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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Nov 13. 2024

세상은 원래 불공평해

일부러 병균을 퍼드리진 마세요

일부러 병균을 퍼뜨리려 애쓰지는 말아 주세요

de ne pas propager volontairement le microbe.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페스트에 나온 문장입니다. 사실 그렇게 유명한 문장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페스트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이었습니다.


소설 속 페스트는 '부조리' 그 자체입니다.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들이닥쳐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일상을 무너뜨리고 가족과 생이별을 시켜버렸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어린아이에게 조차 페스트는 잔인하도록 공평하게 다가왔습니다.


부조리는 우리의 신념이 깨지는 것, 이 세상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는 신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붕괴뿐만 아니라, 과학과 사상의 발전이 인류를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무너져버린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진 모든 상태를 일컫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이 부조리를 페스트에 빗대어 이야기를 이끌갔습니다.


이러한 참담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기뻐하고 있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코타르입니다. 그는 어떠한 범죄를 지은 사람인데 페스트로 인해 도시가 봉쇄되자 오히려 밀수 등으로 큰 이익을 얻는 사람입니다.


페스트를 이겨내기 위해 보건대를 만든 타루는 코타루에게도 보건대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기 위해 그에게 접근합니다. 하지만 코타르 입장에서는 지금 이 상황을 끝내려는 보건대에 당연히 가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타루의 권유를 거절한 코타르에게 타루가 말합니다.


일부러 병균을 퍼뜨리려 애쓰지는 말아 주세요

de ne pas propager volontairement le microbe.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니체와 알베르 카뮈 같은 사람들을 부조리와 허무주의를 세계에 퍼뜨린 코타르 같은 존재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이 부조리라는 페스트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보건대입니다.


그러면 일부러 병균을 퍼뜨리는 사람은 누굴일까요?


열심히 훈련을 해서 올림픽에 나간 선수 A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법 약물을 통해 스트렝스와 수행능력을 얻은 B가 있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평생을 노력한 선수 A는 선수 B에게 패배했습니다. A는 큰 절망을 느낍니다. 수십 년간의 노력이 약물하나에 져버렸습니다. 그는 부조리를 느낍니다. 소설 속 이야기로 말하자면, 그는 페스트에 감염되었습니다.


현실에서는 더한 일도 많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페스트를 일부러 퍼뜨린 코타르는 누구인가요? 바로 불법 약물로 수행능력을 끌어올린 선수입니다. 그는 선수 A에게 굴욕감을 주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수 A에게 큰 고통을 주었고 선수 B는 이를 마음으로 조용히 동의했습니다.


그의 유일하고 진정한 죄는 어린아이들과 사람들을 죽게 만든 일을 마음속으로 승인한 것입니다. 그 외의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만은 그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Son seul vrai crime, c'est d'avoir approuvé dans son cœur ce qui faisait mourir des enfants et des hommes.


누구나 1등을 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싶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추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누군가가 피해를 볼 수도, 좌절할 수도,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채, 마음속으로 승인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당연히 불법약물을 사용해서 1등 한 거는 잘못한 거지!라고 하겠지만 스스로에게도 물어봅시다.


누군가가 상처받을 수 있고, 신념이 무너질 수 있고, 좌절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으로 승인하고 행동하거나 말을 한 적이 정말 한 번도 없나요?


불의에 또 다른 불의를 보태지 않도록 정의에 봉사하고, 세상에 가득한 거짓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명료한 언어를 쓰고...

-알베르 카뮈, 반항하는 인간


"이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거야"라는 말로 자신을 정당화하며 자신의 사상을 억지로 남에게 밀어 넣은 적은 없나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경험은 없으신가요?


자신의 감정 때문에 남에게 상처받을 걸 예상하면서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나요?


"어차피 세상은 불공평해" 라며 본인이 불공평한 행동을 한 적도 정말 단 한 번도 없나요?


이 세상은 이미 페스트에 감염된 세상이지만 그래도


일부러 병균을 퍼뜨리려 애쓰지는 말아 주세요

de ne pas propager volontairement le micr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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