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유치원 선생님을 꿈꿨을 정도로 난 아이를 무척 좋아했다. 지인의 아이들, 조카들도 날 무척 좋아하고 따랐기에 난 내가 엄청나게 좋은 엄마가 되리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그땐 그랬다. 육아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처럼 사랑스럽고 마냥 귀엽기만한 아이들과 그 옆에 홈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고 책을 읽어주는 나. 상상만 해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러던 내가 서른을 두 달 앞두고 아이를 낳았다. 내가 바라던 대로 건강한 남자아이였고, 나와 남편을 반반 쏙 빼닮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출산 후 출혈이 심하긴 했지만 다행히 회복이 빨라 조리원에서 둘째의 이름을 생각할 정도였다.
조리원에 있는 2주동안 쌔근쌔근 자는 모습만 보여준 우리 아기.
수유실에서 본 나의 아들은 예쁘고, 하얗고, 인형 같았다. 눈을 꼭 감고 소리도 없이 쌔근쌔근 잠을 자고 우유도 잘 먹는 아기. 얼른 조리원을 나가 집에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하루하루 조리원 퇴소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때의 나.
그토록 기다리던 조리원 퇴소 날. 나는 입이 귀에 걸려 '드디어 이 답답한 조리원을 벗어나는구나!'하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짐을 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첫날. 이상하다? 조리원에서 얌전했던 아기가 왜 이리 우는 거지? 우유를 줘도 안되고, 기저귀를 갈아줘도 안되고, 안아줘도 계속 악을 쓰고 울기만 한다. 졸리면 자면 되잖아.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왜왜왜!
신생아가 2시간에 1번씩 우유를 먹는 줄도 몰랐고, 새벽에 계속해서 깨는 것도 몰랐던 나. 심지어 몇 시간에 걸쳐 힘들게 재워놨는데 모로반사라니? 모로반사라니!
나는 집으로 온 첫날, 멘탈이 바사삭 부서지는 것을 경험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말로만 듣던 '산후우울증'을 경험하게된다. 당시엔 그게 산후우울증인지도 몰랐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산후도우미 이모는 내게 휴식을 권하셨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더 힘들어 보인다고, 집안일과 아기 케어는 본인에게 맡기고 나는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쉬란다.
그런데 방에 들어왔는데도 잠이 안 온다. 분명 몸은 너무 피곤한데 거실에 있는 아기 울음소리에 신경이 곤두선다.
'이따가 새벽에 아기 보려면 얼른 자야 하는데...'
지금 자지 않으면 밤에 힘들 거라는 압박감(?)에 더욱 잠이 안 온다. 임신했을 때는 머리만 대면 잠이 들었는데 왜 이러지?
결국 누워만 있다 오전 시간이 다 가고 점심 식사하라는 이모님의 말에 거실로 나갔다. 나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티를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나를 보는 이모님의 표정이 밝지 않다. 그리고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나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잘할 수 있어요. 다 엄마가 처음인데, 뭐. 그리고 저 정도면 아기 엄청 순한 거예요.'
내 속마음이 들렸나?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듯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이모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이모님은 말없이 휴지를 건네주셨고 나는 슬픔, 외로움, 수치스러움 등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그날 늦은 저녁, 남편이 퇴근하고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남편 역시 나를 짠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 너무 힘들면 산후도우미 연장하자.'라고 했다.
가족들도 내 마음을 잘 이해해주고, 낮엔 도우미 이모님도 오시는데 이상하게 내 마음은 외롭고 두렵기만 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건 아이가 예뻐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보통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라는 것이 생겨나지 않나? 난 왜 모성애는커녕 아이가 예뻐 보이지도 않는 거지.난 엄마 자격이 없나? 난 나쁜 엄마인가?'
그리고 아기가 울 때면 심장이 뛰었고 숨이 찼으며,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이를 낳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고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이렇게 아기 키우는 게 힘들다는 것을 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웠고, 나를 제외한 sns 속 다른 엄마들은 모두 아름답고 모성애 있는 엄마처럼 보여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한 사람인가.'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이모님이 오셨을 때, 난 또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우울했으며, 결국이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