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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Aug 17. 2020

#4. 약도 없는 산후우울증

초보 엄마의 산후우울증 극복기 (2)

산후도우미를 1주일 쓰고 2주 더 연장한 걸로 모자라,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께서 한 주동안 우리 집에 와계셨다. 이유는 내가 너무 힘들어했기 때문에.

10월 말에 출산하고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을 신생아와 집에서 보내며 나도 모르는 새 산후우울증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나 보다.

'이건 평소 우울증을 앓던 사람들이나 걸리는 거 아닌가? 아니, 게다가 나는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었고 조리원에서도 이러지 않았는데 내가 대체 왜 이러는 거지.'

그때의 나는 아기와 둘만 남겨지는 시간이 너무나 두려웠다. 게다가 아기가 자고 있을 때도 깰까봐 불안했으며, 깰 것처럼 으앵 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TV에서나 봤던, 남 얘기인 줄로만 알았던 일이 내게 닥칠 줄이야.

'내가 진짜 엄마 맞나? 다른 엄마에게 갔으면 아기도 더 행복했겠지.'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닌데, 이상하게 자꾸만 나를 자책하게 되었고 자신감도 줄어들었다.

저녁 6시에 이모님이 가시면 남편 오기 전까지 시계만 봤고, 아기가 배앓이로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기를 안고 같이 울곤 했었다.

신생아 때는 놀아줄게 딱히 없기 때문에 아기가 졸린데 잠에 쉽게 들지 못하거나, 울 때에는 아기를 안고 창밖을 보는 날이 많아졌다. 우리 집은 꽤 고층인데, 아기를 안은 채로 어둑어둑한 하늘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깥 풍경을 때면 괜히 눈물이 나고 이곳에 갇혀있다는 느낌에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나는 상태가 나아지긴커녕 아기 울음소리에 더 예민해졌고 내가 느끼기에도 눈빛에 초점이 사라졌으며, 가끔 거울을 보아도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던 가족과 지인들도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아기도 많이 컸잖아.' 하며 10번 중 1번은 왜 너만 그러냐는 식의 말을 할 때가 있었는데, 꼭 그런 말들이 유독 날카롭게 꽂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창밖을 내려다보는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어 스스로도 너무나 놀라 남편에게 울며 빨리 오라고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출산 후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반복해서 우울하다는 나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고, 긍정적인 말로 위로도 많이 해주었다. 그런데 같은 말도 계속 들으면 지치는 법. 그날은 남편도 조금 힘들었나 보다.


'아이 낳은 것이 후회돼. 그냥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걸.' 하는 나의 말에 날 보는 남편의 눈빛이 조금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게 건넨 한마디.


"그런 말은 좀 안 하면 안 돼? 다른 사람들은 다 잘 키우는데. 그리고 산후우울증, 인터넷엔 1달 정도면 끝난다는데 그거 언제까지 가는 거야?"


누구나 힘든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지치고 짜증 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스스로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 롤러코스터 같던 시기라, 그 말이 너무나 상처로 다가왔다.

아이를 키울수록 점점 나의 못난 밑바닥을 보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녀로 낙인찍히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하려고 낳은 아기인데, 왜 이렇게 답답하고 슬프기만 하지.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던 시간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육아 정보 카페에 고민 글을 써서 올리자,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육아 동지들이 수많은 댓글을 달아주었다.

'나도 그렇다, 엄마도 사람이다.'라는 공감 댓글부터 힘내라는 응원 댓글, '아기가 무슨 죄냐, 모성애가 없는 것 같다.'는 비난 댓글까지. 그래도 그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던 건 병원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는 댓글.


'내가 심리상담씩이나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 건가? 그럼 보통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다는 건데.'


더 이상 우울해하지 않고 이 상황을 극복해보려고 고민 글을 올렸던 건데, 상담을 권하는 댓글들로 나는 스스로 남들과는 다른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 더 우울해지고야 말았다.


내가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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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글을 보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저는 현재 아기와 함께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고,

이 글은 작년 제가 힘들었던 시기를 적은 글이에요.^^

과거의 저처럼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초보엄마의 산후우울증 극복기 다음 글도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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