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1층의 기댈 곳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습실의 작은 보컬 방에서 노래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짜증 섞인 목소리의 뒷담화가 귀에 들려왔다.
“아 몰라, 지가 처먹었나 보지. 내가 어떡해. 그렇게 나오고 싶은가 보지.”
옷 피팅 문제로 의논 중이던 그들의 말은 살 때문에 의상이 맞지 않던 나를 향한 것이었다. 놀란 마음에 나는 구석에서 숨을 죽인 채 웅크려 앉아 있었다. 얼마쯤 흘렀을까. 일부러 숨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제 와서 나가려니 괜히 어색했다. 하지만 그곳에 더 있다가는 그보다 더 심한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몰랐다. 내가 호기롭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연습실 안은 순식간에 차가운 정적이 감돌았다. 겉으로는 모두가 친밀하고 따뜻해 보였지만 속은 혼탁한 진흙탕 속에 얼기설기 얽혀 있는 세계 같았다.
“너는 원석 같다. 참 좋은 총알들을 가지고 있는데 총이 없어.”
“너는 살만 빼면 로또야, 그러니까 살부터 빼고 와.”
정제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총 없는 총알. 긁을 수 없는 로또. 내가 살이 쪘기 때문에 드라마 OST를 부를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다는 상사의 말을 들었을 때, 눈앞에서 또 하나의 꿈이 사라져 버리는 비참함을 고스란히 느꼈다. 내게 찾아온 기회들은 번번이 살을 핑계로 나를 스쳐서 보란 듯이 날아가 버렸다. 홀로 남겨진 나는 날아오는 돌멩이들을 속수무책으로 수없이 맞으며 처절한 굴욕을 맛보았다.
‘어쩌면 내 삶은 보이지 않는 악마가 건넨 위험한 선물이 아닐까? 이 직업을 계속하다 보면 매번 이런 상처를 받게 될까? 내가 정말 연예인이 될 수 있는 외모일까? 외모가 그렇게도 중요한 걸까?’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살을 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24시간 중 깨어 있는 모든 시간들이 모조리 초 단위로 쪼개져 돌아갔다. 운동과 식단에 미친 듯이 몰입했고 음악 감상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 보려 했다.
가창력보다는 외모에 집중되어 있는 이곳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꿈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들을 감수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의상을 맞춰 입을 때 줄자 앞에서 언제든지 당당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나는 뚱뚱하기 때문에 기회를 주지 않는 거구나. 가수가 되려면 살을 빼야 하는구나.’라는 이상한 믿음이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살 때문에 비참하고 불편한 시간들이 반복되자 마음 한 구석에서 작은 괴물이 조용히 기지개를 켰다. ‘그래. 다른 건 필요 없고 살만 빼면 되는 거지?’
조건부 행복은 이제 그만!
잔인한 말들은 나를 수년간 다이어트라는 독방 속에 가두어 버렸다. 어쩌다 내가 웃으면 그 순간 긴장이 풀어진 것처럼 보일까 봐 두려워 마음껏 웃을 수도 없었다. 마음속에는 감당하기 힘든 분노가 소리 없이 자리 잡았고 끊임없는 시선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시방석에 앉은 투명 인간이 되어 무력감에 빠졌다.
춤을 열심히 추다 잠시 숨을 돌리려고 의자에 앉는 순간에도 “앉아 있지 마. 엉덩이 퍼져. 움직여.”라는 댄서의 말이 비수처럼 귓가를 때렸다. 당시 내겐 의자에 편히 앉아 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고 믿었다.
하루는 프로필 촬영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회식 자리에서였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동안 맛있는 고기 냄새가 음식점에 진동했다.
“여기, 너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이니까.”
상사가 내게 건네준 그 작은 고기 한 점에 진하게 감동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알 수 없는 좌절감과 수치심이 밀려왔다.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왜 나는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는 걸까?’
“너, 이런 거 먹어도 돼? 살 빼야 되지 않아?”
“야. 너는 조금만 먹어라.”
“어차피 활동하면 또 식단 할 거잖아. 괜찮아, 먹어.”
“이건 건강에 좋은 거니 먹어도 돼.”
“나는 왜 먹는데도 안 찌지?”
“천천히 좀 먹어! 난 배가 불러.”
