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도 두 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해야 하는 신생아 시기를 벗어나, 생후 100일쯤 되면 비로소 아기가 통잠을 자기 때문에 100일의 기적이 온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아기마다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아기들에게는 100일의 기적이 아닌, 100일의 기절이 올 수도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엄마들은 과연 우리 아기는 어느 쪽일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100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나의 경우는 다행히 100일 즈음부터 통잠은 아니어도 조금 수월해지긴 했지만, 그 100일까지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지. 오늘은 내가 가장 힘들었던 60-80일 즈음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의 남편은 야근이 꽤 잦은 편이다. 그런데 출산 후 팀이 바뀌면서 더욱 바빠져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도 허다했고, 나는 덕분에 24시간 오롯이 혼자 육아를 전담하며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나도 한때는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는데.
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쁘게 꾸미고 친구들도 만나고, 직장을 다닐 때가 있었는데.
나는 내 일을 매우 사랑했고 쌓여가는 커리어가 자랑스러웠다. 팀원들과 사수로부터 인정받을 때, 성취감에 무척 행복했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으며 동시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일을 그만두고, 내 눈엔 어느 하나 변한 것 없어 보이는 남편과 달리 몸도 마음도 변해버린 내 모습에 눈물이 났다.
'지윤이 너, 아기 낳고 너무 변한 거 아니야?'
'관리 좀 해야지. 연예인 누구는 100일 만에 20킬로를 감량했다더라.'
주변의 말들에 난 더 작아져만 갔고, 점점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였다.
물론 아기는 너무 예쁘지만, 심신이 지쳐가다 보니 나중엔 그마저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후회스럽고 되돌리고 싶고 내 인생이 끝난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것처럼 들릴지 모르고, 누군가에겐 비난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땐 정말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하루 병든 닭처럼 지쳐가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한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주말, 혼자 나가서 좀 시간을 보내는 거 어때?"
아기는 어떻게 하냐고 묻자, 흔쾌히 자기가 보겠다는 남편. 처음에는 조금 불안했지만, 남편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바로 '오케이, 콜!'을 외쳤다.
드디어 기다리던 주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충 눈곱만 떼고 옷을 갈아입자, 남편이 '밥 안 먹고 나가?'하고 묻는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나가서 먹을 거야!"
대충 백팩에 생각나는 대로 물건을 쑤셔 넣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는데, 아기에게 인사를 안 한 것이 생각났다.
다시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엄마 다녀올게! 아빠랑 좋은 시간 보내고 있어.' 하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날 빤히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았다.
발이 잘 안 떨어진다는 내 등을 밀며 걱정 말라고 얼른 다녀오라는 남편. 맛있는 것도 사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오라며 용돈도 두둑하게 챙겨주었다.
그렇게 나는 출산하고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바깥으로 나오게 되었다. 곰이 겨울 내내 동굴 속에 있다가 나오면 이런 느낌인가?
한겨울, 아침 7시 반의 공기는 너무나 차고 상쾌했다.
아침 8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의 공기는 무척 시원했다. 출산 후 별것도 아닌 일상이 내게는 모두 특별한 것이 되어, 문득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두고 나오긴 했는데 갈 데가 없다.
어딜 가지? 뭐 하지? 아, 어제 좀 생각해둘걸.
막연히 길을 걷다 사우나가 보여 무작정 들어갔다. 이 시간에 사우나는 처음 와보는데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처음으로 세신도 받아보고 뜨끈한 탕에 들어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한참을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멍하니.
찜질방에서 혼자 계란이랑 식혜도 사 먹고 티브이를 보는데 그다지 즐겁지 않다. 휴대폰을 꺼내 아이 사진을 보았다. 분명 우울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이렇게 아기 사진을 많이 찍어두었지?
집에서는 사진을 찍기만 하고 볼 시간은 딱히 없었던 터라,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어제 찍은 사진까지 천천히 하나하나 모두 보았다.
