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로쿠쌤 Jun 17. 2024

맥모닝은 잘못이 없다

맥세권 좀 살아본 사람의 맥모닝 이야기

'신선한 달걀과 갓 구운 잉글리시머핀의 조화. 그리고 치즈의 고소한 풍미까지'


오전 10시 30분까지만 즐길 수 있는 한정된 시간이 주는 매력까지 더해져, 커피와 함께 즐기는 맥모닝은 나의 최고의 브런치 메뉴였다.

물가에 비하면 괜찮은 가격대와, 세트 주문 시 할인되는 이점까지 더해지면 거부하기 어려운 옵션임엔 틀림없었으리라.

맥모닝 세트메뉴 (출처:맥도날드 홈페이지)


역세권, 숲세권도 아닌 맥세권


맥도날드 매장 근처에 거주했다. 지금만큼 브런치메뉴나 버거/샌드위치류가 다양해지기 전이어서 주말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맥모닝을 먹는 일은 일종의 루틴이 되었던 기억이다. 그 시절엔 햄버거보다는 맥모닝을 먹으러 맥도날드에 가곤 했다. 다른 버거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풍미와 해쉬포테이토의 느끼함이 주는 포만감을 통한 위로(?) 같은 게 존재했다. 거기에 시즌별로 나오는 스낵까지 곁들이면 점심은 거뜬히 건너뛸 수 있는 든든함이 참 좋았다.


잠시 아이들과 시골에 살았을 때는 맥모닝을 즐기는 일은 일종의 사치이자 요원한 일이 되고 말았다. 시골 군 단위에 맥도날드가 있을 리는 없었고, 대전으로 가서, 그것도 아침 댓바람부터 출발해야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맥모닝 하나 먹자고 곤히 자는 아이들을 깨우고 준비시켜 30분씩 운전을 하고 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의 사랑 너의 사랑 맥모닝'이라는 별칭까지 붙여주었다. 



출처:맥도날드 공식 인스타그램

샌드위치 러버의 미식생활


어느샌가 샌드위치나 버거 시장이 굉장히 커지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종류의 브런치 메뉴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하여,  배달시장이 급속도로 활성화되어 집에서도 미식 생활을 즐기기에 충분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말이다.


그러다 보니 맥모닝을 접할 기회가 점차 줄어든 듯하다. 특히 샌드위치 러버인 나는 속속 등장하는 샌드위치 맛집에 환호를 보내며 하나씩 음미하는 것이 취미가 되기도 했다. (나의 유별난 샌드위치 사랑은 '콜드 샌드위치? 핫 샌드위치?'를 참고하시길)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맛본 맥모닝

그러다 최근 아주우연한 기회에 지인과 들린 맥도날드. 아직 아침메뉴 판매시간이었기에 오랜만에 맥모닝을 선택했다. 꽤 설레는 마음으로.

어머니 세대에 추억의 음식이 국밥이나 옥수수 등이라면 나에게는 단연 맥모닝이다.


뜨끈뜨끈한 맥모닝 포장상태가 마음에 들었고 환경을 위해 매장용 컵에 받아 든 시원한 커피 또한 합격점이었다. 기름기 많은  해쉬  포테이토 대신 선택한 코울슬로 또한 기대 이상으로 보였다.

이제 드디어 베어문 맥모닝 한입, 그리고 두 입...

잉? 뭔가 이상했다. 예전의 그 맛, 그러니까 맛의 폭죽이 터지는 듯한 그런 입안의 풍성한 만족감이 웬일인지 찾아오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나?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본다. 맛은 분명 똑같은데 빠진 것이 없는데...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동행한 지인조차 나의 반응에 놀란 눈치다.

'예전만큼의 맛이 깊이 느껴지지가 않아'

내 대답에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버리는 지인을 뒤로하고 곰곰이 다시 한번 음미해 보는 맥모닝.


그리고는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참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을 말이다. 점차 먹거리도 다양해지고 더 맛있고 새로운 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아져서 내 입맛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알았다.


맥모닝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변했다 해도 오히려 더 다채롭고 풍성해진 입맛을 반영하고 있었다.

결국, 내 문제였다. 추억의 음식에 대한 향수와 기대가 컸기에 살짝 놀랐을 뿐이다. 그동안 내가 맛보고 즐긴 수제버거와 샌드위치 컬렉션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나의 입맛의 기준이. 그리고 취향이 달라졌구나. 한편으로는 그런 미식생활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무척 감사한 일이이라.


그날 맥모닝은 다 먹었냐고? 물론 아주 깨끗이 남기지 않고 잘 먹었다. 맥모닝과 함께였던 나의 추억의 시절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 시절 그 기억을 음식과 함께 쌓아 올려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향수가 느껴지는지도.


세상 참 많이 변했나 보다. 맥모닝이 추억의 음식이 되어가는 게 새삼 재밌다. 다음번 맥도날드에 가서는 다른 메뉴로 맥모닝을 즐겨봐야겠다. 혹시 아는가? 입안에서 추억의 폭죽이 터질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혼수로 해온 그릇을 10년 만에 꺼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