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있는 온라인 패션 커뮤니티는 '소통'을 잘한다. 커뮤니티 회원들은 누가 새 옷을 입고 사진을 올리면 사이즈가 적절한지 조언한다. 할인 행사를 하는 브랜드를 알려주거나 옷 관리법에 관한 지식도 공유한다. 커뮤니티 개설자는 그 소통의 선두에 서 있다. 보통 도움이 되는 패션 정보를 먼저 제공한다. 게시글에 댓글이 달리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답변한다. 개설자의 답변에는 매너가 묻어 있다. 또한 개설자들은 커뮤니티를 개선할 시에 회원 모두에게 의견을 묻고 반영한다. 독단하거나 상위 스텝들과 따로 의논하지 않는다. 간혹 공동 구매를 진행하는데, 그때마다 개설자는 회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그것들 중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물건을 업체에 주문한다. 이후에는 물건이 배송되는 전 과정을 공지하고, 주문한 회원들이 물건을 받았는지 확인한다. 커뮤니티 개설자와 회원들 사이에는 벽이 없다.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114길에 패션 편집샵, 소나이가 있다. 소나이의 임민호 대표는 소통의 잠재력을 믿는다. 소나이는 편안하고 멋스러운 옷을 해외에서 수입해서 판매하는데, 편안하면서도 멋진 옷처럼 고객과의 인연도 그러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소나이를 찾는 사람들에게 허물없이 다가간다. 근사한 패션 브랜드를 다룬다고 해서 척하는 법이 없다. 소나이에는 당편바라는 이벤트가 있다. '당신도 편집샵의 바이어(Buyer)가 되어보세요'라는 뜻이다. 2017년부터 임민호 대표가 해 오는 소나이만의 행사이다. 그는 고객들과 더 즐겁게 소통할 수 없을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당편바를 떠올렸다. 대부분의 편집샵은 대표가 바이어로서 물건을 들여온다. 샵의 주인이 시장을 조사하고, 브랜드를 찾고, 제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는 고객이 바잉에 직접 참여하면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당편바에서는 고객이 소나이의 대표이고, 임민호 대표는 사원이다. 그가 가상의 결제를 올리는 역할극을 도입해서 몰입도를 높였다. 임민호 대표는 들여올 브랜드의 제품 사양을 자세히 기술하여 투표에 부친다. 제품의 핏, 원단, 색상, 기타 디테일을 고객들과 함께 정하기 위해서이다. 임민호 대표와 고객들은 이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한다. 대화는 양방향이어서 한쪽의 의견만 득세하지 않는다. 논의 후 투표로 선정된 물건을 임민호 대표는 수입한다. 그 물건은 실제로 소나이에서 판매된다.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에 임민호 대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의 뛰어난 감각과 훌륭한 선택'이라는 말이다. 이 한 문장이 고객들의 감정선을 끌어올린다. 자신들이 소나이에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음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벤트가 끝나면 고객들은 임민호 대표로부터 소정의 선물을 받는다. 이들의 친분은 당편바가 후반부로 갈수록 돈독해진다.
당편바 외에도 임민호 대표는 룩북(Look Book) 콘텐츠로 소나이 팬들에게 다가간다. 룩북 콘텐츠는 소나이 옷을 입고 보낸 그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는 날씨, 계절, 장소에 적합하게 소나이의 옷을 조합한다. 그의 코디를 보면서, 사람들은 소나이 옷을 언제 어떻게 입을지 확인할 수 있다. 룩북은 다른 편집샵에서도 하는 콘텐츠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룩은 현실적이다. 주말 나들이를 가고, 식당에 방문하고, 전시회를 보러 가고, 일을 하는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스타일을 그는 제안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삶을 산다. 그들을 위한 옷은 그런 삶에 녹아드는 것이어야 함을, 임민호 대표는 염두한다. 그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소나이만의 패션을 전한다.
소통은 막히지 않고 통(通)함을 의미한다. 두 예시에서 알 수 있듯, 인기 패션 커뮤니티와 소나이는 사람들과의 통함이 원활하다. 커뮤니티 회원들은 개설자와 가깝게 지낸다. 서로를 도우면서 소통의 문화를 지킨다. 소나이는 고객들과 막역하다. 임민호 대표의 친근함으로 고객들은 소나이를 그와 함께 만들어 간다. 나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아끼는 사람에게 인간은 마음을 연다. 고객과 브랜드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기를 진심으로 헤아리고, 경청하고, 이끄는 브랜드에 고객은 관심을 표한다. 관심은 팬심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 팬심을 발판 삼아 브랜드는 정진한다.
그러나 고객과의 통함을 허용하지 않는 브랜드가 몇몇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시선으로만 고객을 대한다. 고객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며, 듣는다고 해도 시늉에 그친다. 권위를 앞세우고 교만한 자세로 고객을 무시한다. 그런데도 소통을 브랜드의 가치로 어필한다. 그들에게 소통은 단어로 존재할 뿐이다. 불통인 브랜드에 정을 느끼는 고객이 얼마나 존재하겠는가. 불통을 일삼다가 논란을 일으킨 브랜드를 미디어에서 또 얼마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가. 과거에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타사보다 압도적이라면, 독선적인 태도로도 브랜딩이 가능했다. 시대가 바뀌었다. 고객들은 눈과 귀와 입을 닫은 브랜드를 더는 원치 않는다. 그들은 밤새 수다를 떨고, 고민을 나누고, 미래를 꿈꾸고, 언제나 말을 걸 수 있는 친구 같은 브랜드를 바란다.
더 나은 브랜딩을 꿈꾼다면, 소통의 원칙은 고려할 사항이다. 단, 브랜드의 주관을 잃지 않으면서 고객과 소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거나, 무례한 사람들까지 대응하려고 하면, 브랜드를 집중해서 운영하기가 어려워진다. 사공이 많은 배는 산으로 향한다. 브랜드는 우리 브랜드를 이해하고, 지지하고, 건설적 비판을 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