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다이어트의 잔혹한 현실, 여기서 더 빼라고요?
‘이러다가 또 잠잠해지겠지.’ 뱃속에서 울리는 꼬르륵거림은 몸이 보내는 처절한 절규 같았다. 그 소리를 애써 즐기며 한강을 달렸다. 헬스장에서 공복 상태로 전신의 근력 운동을 하는 동안 어지러우면 눈을 질끈 감고 갈증을 참았다. 매일 체중을 재서 회사에 보고해야 했기에 많은 양의 물도 내겐 사치였다. 유산소 운동을 마친 뒤에는 간신히 목을 축일 정도의 물만 입술에 적셨다. 온몸은 나른하고 끈적댔지만 체중계의 숫자가 줄어든 날은 덧없는 행복을 느꼈다.
점심은 몇 조각의 견과류, 저녁은 미숫가루와 물 반 잔. 배가 고프면 그날 먹을 수 있는 음식 목록에 있었던 야채를 주스로 만들어 마셨다. 어떤 날은 하루에 토마토 반 개를 물과 함께 갈아 세끼에 나눠 삼켰고, 다른 날은 오이 한 개만 먹었다. 그게 내 식사의 전부였다. 나에게 ‘음식을 잘 먹었다’는 의미는 ‘배부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절제하고 또 절제해서 늘 아쉬운 마음이 들어야만 성공한 식사였다. 무엇을 얼마만큼 먹어야 할지 뚜렷한 기준이 없었기에 그저 식단만 철저히 지키면 된다고 믿었다.
다가올 몸무게 평가를 앞두고선 약 18시간 동안 공복을 유지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처절한 노력 끝에 마침내 46kg이라는 황홀한 몸무게에 도달했다. 60kg에 육박했던 내가 드디어 40kg대에 진입한 순간이었다. 감격스러워야 했다. 그러나 순간의 기쁨은 찰나였다. 회사가 제시한 몸무게는 ‘45kg’이었다. 1kg이 부족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몸무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1kg을 더 줄여보겠다고 처음으로 이뇨제와 관장약에까지 손을 대는 지경에 이르렀다. 몸 안에 남아있는 마지막 수분을 단 한 방울이라도 더 쥐어짜 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하자 처음에는 몸무게가 조금 줄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물을 마시는 순간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체중계의 숫자는 다시 절망적인 현실을 가리켰다. 두 번째로 시도했을 때에는 이미 싹 다 비워서 더 나올 것도 없는 상태였다. 허탈한 결과였다. 나는 그 방법이 가져올 파멸적인 결과를 직감했고 그 짓을 그만두었다. 다이어트는 나를 통제 불능 상태로 몰아넣었다.
결국 운동량을 더 많이 늘리고 식욕을 꾹꾹 억눌렀다. 살이 찌지 않기 위해 태어난 로봇처럼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다이어트에 쏟아부었다. 낯선 불청객이 찾아왔다. 스트레스로 인해 평소에 나지도 않던 여드름까지 얼굴에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다크서클은 턱까지 점점 짙게 내려오고 있었다.
몸무게 평가 당일, 쿵쾅대는 내 심장 박동 소리에 맞춰 체중계의 초침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계속해서 불안하게 간당간당하는 숫자에 내 심장은 커졌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절망과 희망 사이를 끝없이 오가던 중 눈 깜짝할 새에 체중계의 바늘은 정확히 숫자 ‘45’를 가리켰다. 마침내 45kg이었다.
그 순간 이를 악물고 절두산을 뛰었던 시간과 차라리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XS 사이즈의 청바지와 몸에 딱 달라붙는 흰 티셔츠, 하얀 바지에 얇은 끈 민소매. 드디어 내가 꿈에 그리던 옷을 입고 거리를 당당히 활보할 수 있는 몸매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내가 지었던 ‘뚱뚱함 죄’를 마침내 용서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곧 들려오는 상사의 말은 나를 또 다른 절망의 심연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야, 먹고 싶은 걸 먹으면서 활동하려면 2kg 정도는 확보해 둬야 하지 않겠냐? 43kg까지 더 빼.”
‘잠깐.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이게 끝이 아니라고? 여기서 어떻게 더 빼라는 거야? 새 모이만큼 먹는 걸 평생 유지하라고? 운동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데 여기서 운동량을 더 늘리라고? 살이 빠진 내가 너무 행복해 보였나? 그럼 이 짓을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이제는 몸을 움직이는 것도 즐겁고 몸에 좋다는 살찌지 않는 음식만 찾아 먹고 있잖아.’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다. 살을 더 빼라는 잔혹한 명령에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았다. 당시 가슴의 살마저 다 빠져서 등인지 가슴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이어트의 끝이 보이는 듯했고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었다.
