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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Sep 20. 2022

실속


실속 있는 브랜드는 내부가 단단하다. 사업 아이템, 부서 구조, 업무 체계, 인사 제도 등이 기능적이다. 그들은 각각의 본질에 집중한다. 사소한 것에는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 일에서 군더더기를 제하여 힘을 비축하고, 그 힘으로 목표를 적확하게 수행하는데 초점을 두는 셈이다.


실속 없는 브랜드는 이와 반대이다. 형식적인 회의가 많아서 구성원들의 노동력을 낭비한다. 유행에 집착하여 브랜드와 무관한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한다. 돈을 써야 할 곳과 아낄 곳을 구분하지 못하여 법인 통장은 늘 잔고가 부족하다. 규모에 연연해서 제품과 서비스의 수를 늘리는데 혈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전과 연례행사, 직위 및 직책 따위에 목숨을 건다. 겉으로 보이는 면이 우선이고 나머지는 뒷전이다. 알맹이가 부재한 브랜드는 업력이 더해지면서 하향세를 걷는다. 정작 기회의 순간에 역량을 모을 근기(根氣)가 부족해서이다. 조직 여기저기에 생긴 구멍은 그들이 그릇된 결정을 하게 하는 패착이 된다.



실속의 원칙을 행하는 브랜드는 패션 브랜드 매너그램을 꼽을 수 있다. 매너그램은 넥타이를 전문으로 한다. 2010년대 초에 대한민국 남성의 넥타이는 종류가 적었다. 주로 반짝이는 큐빅이 붙어 있거나 화려한 무늬의 넥타이였다. 매너그램의 용호득 대표는 디자인을 세련되게 하고, 소재를 다양하게 구성하면 대중의 호응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매너그램은 무늬가 없는 플레인부터 체크, 도트, 레지멘탈, 페이즐리처럼 넥타이의 전통 패턴을 입힌 제품을 만들었다. 소재는 실크 외에도 울과 셀비지, TR(폴리에스테르와 레이온을 합성한 원단)을 활용해서 넥타이의 질감을 세분화했다. 용호득 대표는 쇼핑몰 업체에 적극적으로 영업했다. 납품처가 늘면서 그의 넥타이는 대중의 인지도를 얻었다. 해외 패션 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물건이 대한민국에 등장하면서, 패션 업계도 매너그램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매너그램의 성장 배경은 세 가지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인재이다. 용호득 대표는 맡은 일을 근면하게 수행하고, 상대를 위하는 사람을 매너그램의 인재로 본다. 책임과 배려는 조직원들의 결속력을 향상하기 때문이다. 높은 결속력은 조직의 능률을 개선하여 매출을 견인한다. 매너그램은 적은 인원으로도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매너그램이 그의 인재상에 맞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근거이다.


다음으로 개발이다. 매너그램은 대중성을 지향한다. 여러 사람이 만족하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과업이다. 특정 집단만이 사용 가능한 물건은 내놓지 않는다. 대중성이 유효하려면 대중의 취향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래서 용호득 대표는 팀원들과 주기를 두고 시장의 동태를 파악해서 시기적절한 의류를 제작한다. 그들의 개발은 계획적이다.


마지막으로 비용 관리이다. 매너그램은 상황에 따라 사무실 위치를 조율해왔다. 매장을 차려야 하면 번화가에 마련했고, 온라인 사업이 주축일 때는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터를 잡았다. 클래식 패션 아이템을 판매한다는 명목으로 값비싼 자리를 고수하지 않은 것이다. 브랜드가 인건비 못지않게 부담을 느끼는 비용이 임대료이다. 용호득 대표는 오프라인을 내세울 시기와 그렇지 않을 시기를 구별하여 지출을 줄인다.


매너그램은 클래식 패션 불모지인 한국에서 순항 중이다. 실속 있는 운영에 의함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용호득 대표는 창업을 하기 전에 회사원이었다. 회사를 나와 한 브랜드를 이끄는 대표가 되면서 그는 무수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경험은 그에게 실속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브랜드가 발전하는 데 어떤 알짜가 우선인지 터득하면서, 용호득 대표는 매너그램을 가다듬었다. 현재 매너그램은 넥타이를 넘어서 셔츠, 재킷, 팬츠, 티셔츠, 머플러, 기타 액세서리까지 품목을 확장하여 어덜트 패션 브랜드로서 사세를 넓히고 있다.



성을 지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정확한 설계도와 튼튼한 돌이다. 설계도가 올발라야 돌을 쌓을 위치를 가늠한다. 돌이 무르지 않아야 돌들이 각각의 하중을 견딘다. 설계도가 불명확하면 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헤맨다. 약한 돌을 쓰면 성이 금세 무너진다. 성을 짓는 행위 자체가 아닌, 성을 '어떻게' 완성시킬지가 중요하다. 부실한 재료로 만든 성은 작은 바람과 비에 내려앉는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 브랜드를 이끌기 위해서는 원대한 꿈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속 있는 척도 역시 있어야 한다. 채용 방식을 정하고, 사내 복지의 수준을 설정하고, 제품과 서비스 개발 주기를 확립하고, 서류 양식을 통일하고, 영업이익에 따른 재투자 규칙을 세우는 것이다. 그것들이 브랜드를 굳건하게 하는 돌이며 설계도이다. 요소들이 실한 브랜드는 위기에 쉬이 무너지지 않으며, 이루고자 하는 바를 쟁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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