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림쟁이들은 대부분 타고난 재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노력보다 감으로 취화선의 주인공처럼 어떤 영감이나 느낌으로 그림의 맛을 살려간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하지만 내게 ‘손’은 여전히 영감과 거리가 먼, 그야말로 경직되고 긴장되는 신체부위에 지나지 않았다.
투박한 내 손
내 손은 영락없는 엄마의 손이다.
제법 길고 큰손은 유독 세 번째 마디들만 두꺼워 부잣집 마나님 손처럼 두툼하다.
그림 좀 잘 그려보자고 연습 삼아 내 손을 그대로 따라 그리다 보면
원하는 여성스러운 손보다, 외계인 손이 돼버린다.
결국 벙어리장갑 같은 모양새의 손으로 마무리되어, 3등신이나 5등신의 귀염뽀짝 한 캐릭터 그림에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낙서를 시작하면서, 가장 그리고 싶은 그림은 뭘까 생각해 보니, 아이러니하게 손을 그리고 싶었다. 심지어 입시 시절 석고상 파듯 심취해 결국, 엄마의 손까지 그려보고 싶어졌다.
쵸크 질 하는 엄마 손.
우리 엄마는 한복집을 하셨다.
내 손과 비슷하지만 조금 날씬했던 엄마의 손은 오랜 재봉틀질과 손바느질 자국으로 세 번째 손가락 첫마디가 휘어있고 손톱도 조금 이상하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셋방 달린 가게에서 처음 개업하셨는데 언제나 우리 집은 재단된 한복 천과, 재단 자, 초크, 재봉틀, 마네킹 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엄마가 가장 멋있어 보일 때는 재단할 때인데, 날카롭고 판판한 한복 재단자로 천을 이리저리 맞추며 초크 질 하는 엄마의 모습은 마치 당구대에 서 있는 차유람 같은 당당함이 있었다.
내가 당구여신들을 좋아해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손
여하튼 그랬던 엄마가. 지금은 재봉틀 앞에 앉지도않으시고, 작은 수선이라도 할라치면 바늘에 실 한 가닥 끼기 어려워하신다. 팽팽했던 손도 어느새 쭈글 한 할머니 손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 손이 가야 할 길을 미리 보여주시기라도 하듯 엄마는 이제 노인이 되셨다.
처녀시절, 양장을 배우시면서 사회생활을 하시고, 결혼 후 갑작스레 남편과 사별해
홀로 되신 엄마는 부천에서 양재역 회사까지 출퇴근하시며 몇 번이나 기절하셨다.
태생이 약한 몸이었던 엄마는 당시 신도림역에서 미어터지는 지옥전철을 견디지 못하시고
응급실에도 자주 실려가셨다. 그런 엄마가 나와 오빠를 건실히 키워내고
이제는 시니어 취업까지 하셔서 자식들에게 손 벌리는 일 없이 사시는데도,
나는 뭣하나 만족스럽게 해드리지 못한 딸로 자라났다.
이상하다. 드라마에서 보던 K 장녀까진 아니라도, K 차녀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어떻게 커갈수록 더 철이 없어지니…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데, 엄마만 늙어가는 것 같아 세월만 야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