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중에 너랑 똑같은 딸 낳아봐!
이렇게 부모가 되어가나 보다.
어릴 적 순하고 얌전했던 남동생과는 달리, 말괄량이었던 나는 늘 엄마와 충돌했고 자주 야단을 맞곤 했다.
그 당시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엄마가 뭘 알아?'였고, 엄마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나중에 너랑 똑같은 딸 낳아봐!'였다.
그리고 20년 후, 나는 딸이 아닌 아들을 낳긴 했지만 이제야 엄마의 마음이 그때 어땠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부끄럽지만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왜 엄마는 동생을 더 예뻐할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불만을 표출했을 정도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워낙 애교 있고 사근사근한 남동생과는 달리, 나는 엄마가 하는 조그마한 잔소리에도 날을 세워 더 크게 받아쳤으니 돌아오는 반응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것을 깨달을 정도로 철이 들진 않았었나 보다.
나의 지인들은 나를 정이 많고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지만, 사실 가족들만 아는 나의 진짜 모습은 다소 이기적이고 게으르다. 청소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한번에 몰아서 하는 스타일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며 누군가로부터 방해받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고 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말 아침이면 일어나는게 귀찮아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꾸물거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내가 이제는 아이의 작은 소리만 들어도 눈을 번쩍 떠 몸을 일으키고, 요리에 전혀 소질이나 흥미가 없어 내 밥은 대충 때울지언정 아이의 식사는 유기농 재료에 온 정성을 다 기울여 만들고 있는 것이다.
늘 스스로가 우선이던 내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자연스레 아이가 우선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사람인지라 유난히 심신이 지치는 날에는 아이에게 짜증 섞인 말을 할 때도 있었다.
'대체 왜 이래!'
'뭐 어떻게 하라는 건데!'
'누굴 닮아서 이러느냐고!'
그럴 때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남편의 한마디.
'누굴 닮긴. 당신 닮았지.'
하지만 아이에게 결국 화를 참지 못해 폭발한 날에는 그런 말을 들어도 남편을 원망할 틈도 없이 잠든 아이를 보며 '내가 아이를 키울 자격이나 있을까. 이 핏덩이가 뭘 안다고.' 하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잠 못 이루는 날도 허다했다.
물론 친정엄마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보다는 훨씬 순한 편이라고 하시지만, 요즘은 '이래서 자식을 낳아야 부모의 마음을 알고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하는 걸까.'싶은 생각이 종종 든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꼭 아이를 낳아야 부모 마음을 아나?'하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를 낳지 않고서도 부모가 된 이들보다 훨씬 철든 효자, 효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품 안에서 잠든 아이의 배냇짓을 볼 때, 눈도 못 뜨던 갓난아기가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발음으로 음마!(엄마)하고 날 부를 때, 나의 노랫소리에 고개를 끄떡거리며 활짝 웃을 때 등 사랑스러운 매 순간마다 드는 '아, 우리 부모님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싶은 벅찬 마음은 부모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이 뭐길래.
아이를 낳은 또래 친구들이나 친한 지인들과 자주 하는 말이다. 30여년을 내 마음대로 살아왔고, 심지어 부모님도 날 바꾸지 못했는데 대체 자식이 뭐길래 이토록 나를 변화시키고, 철들게 하며,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일까.
옛 어른들 말에 '애 키우느니 밭일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 하나도 건사하기 어려운데 누군가를 키워야 한다니? 게다가 밥만 주고 똥만 치워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기 때문에 말 하나, 행동거지 하나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나도 엄마가 되어보니 비로소 '우리 엄마가 참 현명한 여인이었구나.'싶다. 동시에 '날 키우며 정말 힘드셨겠다.'라는 죄스러움은 덤.
늦은 저녁, 아이가 잠든 후 그날 찍어둔 영상과 사진을 함께 보는 것이 어느새 남편과 내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과가 되었는데, 몸은 지쳐도 영상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와 더 신나고 밝은 목소리로 웃는 나를 발견한다.
자식을 키운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이전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크기의 행복을 온몸으로 느낄수 있는 일. 그리고 나의 부모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할 수 있게 만드는 일.
언젠가 아기와 함께 외출했을 때, 모르는 한 어르신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황금 같은 시기라고.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 왔던 그 당시엔 크게 공감되지 않았는데, 아주 조금씩 그 말이 마음속에 물감처럼 스며드는 느낌이다.
우리의 부모님들도 똑같은 길을 걸어왔을 것이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도, 그리고 당신도 이렇게 부모가 되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