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뭐길래
푸른빛이 거실을 한가득 물들일 즈음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그날의 면담 이후에 나는 이상한 믿음이 생겼다. 성공하려면 무조건 살을 빼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방을 제거하는 일들을 의무라고 여겼고 철저히 분리돼야 했다. 일반인들의 평범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해선 안 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모닝콜을 7시에 맞춰 놓고 잠들었지만 항상 더 이른 시간에 깨어났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그 고요함 속에서 아주 잠시나마 짧은 자유를 만날 수 있었다. 다이어리를 펴고 그날 해치워야 할 운동 목록을 꽉꽉 채워 적었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설거지와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아직은 고문이 시작되지 않은 순간, 온전한 나만의 시간. 그게 내가 찾아낸 소소한 행복이었다.
시간이 흘러 가수 데뷔가 코앞으로 가까워졌을 때 나는 핸드폰까지 회사에 제출해야만 했다. 또래의 대학생들이 한창 예쁜 카페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창문 하나 없는 지하 연습실에 처박혀 긴 시간을 보냈다. 아주 드물게 친구와 만나는 날도 있었지만 함께 밥을 먹는 순간마저 나에게는 공포가 되어 있었다.
‘몸무게가 늘면 어떡하지? 온통 음식 생각뿐인 내 머릿속을 들키진 않을까?’하며 마음 졸였다. 그렇게 조금씩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똑같은 루틴 속에서 나는 행복을 늘 ‘다음’으로 미뤘다. 내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채 전력 질주를 하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겨우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데뷔 시기가 다가올수록 추가되는 운동들은 미친 듯이 더 많아졌다. 한겨울의 어느 일요일에 나는 매니저님의 감시 아래 숙소 근처의 절두산 공원을 벌 받듯이 뛰었다. 몇십 바퀴씩 공원을 뛰어 오르내리면 허벅지는 터질 듯했고 숨이 턱 막혀 후두염이 왔다. 공휴일에도 헬스장에 나가 트레이너님께 송골송골 맺혀 있는 이마의 땀 사진을 찍어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했다. 운동을 설렁설렁하지 않았다는 증거이자 무언의 약속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개인적인 기쁨과 성취를 위해 운동할 때 나는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통창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는 예쁜 뷰에서 정적인 필라테스를 하며 몸을 가꾸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의 운동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선수처럼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모든 에너지를 싹 다 소진하고 나면 그야말로 녹초가 되어 숙소 방 안에 널브러졌다. 그리곤 이내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처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보낸 시간이었다.
독기의 종착지
이상했다. 살이 빠지니 기분은 좋았지만 목과 가슴 쪽에는 뭔가 걸린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특히 수영을 하고 난 뒤에는 왠지 더 입맛이 돌고 배가 고팠다. 홀로 식탁 앞에 앉아 접시를 바라보며 ‘먹으면 안 돼’라고 되뇌었고 사과 1알을 먹을 때조차 ‘이만큼 운동했으니까 이 정도는 먹어도 괜찮겠지?’라며 계산했다. 음식을 먹어도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삶의 만족감과 주체성도 상실했다. ‘나는 정말 살이 안 빠지는 체질인가 봐.’ 결국 고통스러운 노력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먹고 싶은 음식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내게 허락된 음식은 정해져 있었다. 가끔 아픈 날에는 죽을 먹는 특권이 주어졌고 일반식을 먹는 날은 축제와도 같았다. 하지만 한입 두입 먹을 때마다 그동안 쌓아온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두려웠다. 죽을 먹을 때조차 아주 작은 그릇에 딱 한 국자만 퍼서 먹은 뒤 나머지는 다 남겼다. 제한된 소량의 영양분만을 섭취하며 극한의 운동량을 소화하고 나니 자연스레 기력이 떨어졌다. 몸이 버틸 리 없었다.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인터벌 운동을 하면서부터는 입맛이 아예 뚝 떨어진 것을 느꼈다. 결국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때는 식욕이 아예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내면에 억눌렸던 음식을 향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쌓이고 있었다. 과도한 식이 조절로 인해 유예된 식욕과 싸웠을 때 나는 점점 고갈되어 갔다. 억압된 식욕은 느린 발걸음과 우중충한 표정, 의욕이 없는 듯한 모습으로 나를 바꿔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숙소에 돌아와 잠시 쉬고 있는데 윗배가 타들어 갈 듯이 아파왔다. 쓰린 통증은 순식간에 밀려와 내 몸을 덮쳤다. 나는 방바닥에서 배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응급실이었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던 것도 같다. 짧은 기억들이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내 증상은 위궤양이었다. 검은색 변이 나와서 신기하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위에서 출혈이 있었던 모양이다. 링거를 맞고 숙소로 돌아오자 밖은 벌써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냉장고에 있던 배를 꺼내 꿀과 생강을 넣어 끓여 마셨지만 그 한 잔조차 살이 찔까 봐 식단 다이어리에 칼로리를 기록했다. ‘배는 엄연히 과일이고 과일에는 당분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밤에 당분이 많은 과일을 먹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도 어김없이 운동을 반복했다.