“나 같으면 더럽고 치사해서 빼고 말겠다.”
“밥에 구더기가 있다고 생각해! 맛없는 걸 먹어.”
걱정이라는 가면을 쓴 채 교묘하게 약올리는 수많은 말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결국 회식이 끝날 때까지 내 앞의 작은 접시에는 그 작은 고기 한 점만이 남아 있었다. 회사, 행사장, 대기실, 숙소 그 어느 곳에서도 마음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쫄쫄 굶다가 주말에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 구석에 있던 피자를 집어 드는 순간 내면의 날카로운 감시자의 관심이 내게 쏠렸다. “너 지금 뭘 먹는 거야? 물이나 마셔! 그만 좀 먹어.” 갑자기 온몸에 힘이 쭉 빠지더니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다. 나는 이제 겨우 피자 한 조각을 더 먹으려 했을 뿐인데 집에서조차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더 빨리 더 날씬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당당하게 먹고 싶었다.
우주에서는 충격을 받으면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고 한다. 내 속은 텅 빈 우주 같았다. 대화의 주제가 그렇게도 없어서였을까? 일상적인 대화의 끝에는 늘 타겟이 내가 되어버렸다. 그들에게는 ‘걱정’이라는 이름의 사소한 말들이었겠지만 나는 그 말들에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베였고 쓰라린 상처를 입었다. 나를 향해 굴러오던 수많은 말들은 처음에는 작은 돌멩이 같았다. 그러다 점점 차갑고 단단한 눈덩이로 커지더니 결국 바위가 되어 내 가슴을 무참히 짓눌렀다.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살짝 스치는 말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흔적들은 마음속을 비집고 파고들어와 나를 갉아먹었다. 오히려 나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도화선이 된 것이다. 자비 없는 말들은 내 안에서 끝없이 메아리치며 나를 괴롭혔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 무심한 한마디가 얼마나 나를 아프게 했었는지. 불안의 경계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한참을 헤맸다.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선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다독였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은 조금 참고 살을 먼저 빼야 된다고 믿었다.
다음 날의 몸무게가 정직함의 척도가 되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과체중이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는 발 디딜 곳 없는 완전한 ‘뚱뚱이’였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나는 모든 행복을 ‘살을 빼고 난 다음부터’로 미루고 있었다. 시작은 노래였다. 따뜻한 조명과 무대 위의 3분 남짓한 긴장감. 그 시간이 너무나도 황홀할 뿐이었다. 또래 친구들이 대학 생활을 즐기며 예쁜 카페를 찾아다닐 때 나는 고된 운동과 식단으로 스스로를 단련하며 행복해했다. 학점과 씨름하다가도 치킨에 맥주를 곁들여 먹는 친구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나는 예쁜 카페에 가서 케이크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떨 시간적 여유와 자유도 없었다. 매일 몸무게를 재서 제출해야 했고 숙소나 학원으로 이동할 때마다 회사에 항상 보고해야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유혹과 기회는 항상 많았지만 철저히 절제하고 배제했다.
데뷔가 가까워질수록 운동과 식단의 강도는 더 심해졌고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연락도 뜸해졌다. 점점 내 주변에는 일로 엮인 사람들만 남게 되었고 그런 현실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예전처럼 맛있는 음식을 마음 편히 즐길 수 없는 상태였다. 다음 날의 체중이 곧 나의 신뢰와 정직함을 증명하는 척도였기 때문이다.
당시 나에게 음식은 단순한 영양 공급원이 아닌 일종의 안정이었다. 하루가 음식 생각으로 가득 채워졌다. 음식을 먹음과 동시에 ‘이제 이걸 어떻게 빼지? 지금 운동 안 하면 살찔 텐데..’라는 불안한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식단을 성실히 지키다가도 일반식을 먹으면 체중이 다시 돌아왔고 그러면 또다시 운동량을 늘렸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마냥 나는 운동과 ‘아름다움’에 중독되어 있었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럴수록 한계에 부딪혔고 이상적으로 그렸던 나의 모습은 더 멀어져 갔다.
무엇을 하든 진하게 몰입하는 것은 좋다.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이니까.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지속하는 것은 집착이자 중독이다. 아무리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몸과 마음, 관계를 포기하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가치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