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결은 브랜딩에 직결된다. 매장을 운영하는 브랜드라면 청결의 중요성은 더욱 높다. 테이블이 끈끈하고 공용 소스통이 얼룩진 식당. 커피 바의 싱크대 쪽에서 우유 비린내가 나는 카페. 전시용 공기 청정기에 시커먼 먼지가 가득한 가전제품 전시장. 침대 시트와 변기에 머리카락이 그대로 있는 호텔. 좀 먹은 가구를 방치해 둔 가구 인테리어 매장. 각각 유기농 재료, 바리스타 챔피언이 내리는 커피, 신제품 최다 보유, 바다가 보이는 객실, 장인이 만드는 수제 가구를 장점으로 내세운다. 당신은 그들이 내거는 장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눈앞에 더러움이 뒤덮은 상황에서 브랜드의 철학이며 선량한 의도는 무의미해진다.
나는 이태 전에 대형 쇼핑센터에 있는 한 의류 브랜드에 방문했다. 옷을 고르고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가져온 옷을 벽걸이에 걸고 거울을 봤다. 거울 여기저기에 지문이 묻어 있었다. 발 받침대에는 먼지 덩어리가 굴러 다녔다. 뭉친 머리카락도 있었다. 바지를 입으려면 신발을 벗어야 했는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상의만 입어보고 피팅룸에서 나왔다. 옷을 정리하는 직원에게 피팅룸 상태를 말해주었다. 며칠 뒤에 다시 방문했다. 나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피팅룸에는 여전히 지문과 먼지와 머리카락이 있었다. 미니멀 스타일을 어필하는 패션 브랜드였다. 매장 청결도는 깔끔하고 단순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장은 물론 물건의 상태까지 확실히 챙기는 브랜드가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클래식 세컨드 핸드 편집샵, 세컨드 스퀘어이다. 세컨드 스퀘어는 중고 클래식 옷과 신발, 액세서리를 다룬다. 태그를 제거하지 않은 새 상품도 판매한다. 유명 브랜드의 정장, 셔츠, 재킷, 코트, 점퍼, 구두, 벨트, 타이 등이 저렴해서 클래식 패션 마니아들의 아지트로 불린다. 오늘날 중고 의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비 부담이 가중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양질의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점이 중고품의 매력으로 꼽는다. 변화한 소비자 심리를 반영하고자 크고 작은 브랜드가 중고 의류를 취급 품목에 더하고 있다. 일부 대형 백화점에서는 중고 의류를 따로 모아서 판매하는 행사를 열었다. 중고거래 플랫폼도 여럿 생겨났다.
그러나 여전히 중고 의류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남이 입던 옷이 자기 몸에 닿는 것이 불편한다고 인식한다. 중고 옷은 더럽다는 편견이 있어서이다. 세컨드 스퀘어의 장철호 대표는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가 사업 초기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하는 철칙이 있다. 깨끗한 중고 의류만을 위탁받는다는 것이다. 세컨드 스퀘어의 위탁 과정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고객이 위탁을 문의하면, 장철호 대표는 물건의 여러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서 전송해 달라고 한다. 외관에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1차 검수이다. 1차 검수를 마친 고객은 위탁품을 가지고 매장에 방문한다(혹은 택배로 보낸다). 장철호 대표는 현장에서 2차 검수를 진행하여 사진에서 발견하지 못한 얼룩, 해짐, 찢어짐을 찾는다. 옷의 안감, 주머니 안쪽, 신발의 갑피와 밑창 이음새를 세심하게 본다. 확인 결과 기준에 부합한 물건만이 세컨드 스퀘어에 위탁된다.
장철호 대표는 위탁품을 바로 진열하지 않는다. 관리를 거친 후에 진열한다. 의류의 경우 에어드레서를 이용한다. 섬유에 밴 혹시 모를 냄새를 빼고 주름을 펴기 위함이다. 올이 나간 의류는 바늘로 튀어나온 부분을 정리한다. 구두는 가죽 크림을 발라서 수분을 보충하고 빠진 색을 더한다. 스웨이드 소재의 구두는 전용 도구로 솔질하여 오염물을 털어내고 가죽의 결을 살린다. 그의 관리는 매장으로 이어진다. 그는 방향제를 설치해서 공간에서 향기가 나도록 한다. 매장과 선반을 쓸고 닦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퀴퀴한 냄새가 나거나, 진열된 물건에 진한 구김과 얼룩이 있거나, 바닥 구석에 실밥이 뭉쳐 있는 중고 의류 가게가 더러 있다. 세컨드 스퀘어에는 없다. 물건이 깨끗하고 영업장이 정돈되어야 전체가 품격 있어 보인다고 장철호 대표는 말한다. 하나가 누추하면 나머지도 누추해 보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장철호 대표는 '가치 있는 옷을 좋은 가격으로 제공한다'를 철학으로 내건다. 그의 철학이 수년째 고객들에게 어필되는 까닭은 그의 살림 덕임을 부정할 수 없다. 거미줄이 쳐져 있는 매장에 악취가 나는 옷이 걸려 있는데, 이를 보고 옷의 품질과 가격이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없을 터이다. 그의 정돈과 단장에 의하여, 중고품은 낡은 존재에서 시간의 흔적을 품은 존재로 거듭났다.
진주는 맑은 모래사장에 있을 때 반짝거린다. 청량한 바닷속에 있을 때 더불어 아름답다. 오물 속에 있으면 진주의 빛은 탁해 보인다. 지저분한 환경에서는 브랜드는 매력을 잃는다. 브랜드를 휘감은 어수선함을 다듬어야 사람들이 그 매력을 알아채고 다가올 수 있다. 브랜딩에서 청결은 원칙이라기보다 상식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