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몸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식단을 조절하고,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에 힘쓰고, 부상당하지 않게 조심하면 된다. 그 과정은 힘겹다. 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오늘 하루는 운동을 건너뛰고 싶다는 게으름을 떨치고, 더 무거운 역기를 들려는 욕심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견딘 자만이 건강하고 균형 잡힌 몸을 소유할 수 있다. 몸을 조각하는 일에 조급함과 꼼수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답답한 시기를 겪으면 인간은 샛길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 상황을 빨리 해결하려는 반사 반응이다. 어떤 경우에는 무언가를 할수록 상황이 복잡해진다. 정도를 걸으면서 때가 되기를 기다려야 문제가 풀리는 일이 많다. 고단한데 방도는 없어서, 할 일에 집중하며 시간에 의지해야 하는 것들 말이다. 그것들은 인내를 요한다.
온오프라인 패션 편집샵들은 한 가지 공통된 고충이 있다. 바로 '재고 처리'이다. 재고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지 않아서 재고로 남은 것들이다. 보통 현 시류 사람들의 감성에 맞지 않아서 팔리지 않는다. 이런 옷들은 브랜드 소유주가 다음 시즌부터 들이지 않으면 손해를 줄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호불호가 적은 디자인에, 다양한 변수까지 계산하여 가져왔는데도 판매로 이어지지 않은 물건이다. 멀쩡한 재고품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말이, 패션 편집샵 업계에서 공공연하게 돈다. 업계가 언급하는 재고품은 후자를 뜻한다.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편집샵의 존망이 결정된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남성 편집샵, 네이비 마켓(Navy Market)은 재고로 남은 물건들을 슬기롭게 다룬 브랜드이다. 네이비 마켓의 김동우 대표는 세계 각지에서 네이비 색 의류를 수입한다. 네이비 티셔츠, 니트웨어, 점퍼, 재킷, 코트, 팬츠 등이 매장에 가득하다. 최근에는 네이비와 어울리는 화이트와 카키, 오렌지 색의 옷들도 취급한다. 옷 대부분이 모나지 않은 색감이고 유행을 타는 않는 모양새이다. 소재의 등급이 높고 옷감은 촘촘하게 직조되어 있다.
이처럼 좋은 옷을 들이는 그의 노력은 진지하다. 김동우 대표는 제품을 들일 때 여러 절차를 거친다. 브랜드에 연락해서 미팅을 잡고, 만나서 관계자들의 태도와 브랜드의 지향점을 살핀다. 그들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바로 계약하지 않는다. 제품을 직접 일정 기간 사용해보고, 만족하면 정식 수입 절차를 밟는다. 가져온 이후에는 이 브랜드를 알게 된 계기, 브랜드의 역사, 제품의 장점, 사용 후기를 상세히 정리해서 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다. 그러나 몇 해 전에 특정 제품들은 고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 제품들은 재고로 남았다. 재고를 처리하는 방식에는 네 가지가 있다. 정상가를 유지하여 판매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할인가로 넘기거나, 증정용으로 제공하거나, 자체 폐기한다. 자체 폐기는 비용 문제가 발생해서 보통의 브랜드는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한다. 김동우 대표는 첫 번째 방식을 취했다. 기다릴 수밖에 없다면, 물건이 온전한 상태에서 주인을 만나기를 그는 바랐다. 성급한 할인이나 덤에 의해 정성껏 가져온 물건들이 과소평가되는 것을 김동우 대표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네이비 마켓의 신념대로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소개하는데 열중했다.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다니며 다가올 시즌을 준비했고 소셜 미디어에 관련 정보를 꾸준히 올렸다. 문의가 있으면 자세히 안내했고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기적으로 매장과 물건도 관리했다. 모든 일이 재고를 떠안은 부담 속에서 행해졌다. 더욱이 코로나로 해외 배송 기간이 늘어났다. 일자를 놓치면 새 제품들이 또 다른 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부담과 근심이 맞물리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김동우 대표는 견디었다. 처신을 단순하게 하면서, 본인의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근사한 물건들이 누군가의 삶에 안착하는 순간을 그리며, 그는 해야 할 일을 했다.
시간이 흘렀다. 묵묵한 걸음 끝에, 재고품은 함께 살아갈 사람의 품으로 갔다. 평소 네이비 마켓에 관심이 있던 이나, 김동우 대표의 블로그 글을 읽은 독자들과 단골, 입소문으로 찾아온 고객들이 그들이었다. 김동우 대표의 부단함이 네이비 마켓의 분위기를 다졌다. 성숙해진 분위기는 그가 소개하는 물건 곳곳에 스몄다. 그 작용으로 재고품들은 가치가 훼손되지 않은 채 판매되었다. 김동우 대표는 단기적인 관점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의 편로보다 자신의 편집샵이 기복 없이 존속할 수 있는 길에 발을 디뎠다. 시간이 걸리고, 실망이 필연이며, 위로조차 기대할 수 없는 노고의 길이다. 그러하지만 걸어가다 보면, 고대하던 결과를 끝에서 마주한다. 네이비 마켓의 김동우 대표는 인내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대단한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힘은 오히려 단순한 인내이다.
-호레이스 부쉬넬-
브랜딩이 매번 수월할 수는 없다. 브랜드의 윤곽을 완성시키고 알리는 과정에서, 벽을 마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 인내하는 자세가 그 벽을 넘어서는데 도움이 된다. 특정 전략이 효과를 볼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성화에 못 이겨 전략을 계속해서 바꾸는 브랜드가 얼마나 많던가. 제품과 서비스에 담긴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면서 팔리지 않으면 할인부터 하거나, 경쟁사를 과도하게 의식한 나머지 그들의 행보에 따라 자사의 행보도 결정하는 곳들 말이다. 불안한 심정에 뒤바꿈이 잦으면 일을 그르친다. 그런 브랜드는 줏대가 없어 보인다. 전략에 이상이 없으면 마땅한 도리에 집중하고 있으면 된다. 시간의 풍화로 그 전략은 엉킨 실타래가 풀어지듯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할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지혜이다. 지혜를 지혜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묘안은 가까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