임산부 시절, 사랑하는 할머니와 삼촌을 보내드리고 두 번의 상을 치르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제대로 태교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태어나기만 하면 무한한 사랑을 주겠노라 다짐했는데 이렇게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두고 지금 난 나와서 혼자 뭘 하고 있는 건지.
집으로 돌아갈까 싶었지만 이제 고작 오전 10시.
오늘은 최대한 날 위해 시간을 보내자고 생각하여 밖으로 나와 서점으로 향했다.
평소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서점에 들렀는데 이곳에서도 내 눈이 가는 건 육아서적 코너.
이리저리 훑어보다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라는 책을 골라 카페로 가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찬찬히 읽어보았다.
'다른 아기들도 그렇구나.' '처음이니까 누구나 이렇게 힘든 거구나.' '나만 시행착오를 겪는 게 아니었어.'
책 본문에는 아기를 키우며 힘든 순간들에 대해 당연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도 세상이 처음이고, 엄마도 처음이기 때문에 서툴고 힘든 것이 당연하다고.
왜 나는 완벽하려고만 했을까? 무슨 자만심으로 혼자 다 떠안으려 했을까?
책을 읽다 보니 집에서 남편에게 연락이 온 줄도 몰랐다. 빨리 오라는 독촉 문자일 줄 알았는데,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여러 장 온 것을 보고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에 엉엉 울었다.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여성분이 놀라 휴지를 건네주셨는데, 감사하다는 말을 제대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카페에서 3시간 넘게 책을 읽고, 밖으로 나와 하릴없이 걷다 맛있어 보이는 텐동 집이 보여 들어갔다. 혼자 대낮에 이렇게 나온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라 기분도 낼 겸 맥주까지 시켜본다.
혼맥이라니. 아가씨 땐 그저 일상이었던 것들이 지금은 그저 감개무량하다.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자, 뿌듯해하며 아기랑 잘 놀고 있으니 저녁 늦게 들어오라는 답장이 왔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편치 않은 마음. 밥을 먹으면서 또 아기 사진을 봤다.
집에서는 그렇게 나가고 싶었는데, 아이 울음소리가 너무 끔찍하고 보기도 싫었는데 난 왜 나와서 아이 사진만 보고 있지.
즐겨, 즐기라고. 바보야!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들었지만 저녁까지 먹고 들어간 나. (이 이야기를 나중에 엄마에게 했더니 나에게 독한 년이라며 얼른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뭐했느냐고 혼이 났다.)
그렇게 밖에서 장장 12시간을 보내고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니 '왔어?' 하며 날 반겨주는 남편의 목소리. 그리고 거실에 가만히 누워 날 보는 아기.
하루 못 봤을 뿐인데 며칠 동안 못 본 것 같은 느낌에 아이를 들어 올려 안아주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남편에게 조잘조잘 떠들다 보니 어느새 웃고 있는 나.
즐거웠나 보다고 다음에 또 혼자 나가서 시간 보내고 오라는 남편에게 사실 밖에 나가서 아기 사진만 봤다고 하니, 남편이 다소 놀라는 듯했다.
아이 때문에 힘들었던 거 아니냐고 묻는 남편의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출산 후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불안한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준 건 아이라는 걸 한참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눕히기만 하면 울었던 신생아 시절, 하루 종일 안고 있어 온몸이 아프다며 투정 부리곤 했는데 그날 이후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몸도, 마음도 회복되지 않은 시기에 엄마를 안아주어 고맙다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와주어 활짝 웃어주는 네가 너무 감사하다고.
사랑하는 나의 아가. 더 이상 네게 미안하단 말은 하지 않을 거야. 엄마는 완벽하진 않지만 네게 최선을 다하고 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세상에서 널 가장 사랑하거든.
훗날 네게 완벽하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노라고, 엄마의 아들이라 행복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엄마부터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거야. 엄마가 행복해야 너도 행복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