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계와 루틴의 노예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빵을 만들어 주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카카오 파우더가 뿌려진 티라미수와 알록달록하게 아이싱을 한 초콜릿 머핀, 쫄깃한 식감의 또띠아 피자, 묵직한 파운드케이크 등을 포장해 선물할 때면 참 행복했다. 운동과 식단을 조절하면서부터는 계량기는 더 이상 베이킹이 아닌 닭고야(닭가슴살, 고구마, 야채)를 측정하는 데 쓰였지만.
하루 두 끼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식이섬유를 각각 100g씩 담아 늘 다이어트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1g까지 정확히 측정했다. 그런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소금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닭가슴살을 먹으면 나중에는 지우개 맛이 났다. 그럴 때면 우둔살이나 홍두깨살처럼 기름기가 적은 고기를 조금씩 섭취했다. 수많은 다이어트 방법들을 시도했다.
헬스, 복싱, 크로스핏, 필라테스, 요가, 춤, 인터벌 트레이닝, 스피닝, 자전거, 수영, 등산, 쉬지 않고 10km 러닝, 탁구, 홈트레이닝, 줄넘기, 정통 탄단지 식단, 간헐적 단식, 1일 1식, 디톡스 다이어트, 단백질 쉐이크, 한약 다이어트, 한방 침 다이어트, 식욕억제제,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저지방 다이어트, 저칼로리 다이어트 ...
매일 정해둔 세트대로 전신의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했다.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면 횟수를 더 늘렸다. 춤 수업 시간 때는 모래주머니를 양 발에 붙이고 췄고 줄자로 신체의 변화를 강제로 측정당했다.
“또 운동해? 이제 그만 쉬엄쉬엄해라.”
나는 항상 운동을 하고 있었고 빼빼 마른 나와 마주칠 때마다 가족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언제는 살 빼라더니 이제는 왜 또 그만하래? 먹고 싶을 때는 먹지 말라더니 이제는 먹기 싫어서 안 먹겠다는데 왜 먹으라는 거야?’ 심지어 친오빠와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갈 때도 나는 항상 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함께 메뉴를 고르다 의견이 갈리자 결국 나는 오빠와 밥을 먹지도 않고 울면서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다이어트를 하느라 참아왔기에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운동과 식단 중독
그때 내가 했던 기록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금요일
15:50 : 드디어 배가 고파졌다. 저지방 치즈 1개.
16:10 ~ 16:35 : 20분간 바나나 100g 섭취, 배는 안 고프지만 뭔가 허했다.
20:30 ~ 20:50 : 바나나 한 입, 딸기 2알, 삶은 달걀 1개. 사람을 만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노래를 해서 그나마 시간이 빨리 갔지만 요즘은 음식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먹으면 즐거움이 줄어든다. 하루를 허무하게 보낸 것 같아 씁쓸했다.
토요일
아침은 먹지 않았다. 하지만 터졌다. 점심에 돈가스를 먹은 것이다. 저녁에도 터지고야 말았다. 고기만두 2개와 김치 만두 2개를 먹어버렸다. 거기다 츄러스 맛이 나는 과자까지. 운동으로 소화시키고 새벽 4시쯤 잠들었다. 제길. 괜히 먹었어.
월요일
저지방 우유 60g, 단백질 1 스쿱, 토마토 1개를 갈아 마셨다. 빨리 살을 빼놓고 먹고 싶은 것들을 먹고 싶다. 이제 곧 봄이 올 텐데.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싶다. 점심은 먹지 않았지만 저녁에 비빔냉면 조금과 루꼴라 화덕 피자 2조각을 먹었다. 또 터져버렸다. 공복 운동 1시간 추가다.
화요일
엉덩이에 살이 붙은 것처럼 느껴졌다. 저녁에는 입맛이 없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런데도 먹었다. 입맛이 없으면 뭘 먹지 말고 물만 마셨어야 한다. 견과류는 비상식량이지 후식이 아니다. 탄수화물은 조금만, 야채 위주로 먹자.
토요일
점심에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지만 혼자 먹는 것은 싫었다. 저녁에 아무도 없어서 그런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를 먹을 때 누군가와 함께 웃으며 먹고 싶다. 요즘은 먹는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다.
월요일
늘 그렇듯 아침에 공복 운동을 했다.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식판을 샀다. 단백질과 식이섬유, 탄수화물을 구분해 놓았다. 팔뚝이 가볍고 탄탄해진 기분이다. 피부도 좋아졌다. 주변에서 ‘살이 빠진 것 같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요즘에는 식욕이 별로 없다. 자제력이 생긴 것 같다.
토요일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숨이 차게 수영을 하고 복근 운동을 했다. 한강도 걸었지만 무릎을 굽힐 때 아팠다. 2시 30분쯤 배가 너무 고팠다. 팔에 기운이 없었고 금단 현상을 겪는 사람처럼 예민해졌다.
금요일
마포대교부터 반포대교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었다. 우리의 뒤에는 상사가 자전거를 타고 감시하며 따라오고 계셨다. 총 1시간이 걸렸다. 돌아올 땐 걸어서 왔다. 다른 사람들은 몸무게가 금방 줄어서 부러웠다. 조금 더 힘을 내서 빼놓고 유지해야지.
월요일
유산소를 해야 되는데 기운이 없었다. 뭔가를 씹고 싶다. 지금 먹어 두자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이제는 ‘못 먹는다’는 생각과 ‘먹어야 빠진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뭐가 정답일까? 허한 기분이 든다.
토요일
무화과 호밀빵이 너무나 먹고 싶다. 왜 하필 지금! 뭔가 단 게 당긴다. 수영 1시간을 하고 지하철로 이동할 때도 배에 힘을 주며 빠르게 걸었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다.
화요일
블루베리 케이크를 먹었다. 지하철 안에서 발이 퉁퉁 붓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 또 빼지? 괜히 먹었다. 야채와 고구마 같은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울걸. 한 끼만 먹고 나머지는 물만 마시자.
수요일
다들 뭐가 그렇게 즐겁고 신나는 걸까? 나도 웃고 싶다. 어제는 일찍 잠에 들었다. 깨어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일요일에도 매니저의 감시 아래 인터벌을 해야 한다. 짜증 나고 슬프다. 내 고통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 알려고 하지도 않지만. 결국 나는 다 해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해나갈 것이다. 바쁘게 흘러가는 이 순간들이 좋다. 나를 한계로 밀어 넣고 계속 시험하는 느낌이다. 이 과정을 이겨내면 다음에는 더 강인해져 있겠지.
나는 체중이라는 숫자와 루틴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