입된 시점이 무엇과 맞물렸는지 따져보면, 처음엔 평범해 보이던 뉴스 뒤에 여러 조각이 얽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늘 정답을 찾는 건 아니다. 때로는 간단한 문제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바라보다가 스스로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잘못된 가정으로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조차 ‘퍼즐 맞추기’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흥미로운 과정이 된다. 어느 방향이 막혔다는 사실이 곧 ‘이 길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준다면, 그 역시 새 관점을 열어주는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패턴 인식’은 인간관계나 문화 현상처럼, 데이터를 수치화하기 어려운 영역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예컨대, 한 해에 유행했던 밈(meme)이나 트렌드를 살펴보면서, 특정 시점에 왜 그 밈이 폭발적으로 퍼졌는지를 추측해본다. 그러면 때로는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불안이 특정 코미디 상황에 투영된 것일 수도 있고, 정치·경제적 이슈에서 비롯된 반감이 짧은 패러디 영상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보인다. 이런 과정은 “그냥 재미있잖아”로 끝나는 일들 속에 예상치 못한 의미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한편, 이런 시야가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세상을 복잡하게 본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모두가 가볍게 즐기는 장난스러운 이야기를 내가 진지하게 분석하려 들면, “왜 그렇게까지 파고들어?”라는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 사실 나도 그 기분을 이해한다.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보는 오락거리마저 온갖 배경과 맥락을 거론하며 이야기하면, 듣는 이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얘기를 굳이 지금 꺼내야 할까?”를 고민하는 편이다. 그래도 호기심이 사라지거나, 이미 알고 있는 패턴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는, 상황과 대상을 고려하며 조절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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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분석하는 습관’을 완전히 억누르고 싶진 않다. 과거에는 특정 사건을 대충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더 복잡한 원인이 있었음을 깨닫고 “아, 그때 한 번 더 파고들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후회한 적이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놓칠 뻔한 조각을 찾아보려 노력한다. 다만, 이왕이면 두 번째, 세 번째 시나리오를 생각할 때 좀 더 객관적 근거를 찾아보는 편이다. 데이터나 기록, 혹은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를 살피다 보면, 내 주관적 추측이 잘못된 선입견은 아닌지 점검할 수 있다.


이런 태도를 조금 더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보는 ‘표면’ 뒤에는 늘 다른 차원의 ‘배경’이 놓여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문화 현상도 그렇고, 사람들의 생활 패턴도 그렇다. 대표적인 예로, 뜬금없이 뜨는 유행어나 광고 카피를 살펴보면, 그 안엔 그 시대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서나 고민이 반영돼 있을 때가 많다. 가령, 일상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버리는 듯한 밈이 빠르게 퍼진다면, 그 시점에 많은 이들이 비슷한 피로감이나 분노를 느끼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한 마디 말이 무작정 인기 있는 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패턴 인식을 통해 발견한 것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과정도 꽤 의미 있다고 느낀다. 처음엔 “그렇게까지 생각해?”라며 놀라던 이들도, 막상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 몰랐던 사실이네”라고 반응해줄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내가 느끼는 기쁨은, 그저 지식을 자랑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함께 얽힌 맥락을 알아내고, 그 연결 지점을 사람들이 납득하게끔 보여줄 때 비로소 ‘내가 본 세계’를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런 시각이 항상 달가운 반응을 얻는 건 아니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되는 걸 뭘 그렇게 복잡하게 보냐”라고 반응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할 때가 있다. 모든 사건이 엄청난 비밀을 품고 있는 건 아닐 테니, 때론 지나친 분석이 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간단해 보이는 문제 뒤에 숨겨진 쟁점이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건 우리에게 현실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떤 의미에서, 세상을 읽는 눈이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살피려는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높은 IQ가 나를 무조건 더 뛰어난 탐구자로 만들거나, 특별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사소한 것에도 질문을 던지고, 보이지 않는 패턴을 찾아내려는 호기심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해줄 뿐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정보와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속에서 “왜 이렇지?”라고 물어보는 태도야말로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결론이 틀릴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퍼즐 조각을 찾으려 애쓰는 과정이야말로, 내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동력이다.






나는 앞으로도 일상에서, 뉴스 속에서, 혹은 우리가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작은 단서를 발견하면 하나씩 맞춰볼 것이다. 물론 가끔은 빗나갈 테고, 사람들이 시큰둥하게 볼 수도 있다. 그래도 내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이게 다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버리지 않고 싶다. 그 질문들이 쌓여, 언젠가 내가 마주하게 될 더 큰 퍼즐 그림을 조금씩 완성해나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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