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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Nov 22. 2023

교회누나가 본 드라마 <연인>

길채와 장현 그리고 예수님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연인들의 사랑과 백성들의 생명력을 다룬 휴면역사 멜로 드라마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공중파 드라마가 있으니 바로 <연인> 이다. 한창 화제가 될 무렵 파트제를 선언하며 방영을 나눈 것마저 파격적이었고, 황진영 작가의 섬세하고 힘있는 필력 또한 감탄에 감탄을 불러왔다. 배우들의 명연기드라마의 완성도에 큰 기여를 했음 물론이다.


이 글에서 드라마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를 논하고자 함은 아니고, 교회누나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한 명대사를 함께 곱씹어보고자 한다.



출처: mbc



드라마 덕후는 아니지만


드라마가 종영한 후에도 소위 '연인 앓이'를 하고있는 애청자들이 많다는 기사를 접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워낙 유명하고 감동적이라는 소문에 몇편을 찾아보았다. 과연 세간의 화제가 될만한 요소가 가득한 명작이었다. 그동안 사극에서 자주 다루지 않았던 병자호란과 포로들의 이야기 매력적인 소재였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드라마 정주행을 하고싶은 의지까지 생길 정도였다.



대중 역사드라마에서 기독교적 요소 찾기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에서 기독교적인 요소를 찾기라니!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참고로 드라마 배경이 되는 병자호란 시기에는 조선에 기독교가 아직 전해지지 않았고, 다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기독교를 접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긴하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는 관계 없이, 드라마의 대사 몇 군데에서 나는 큰 울림을 받았다.


아직도 모르겠소? 내 마음을.. 그리도 모릅니까. 난 그저 부인으로 족합니다.
가난한 길채, 돈 많은 길채, 발칙한 길채, 유순한 길채, 날 사랑하지 않는 길채, 날 사랑하는 길채. 그 무엇이든 난 길채면 돼.

(좋아요. 허면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길채는…)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 많이 아팠지. 많이 힘들었지. 다 끝났소.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난 이제 당신 곁에 있을 거야. 당신이 날 밀어내도 난 여기. 당신이 내게 싫증을 내도 난 여기 있겠소.

- 드라마 17화 중-


사랑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마음을 두드리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은 남녀간의 로맨스로 대표되는 일이 흔하지만, 나는 위의 장현의 사랑고백이 마치 예수님이 나에게 하는 말같이 다가왔다. 드라마의 서사를 보며 감정이입이 되어 어느새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지만 저게 바로 조건없는 아가페적인, 예수님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되어 며칠동안 되새겨보았다.


내가 부자든 아니든, 내가 소위 세상이 말하는 성공한 사람이든 아니든, 내가 건강하든 약하든 관계없이 늘 사랑해주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대입했기에 더욱 눈물이 나고 가슴이 울렸는지도 모르겠다.


부끄럽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최근까지의 나는, 세상이 말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남들의 인정과 내 의를 앞세우며 그저 무늬만 크리스천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예수님이 주인된 삶이 아니라, 필요할때 급할때만 하나님을 찾고는 문제가 해결되면 내 소욕대로 살아가는 삶을 끊임없이 반복했던 기억이다. 간증집회에서 들을법한 그러한 드라마틱한 이벤트나 회심의 계기가 나에게 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의 하나님은 늘 나를 차분히 기다려주셨음을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추구했던' 육신적인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지점이다. 예수님은 내가 필요할때 나를 도와주는 요술램프나 도깨비 방망이가 전혀 아님에도 내 마음속 주인의 위치에는 늘 내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드라마 작가가 크리스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주인공 이장현의 지고지순하며 절대적인 사랑의 고백이 새삼 깊숙한 울림을 주는 것은 확실한 바다.


그리고는 마지막회, 마지막 대사는 그 사랑 정점 이되어 담담하게 표출된다.

기다렸지, 그대를...
여기서... 아주 오래...


멀고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찾아온 연인 길채에게  뱉은 간단하지만 묵직한 대사가 심금을 울린다. 여주인공 길채가 장현의 깊은 사랑을 깨닫는데 오랜시간이 걸렸지만 묵묵히,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지켜냈던 사랑. 지금의 현실에서는 보기힘든 어려움이 그 사랑을 더 애절하고 풍성하게 해주었을지 모르지만 사뭇 대단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장현의 마지막 대사마저도, 마치 날 묵묵히 기다려주신 예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렸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개의치 않으시는 분. 내가 잘나간다고 날 더 사랑하시거나 내가 약하다고 날 덜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드라마를 통해 문득 깨닫는다.


혹시 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들어봤는지? 마치 탕자와 같은 길채마저도 무한한 사랑과 애끓는 심정으로 기다린 아버지의 마음이 주인공 장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탕자의 비유'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당신은 꽤 괜찮은 크리스천입니까?'를 참고하시길)


어떤이는 굳이 사극에서 기독교적인 색채를 찾으려 애쓴다며 불편해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글 쓰는 크리스천으로서, 대중문화를 기독교적 가치관을 통해 받아들이고 적용점을 나눈다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일이라 말하고 싶다. 참고로 교회누나가 본 예능 '스트리트우먼파이터'에 대한 이야기는 '교회 누나가 본 <스우파 2>를 보시길.


소망하기는, 대중 드라마, 영화 등 문화속에서 기독교적인 적용점을 찾고 더 나아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크리스천 중에 한 명이 되고싶다. 이상, 명품사극 속 명대사를 만나 한동안 설렜던 교회누나의 짧은 기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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