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지오 Sep 20. 2022

집념


집념(執念). 잡을 집자에 생각 념으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마음속에 생긴 생각을 잡는다, 즉 한 가지 일에 매달려 정신을 쏟는다는 말이다. 브랜드의 고유한 느낌을 만드는 과정은 집념이 없으면 불가하다. 철학도 친절도 전환도 앞으로 다룰 원칙들도, 그것들을 내재화하겠다는 집념이 있어야 브랜드는 브랜드만의 길을 닦을 수 있다. 특히 집념은 철학과 연관성이 있다. 브랜드 철학이 있으나 이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으면 어떠할까. 주변을 보면 사업 정체성이 계속 바뀌는 브랜드가 있다. A가 자신들의 정체성이라고 선언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B로 바꾼다. 그 B도 오래가지 않는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대개 집념이 없어서 그러하다. 브랜드가 달성하려는 지향점에 창업자가 확신이 선다면. 그에 팀원들이 공감한다면. 브랜드는 그 확신을 밀고 나가야 한다. 세간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브랜드 스스로가 브랜드 고유함에 자신 있는지가 관건이다.



집념의 자세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구축한 곳이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클래식 남성복 브랜드, 사르톨로지(Sartology)이다. 사르톨로지는 맞춤 서비스를 운영한다. 셔츠, 재킷, 팬츠를 고객의 신체에 맞게 제작한다. 이때 사르톨로지는 자체적으로 구축한 실루엣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몇 가지 부분을 조정한다. 고객의 취향을 전부 수용하지 않는 것이다.


사르톨로지의 배다솔 대표는 자연스러운 옷을 선호한다. 이는 60~70년대의 영화 007에서 받은 영감이다.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셔츠와 수트를 입고 등장한다. 그의 옷은 몸에 달라붙지 않는다. 품이 여유로워서 흐르는 듯한 볼륨감이 느껴진다. 인위적으로 꾸민 흔적은 없다. 배다솔 대표는 그 모습이 진정한 클래식 패션이라고 생각했다. 2016년에 사르톨로지를 창업하면서, 007에서 발견한 스타일을 표현하고자 배다솔 대표는 공들였다. 그는 수많은 옷을 해체하여 분석하고, 원단을 자르고 꿰매면서 풍성한 실루엣을 만들었다. 그러나 맞춤집의 특성상 고객이 요구하는 사항을 반영해야 했다. 클래식 패션 마니아들은 자기들만의 기준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슬림한 핏을 찾고, 어떤 사람은 레귤러 핏을 원했다. 또 어떤 사람은 주머니 모양, 소매 각도, 단추 간격에 집착했다. 각각의 스타일은 천차만별이었다.


배다솔 대표는 사업 초기에 고객의 요구를 거르지 않고 받아들였다. 몇 가지에 불과했던 지시의 종류는 점차 늘어났다. 작업 내용이 많아질수록 옷을 만드는 과정이 복잡해졌고 사르톨로지의 실루엣은 퇴색되었다. 고객들이 입는 옷에 같은 로고가 박혀 있을 뿐, 그 옷이 사르톨로지의 옷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입는 이의 멋이 은은하게 드러나게끔 입체감 있는 옷을 짓는 점이 사르톨로지의 매력이었다. 그것을 지키려면 배다솔 대표는 본인의 실루엣만을 내세워야 하는데, 이는 방문객 수를 떨어뜨리는 처사일 것이었다.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과 현실 사이에서, 배다솔 대표는 고심했다. 배다솔 대표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했다. 사르톨로지를 통해서 남성들에게 어떠한 옷을 선보이려고 했는지를 그는 재조명했다.


굴곡을 그리는 듯한 원형(圓形)의 질감이, 사르톨로지의 근본이다. 그 근본을 표현하기 위해서 배다솔 대표는 자기 브랜드를 세웠다. 그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원래부터 사르톨로지가 고수한 실루엣을 밀고 가기로 했다. 그 실루엣은 맞춤 시 고정이다. 고객은 어깨너비, 몸통·팔통·바지 밑단의 품, 바지 기장, 허리둘레, 옷의 총장, 주머니와 카라 모양, 원단 정도 고를 수 있다. 지인들이 그의 결정에 우려를 표했다. 선택지를 제한하면 고객층이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다솔 대표는 개의치 않았다. 넉넉하고 편안하게 감싸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르톨로지를 찾아올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배다솔 대표는 둥근 윤각을 지닌, 그래서 옷과 몸이 하나로 스미는 옷을 만드는데 성심을 다했다. 추구하는 바의 의의를 믿었기에, 만류와 간섭과 유행에 흔들리지 않으며 그는 그의 입장을 유지했다. 그가 들인 노력은 사르톨로지에 뿌리를 내렸다. 대한민국의 많은 신사가 그의 매장으로 향한다. 그들은 자연스럽고 풍성한 사르톨로지의 옷을 입는다. 어려서 봤던 한 영화에서 배다솔 대표는 옷을 바라보는 관점을 건졌다. 그는 그 관점을 철학으로 삼아서 집념 있게 지키고 있다.



자리 잡은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보면 집념의 자세가  등장한다. 위기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확신했다. 미디어가 조롱하든 주변인들이 걱정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마음에 자리한  가지 방향만을 상기하면서 브랜드를 이끌었다. 다짐한 무언가를 끝까지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인간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압력과 내면의 불안감이 엄습하면, 맥없이 손을 펴는 존재가 인간이다. 손을 피면 브랜드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브랜딩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다시 주먹을 움켜쥐고 비탈진 능선을 타야 한다. 그것은 고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상을 믿는다면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집념이 브랜드를 정상에 오르게 하는 힘이  것이다.






이전 04화 전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