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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히 Feb 14. 2021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매번 명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명절 마지막 날 이맘때 즈음이면 참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전날까지만도 ‘신에게는 아직 연휴 하루가 더 남아 있습니다’는 위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뭐 한 것도 없는데 명절 연휴가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는 회한만 남는다.


특히 이번 설 연휴는 예전 설날과 달리 어디에 가지 않고 온전히 집에만 있었는데, 그래서 뭔가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뭔가 한 게 없다는 자책감이 더 크다.


따지고 보면 굳이 명절뿐만이 아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늘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월요병’이라는 말이 전 세계적으로 있을 정도면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기분일 거라 위안을 삼는다.


언제나 그렇지만 뭔가 특별한 날을 앞둔 전날 저녁이 설렘이나 편안함의 수치가 가장 높아지는 때인 것 같다. 이번 설날 역시 지난 수요일 퇴근 후, ‘신에게는 아직 4일간의 연휴가 남아 있습니다’라며 세상 편하게 ‘인투 더 스톰’이라는 토네이도 영화를 보면서 맥주 한 잔 쫙 들이켜던 그 순간이 최고치였다.(그나저나 ‘인투 더 스톰’이라는 영화, 정말 실감 나는 토네이도 영화였다)


다시 수요일 저녁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하는 헛된 망상은 뒤로 하고, ‘신에게는 아직 오후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라는 위안을 찾아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전보다는 ‘월요병’을 그나마 덜 앓고 있다는 것이다. ‘월요병’을 덜 앓고 있다는 건 ‘명절병’도 덜 앓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냥 일요일 저녁이면, 명절 연휴 끝나는 날이면, 다음번 금요일 저녁을 생각하고, 다음번 명절 이브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그래, 내가 아무리 용을 쓰고 기를 써도 시간을 이기지는 못한다. 시간과의 싸움에선 지고 들어가는 게 정답이다. 시간이라는 파도를 잘 야 한다. 그 방법이란 게 늘 책에서 말하는 ‘현재를 살아라’는 것일 것이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본들 쓸모가 없고,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는 것도 정말 부질없을 터, 그냥 내게는 아직 충분히 즐길만한 오후 시간이 남아있다는 거에 초점을 맞추는 거다. 현재, 과거, 미래, 세 가지 옵션 중 현재에만 집중한다면 3분의 1로 단순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내가 요즘에 딱 꽂힌 노래가 있다. 뮤지컬 ‘서편제’서 나온다는 ‘살다 보면’이라는 노래가 최근에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싱어게인’ 등의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가사 중에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라는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예전 국어 시간에 배웠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의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시구와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그래, 뭐 이래저래 따질 거 있나. 그저 사는 거지. 그러면 살아지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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