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착한 아이가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
꼭 착한 아이로 키워야 할까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타인에게 그저 착한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친구랑 잘 지내야 착한 아이지.', '엄마 말 잘 들어야지.', '동생한테 양보해야 착한 언니(누나)지.'등의 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우리에게 꽤 익숙한 '울면 안 돼'라는 동요의 가사를 떠올려보자.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 주신대.'
아이들에게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울지 않는 것이 착한 아이라고 가르치는 것처럼 들린다.
나는 어린 아이든, 나이 든 노인이든 감정을 표출하고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울고 싶으면 울고, 화내고 싶을 땐 화를 내야 한다.
물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감정을 표출하는 일종의 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화가 나면 잠을 잔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내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화가 날 때 누군가와 언쟁을 하거나 말을 섞게 되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처 주는 말을 해버릴까 싶어서이다. 그래서 난 화가 나면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잠을 잔다.
또 울고 싶을 땐 굳이 참지 않고 일부러 더 슬픈 영화를 보거나 슬픈 음악을 듣고 펑펑 운다. 그러고 나면 답답하고 슬펐던 마음이 어느 정도 후련해지고 개운해진다.
일부러 부정적인 나의 세세한 감정까지 남들에게 모두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는 설령 '착한 아이'가 아닐지라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같은 반 아이를 따돌림 시킬 때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이가 틀어졌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밤낮으로 우리집으로 전화해 욕을 하고 끊어버리거나 수업시간에 내가 발표하면 은근한 야유를 보내는 등 유치하게 괴롭히곤 했다. 참다못해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왜 싸우게 된 거냐 묻고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하자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야지. 싸우면 안 돼.'라고 싱거운 답을 주었다.
내가 왜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지?
친하게 지내려 하면 그럴 수는 있는 건가?
그 당시 어렸던 내가 품었던 의문이었다.
속만 더 답답해져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털어놓으니 예상과는 다른 답변에 어렸던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내가 예상한 엄마의 반응도 선생님의 답변과 큰 차이가 없을 줄 알았는데, 엄마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는 대수롭지 않게 '놀지 마.'라고 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안 물어봐?'라고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그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뭘 잘못했든, 잘못하지 않았든 무리 지어 괴롭히고 따돌림시키는 건 못된 행동이야. 그런 아이들이랑 잘 지내려 하는 건 착한 게 아니라 바보야. 그러니까 네가 걔네랑 놀지 마. 네가 진심으로 대했을 때 그걸 고마워하는 친구들이랑 잘 지내.'
무조건 착한 아이를 강요하지 않았던 엄마의 영향 때문일까. 지금도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고 내 의견을 어디서든 명확히 이야기할 수 있다. 대학 때도, 심지어 회사에서도 남들이 아무리 예스(Yes)를 외쳐도 내 생각이 그렇지 않으면 노(No)를 외쳤다. 물론 그래서 날 싫어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날 더 신뢰하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7명이나 되던 입사 동기들 중 내가 제일 먼저 승진한 것도 내가 스펙이 그들보다 좋다기보단 나의 솔직한 의견을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줏대 없이 따라가고 맞춰준다 해서 날 욕하고 흉볼 사람이 그러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고 말이다.
최근에도 알고 지내던 한 엄마가 내게 찾아와 다른 엄마들 사이에 내가 뒷얘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내가 왜?'하고 묻자 '몰라. 착해서 그런가.'라는 답변을 듣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착하면 더 잘 지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만만하게 보이고 욕을 먹어야 한다니. 아니, 사실 그보다 더 황당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난 착하지 않은데?'
대체 왜 내가 착해서 욕을 먹는다고 했을까 생각하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평소 내 성격과 다르게 이번엔 내가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않고 그저 헤헤거리고 웃기만 했구나.
다소 불편한 감정이 생겨도 말하지 않고, 내 아이와 연관된 그들에게 늘 웃으며 대하고 내 나름대로 배려했던 것에 오해가 생기고 화살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물론 그들만 아는 나의 성격적 결함(?)이나 지랄 맞은 내 성격을 그들이 알게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 이유가 아니라면 아이를 키우며 문득 고민이 생긴다.
'착하게 살지 말고 그저 너만을 위해서 살렴. 착한 사람으로 보이면 우스워지는 거야.'하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정녕 맞는 걸까?
소위 말하는 '착한 사람'이 되면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만만하게 보거나 험담을 하는 사람도 있다.
'착하니까 별말 못할 거야.'싶은 심리라면 너무 못된 행동이 아닌가. 착한 사람이 어쩌다 한번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면 '너 평소엔 착하더니 왜 그래?' 하는 말을 듣기도 하는 거 보면 말이다.
너는 되고 나는 왜 안돼?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아이가 '착한 아이'고, 그 반대가 '착하지 않은 아이'라면 난 내 아이에게 기꺼이 착한 아이가 되지 말라고 하고싶다.
그리고 남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것이 무서워 마냥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부담을 느끼고 있는 이들 모두가 이제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착한 사람을 자처하여 상처 받기보단 상대방에게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자신의 생각을 소신 있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살아가며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간혹 형제들 사이에서, 혹은 외동일 경우에도 '엄마, 아빠가 이런 행동을 하면 좋아하겠지?' 내지는 '선생님께 착한 모습을 보여야 칭찬받겠지.'하고 유난히 신경 쓰는 아이들이 있다. 커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남들의 평판이 너무 중요한 나머지 스스로 속으로는 곪아가는데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무리하게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자존감이 낮고,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에선 병이 자란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러한 생각은 멈춰야 한다.
물론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맞겠지만, 그것이 남들의 평가나 시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서이다. 남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과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진심으로 상대를 대할 때 비로소 나의 주변에도 날 똑같이 진심으로 대해주는 이들이 많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