배고픔에 뼈와 가죽밖에 남아 있지 않는 듯한 상태에서 그 말을 들으니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더 이상 쥐어짤 물기조차 없는 마른오징어를 억지로 쥐어짜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주변에서는 조금씩 이상한 소리까지 해왔다.
“몸매 유지 잘해라. 안 그럼 한 방에 훅 간다.”
“너는 먹는 대로 살이 찌는 체질이니까 절대 운동을 끊으면 안 돼.”
“살을 더 빼려면 운동량을 더 늘려.”
“지금 먹는 식단을 그대로만 유지해.”
하루도 빠짐없이 빡빡한 식단과 강도 높은 운동을 반복했음에도 무거운 불안은 그림자처럼 늘 일상을 덮치고 있었다. 목표 몸무게였던 45kg에 도달했음에도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제는 일반식을 먹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은 내 머릿속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무엇을 얼마나 먹어야 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저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홀로 달렸다.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해서 속도를 높였다.
어둠 속의 전쟁
어느 늦은 저녁에 계획에도 없던 음식을 먹었다. 늘 식단을 철저히 지켜온 나였지만 그날은 사람들과 함께 고기를 먹었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즐겼다. 잠시 기쁨이 밀려왔지만 ‘식사 불변의 법칙’처럼 뭔가를 먹고 나면 항상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배가 부르다는 사실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미 터졌다’는 생각은 소리 없이 나를 짓눌렀고 곧 후회가 파도처럼 덮쳐왔다.
다음 날 아침 어지러운 몸과 초조한 마음을 이끌고 북한산에 올랐다. 산을 오르는 내내 어제의 식사 장면이 떠올랐다. 짜릿했던 찰나의 즐거움, 고기 굽는 연기, 웃음소리, 시원하고 달콤했던 아이스크림의 맛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어제의 과오를 속죄하는 순례자처럼 흐트러진 마음을 정화하듯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공복 상태에서 오직 운동으로 만회하려는 행위는 내게 일종의 의식이자 강박적인 의무였다. 발걸음을 옮겨 산 정상에 올라 바라본 서울의 경치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고 착잡했다. 내게 남은 것은 죄책감과 공포, 불안이었고 그것은 결코 운동으로는 덮을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폭식은 몸에 해롭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후에 찾아오는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나는 왜 이렇게 식욕을 조절하지 못할까? 이걸 먹으면 살이 찔 텐데. 에라 모르겠다. 아씨, 망했다. 또 먹어버렸어. 역시 난 안 돼. 오늘 먹었으니 내일은 1시간 더 뛰어야지. 이제부터 클린식 돌입이다.’ 머릿속에서는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러나 자책을 수없이 반복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보통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됐다. 눈을 뜨고 일어나자마자 허벅지와 엉덩이, 배, 등, 허리, 팔뚝을 샅샅이 더듬어 본다. 죄인의 몸에 새겨진 낙인을 확인하는 것처럼. 그다음 체중계에 올라선다. ‘어제보다 빠졌나?’
거울을 본다. ‘눈 밑의 거무튀튀한 다크 서클. 진하게 번져버린 주근깨. 주먹으로 하도 내리쳐서 시뻘게진 가슴팍. 터져서 녹아 흘러내릴 것만 같은 턱살. 그렇지 않아도 진했던 팔자 주름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건 광대뼈에 붙은 살 때문일 거야. 역시 오늘도 부지런하시네. 누가 누가 더 멀리 가나 시합이라도 하는 것 같아. 서로 안간힘을 쓰며 세상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려는 피부 속 지방 세포들. 역시나 오늘도. 떠날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는 듯 아주 잘도 계시네. 배에 철썩 달라붙어 있는 오래된 짐짝. 이렇게 허리를 굽혀주면 빠르게 소환이 가능하지. 세상 누구보다도 까칠한 성격의 ‘ㅡ’ 자 입을 가진 곰돌이가 그것이다. 도대체 얘는 나를 언제 떠날까? 떠날 날이 오긴 할까?’
그날의 몸무게는 내 감정 상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끔찍한 지표였다. 배고픔이 느껴져야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곤 도대체 언제까지 써야 할지 모르겠는 식단 일기를 적는다. 결국 어제와 같은 것들이겠지만. 일종의 의식마냥 꼭 지켜야만 했다. 냉장고에는 수많은 음식들이 잠자고 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감히 탐할 수 없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오직 다이어리 위에 적힌 것들이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