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미경 Aug 03. 2020

술집을 열자 구 남친들이 몰려왔다

62년생 박미경 이야기

40대 후반일 적에 나는 20여 년간의 큐레이터 생활을 청산하고 마포구에 작은 바(bar)를 연적이 있다. 영어가 안되니 국제교류가 기본인 시대에 큐레이터로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공기관의 기획전 정도였는데, 그런 일들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해 봤자 인건비를 제대로 가져가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문의 트렌드와 글로벌 흐름을 따라가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했는데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다.


그렇지만 다른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나는 무작정 술집을 차렸다. 아무 경험도 없고 아무 지식도 없으면서 말이다. 망하기로 아주 작정을 한 것처럼.


물론 그 당시에는 나름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간 쌓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인맥을 믿었다. 그리고 석촌역의 사주 보는 선생님도, 유명하다는 타로 선생님도, 다 잘 된다고 했다. 2호점, 3호점 까지도 낸다고 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첫눈에 내 맘에 든다는 이유로 비싸게 권리금을 주고 비싼 월세를 내는 공간을 계약했다. 물론 수중에 돈 한 푼이 없었으니 빚을 내었다.


비주얼  컨셉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블루 벨벳(Blue Velvet)"으로 잡고, 그 영화에 나오는 "In Dreams"라는 노래를 그 공간의 주제가로 설정했다. 영화미술을 하는 친구들이 컨셉에 맞게 인테리어를 해주었다. 술이며 안주 리스트는 주변인들이 도와줬고 음악 리스트도 여기저기서 얻어서 얼렁뚱땅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술집을 오픈하게 되었다.


그러나 술집을 운영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인테리어도, 안주도, 술도, 음악도 아니라는 것을 망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주인장이다. 주인장의 성향과 마인드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쓴맛을 보고야 알게 되었다.

술집을 열자 여러 종류의 손님들이 왔다. 물론 내가 원래 예상했던, 원했던 손님들이 메인이었지만, 뜻밖의 손님들도 찾아왔다.


내가 연락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오래전에 알던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물론 일부러 찾아와 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내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 같은 동네에서 살던 엄마들이 찾아왔다. 몇 년 동안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궁금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그 시절의 여러 가지 상처들로 차가워진 내 심장과는 달리, 따뜻한 마음을 지닌 그들은 내가 궁금했고 이 공간이 궁금했었나 보다.


가지각색의 동창들도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오곤 했다. 사실 내가 제일 어색한 것이 바로 동창들이다. 할 얘기도 없고 오래전 일들은 기억이 잘 안 날뿐더러, 사실 얼굴도, 이름도 난 전혀 모르겠는 경우도 많은데 말이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예전에 사귀었던 구  남친들의 방문이었다. 이젠 정말 이름도 가물가물한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아니, 사실은 왜 찾아오는지 의문이었다.


멀리는 30년 가까이를 비롯하여 몇십 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나를 기억을 하고 있는 것부터가 참 신기했다. 물론 궁금해서,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어서 찾아올 수는 있다 치자. 문제는 찾아와서 하는 행동들이 나로서는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혼자 오긴 뭣하니까 여러 명을 데리고 오긴 하는데 마지막에 꼭 혼자 남는 사람이 있었다. 끝에는 항상 만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어, 나의 부탁으로 연장근무를 하게 된 알바생이 택시를 태워 보내곤 했다.


아예 올 때부터 만취한 상태여서, 상대를 해줘도 상대를 안 해줘도 꼬장을 부리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그만 가라는 내 말은 무시하고 나를 앉혀놓은 채 새벽 6시까지 지겨운 얘기를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고, 술김에 찾아는 왔는데 용기가 없어 들어오진 못하고 술집 밖에서 나를 훔쳐보던 사람도 있었다.


직장 동료 여러 명을 데리고 와서 나를 자기 옆에 앉혀놓고 내가 아직도 자기 여친인양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일까? 도대체 몇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나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인지, 감정이 남아있다 해도 지금 와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찾아오면 내가 반가워할 줄 알았던 것인지, 저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은지, 돈을 내고 술을 사 먹으면 이 정도는 당연하게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혼자 남아서 취해 있으면 내가 무얼 어떻게 해주기를 기대한 것인지.... 나는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물론 특별히 뭘 바래서가 아니라 예전의 추억을 되살리면서 잠시 피곤한 일상에서 마음을 쉬어가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술집 주인이라면 그걸 당연히 받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건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그러려고 아는 사람의 술집에 가는 것이겠지. 아는 사람에게 편하게 자신의 감정을 다 쏟아놓고 릴렉스 하려고 말이다. 아는 주인장이 있는 술집의 장점이 그런 것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옛 애인들의 게슴츠레한 눈빛을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내가 이 공간을 열지 않았으면 겪지 않았을 이러한 눈빛을, 이러한 묘한 기분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나는 술집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그때 나는 깨달았다. 그 사람들이 특별히 잘못을 한 게 아니라, 그런 행위들을 받아줄 수 없는 성격의 내가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술집을 하려면 사람 자체를 좋아해야 한다. 아니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쌍한 중생들을 언제나 환대할 수 있는 사람, 원하지 않는 손님이라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 설사 속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척이라도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친이 궁금하여 그녀가 열었다는 술집에 와서 만취해서 비틀거리는  남친들을 불쌍히 여기고 다독거려줄 수 있는 아량, 그래서 그들이 다시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기술, 더 나아가 건전한 비즈니스 관계로 발전시켜 매상을 올려줄 수 있는 손님으로 만드는 능력, 나는 이런 술집 주인이 결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술집 주인이란 그저 술과 안주와 공간을 제공하는 직업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감정 소모를 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을 환대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술집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완전히 반대의 사람이었기에 최악의 술집 주인이 되어있었다.


*술집 에피소드는 이후에도 종종 쓸 예정입니다.

*다른 의견이라도 예쁜 말로 댓글 달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