단체 보컬 수업을 마친 어느 날이었다. 한 연습생이 자신의 실력을 깨닫고 속상함에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의 찢어진 마음을 위로해 줄 떡볶이조차 함께 먹을 수 없었다. 아주 잠시라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분을 환기시켜줄 수도 없었다. 기분 전환을 핑계로 함께 서점에 가서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또 다른 레슨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금요일이 찾아오면 늘 마음을 다잡았다. 주말이 다가오면 길거리는 더 떠들썩해졌고 내 마음도 덩달아 들뜨곤 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놀아야 할지도 몰랐다. 연습실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친구들과 함께 그 흔한 클럽에 한 번 가보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지친 몸은 잠에 빠져들었지만 그 속에서 펼쳐지는 악몽은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나를 괴롭혔다. 잠들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어느 날 밤에는 마치 내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떠오르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했다. 육신은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의식은 그 위를 둥둥 떠다니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소를 타듯 온몸이 위아래로 붕 떴다가 가라앉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했는데 굉장히 불쾌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깨고 나서도 악몽의 잔재가 남아 한동안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져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나는 극심한 공복 상태로 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7명에 달하는 연습생들이 비현실적인 목표를 좇으며 기획사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려면 엄청난 팀워크와 감정 소모가 필요했다. 누구 하나 살이 빠지지 않거나 실력이 도태되면 데뷔는 계속 미뤄졌다. 회사에서는 전체 인원이 살을 빼는데 모두 성공하면 뷔페에 가게 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실패하는 멤버가 생기면 그 약속은 번번이 지연되곤 했다. 그럴 때면 이미 살을 빼고 준비된 상태였던 나는 그들의 살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나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주변의 상황과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결국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나는 최종 인원으로 선정되었다. 마침내 전속 계약을 하고 데뷔 조에 들어가게 되었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슬픔
데뷔를 앞둔 어느 날, 대표님의 초대로 다 함께 일식집에 갔다. 먹음직스러운 회가 형형색색으로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 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무언가를 먹기만 하면 사람들로부터 지적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긴장이 됐다. 내가 젓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만 같았다. 특히 밥을 먹으려 할 때 정적이 감돌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웃지 않거나 분위기가 무거워지면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체중이 줄지 않아 혼나기 직전은 늘 싸하고 조용한 분위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고요함의 원인마저 나에게로 돌렸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 깨작대고 있는데 대표님이 말했다.
“야! 이제는 먹어도 돼.”
눈앞의 회를 두고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정말 먹어도 되는 걸까? 아니야. 그냥 하시는 말씀이겠지.’ 결국 그날 몇 점 먹지도 못한 회에 체하고 말았다.
근육이 성장하려면 상처가 난 뒤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관절과 근육에 부담을 주었다. 그 끝에는 무너진 마음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몸과 마음의 신호들을 철저히 외면한 채 오로지 체중 감량이라는 목표만을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그 길이 가시밭길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근육량이 많고 지방량이 적어야만 만족했고 목표 체중에 도달하면 잠깐의 행복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통의 원인은 ‘무리함’이었다. 열심히 해내겠다는 과한 의지가 강박으로 이어졌고 어느새 운동은 건강한 활력을 주는 활동이 아닌 ‘노동’이 되어버렸다. 하기 싫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