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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Sep 18. 2020

#11. '누구 엄마'가 아닌 내 이름을 불러줘

이를 출산하고 달라진 점이 무척 많지만 그중 하나는 내 이름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름으로 불렸던 예전과는 달리 어느새 나는 사람들에게 'OO이 엄마' 혹은 'OO이 어머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낯설어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이름으로 불리는 게 더 어색해진 걸 보면 나도 현재에 더 익숙해진 모양이다.

외국 사람들은 결혼을 하든, 아이를 낳든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도 여전히 메리고 수잔이고 제니인데 왜 우리는 출산을 함과 동시에 누구의 엄마로 불리고 살아야만 하는 걸까.

사실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것 자체로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요즘같이 아이 갖는 것이 힘들고 축복인 시기에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것 자체도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남들에게 그렇게 불려질수록 점점 나의 주체성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심지어 나와 같은 전업주부는 외부와의 철저한 단절(?)로 이름을 불릴 일조차 없으니 점점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사회에서 'O대리'라고 불리며 바쁘게 일하던 내가 고작 서른이라는 나이에 '어머님'이라고 불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름은 곧 그 사람이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지 않아서라기보다 누군가의 엄마로 살면서 점점 나라는 존재가 옅어지는 것에 허무한 느낌도 든다.

몇 년 전, 큰 이모의 아들인 사촌오빠가 결혼을 했는데 놀라운 건 우리 대부분이 새언니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모들에게 물어보니 분명 듣긴 했는데 잊어버렸다고 했다.
OO이 엄마라고 불리는 새언니를 보며 엄마가 되고 이름을 잃어버린 그녀의 모습과 내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누군가의 예쁜 딸로,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한 구성원이었던 나는 점점 흐려지고 누군가의 엄마만이 남아있는 느낌.

얼마 전, 출산 후 거의 반년만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지윤아.'하고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불러주었는데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별 거 아닌 듯해도 그 자체만으로 왜 이리 기분이 좋던지.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준다는 게 이리도 행복하고 벅찬 일이었나.

나는 그날로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내 이름을 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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