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유목민의 씹고 뱉기 투쟁
은밀한 칼로리 중독
주말이면 잠시 숙소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한 번씩 마트에 가곤 했다. 그곳에는 이국적인 향신료부터 형형색색의 과일들과 달콤한 과자들까지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새로운 식재료를 구경하는 일은 너무도 흥분되고 설렜다. 바라보기만 해도 평소 억눌러 왔던 식욕이 해방되는 그야말로 환상의 공간이었다.
나는 보물 찾기라도 하는 듯 제품별 성분표를 꼼꼼히 읽고 알 수 없는 성분들은 샅샅이 검색했다. 칼로리를 비교하고 분석하다 보면 어느새 세네 시간이 흘러있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당시 나는 내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몰랐고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하는 방법조차 망각한 상태였다. 머릿속에는 온통 식단과 운동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엄선한 ’착한 음식‘들을 카트에 하나씩 담으면 이것들은 깨끗한 음식으로 분류되었다. 그다음 곧바로 은밀한 연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마치 모든 음식을 다 먹어도 되는 사람인 ‘척’ 행동하며 금지된 음식들을 몰래 집어 카트에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과자, 빵, 쿠키 등 평소에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차곡차곡 쌓아 꽉 채워 넣었다. 누가 보면 단체로 캠핑이라도 떠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들을 카트에 잔뜩 담았다. 스스로 정한 규칙 속에서 ‘이건 먹을 수 있는 것, 저건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구분하며 평범한 사람인 척 장을 봤다.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겠지?’ 그 기분이란! 얼마 만에 누려보는 자유인지 나는 알 수 없는 쾌감에 젖어들었다. 한편으로는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럼 뭐 해. 어차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하나도 없는데.’ 마트 안에는 내게 허용된 음식이 없었다. 그날의 식단 목록에 없는 음식을 먹는 것은 곧 반칙이었다. 결국 카트 안에 넣어두었던 음식들을 제자리에 조용히 원상 복구를 시켜두었다. 제자리를 찾아 되돌아간 금지 음식들을 보며 나는 먹지 않고 참아냈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하지만 이는 잠재적으로 박탈감을 쌓아 올리는 일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트를 한 바퀴 다 돌고 나니 억울함 같은 감정이 밀려왔다. ‘왜 나는 이걸 먹을 수 없는 거지?’ 세상에 존재하는 맛있는 음식들을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착잡해졌다. 한참 동안 빈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다가 마트 밖을 나설 때가 되자 알 수 없는 찝찝함과 아쉬움, 공허함이 교차했다. 식료품을 구경하는 일은 즐거웠지만 끝은 늘 허무했다. 그런 식으로 장보기를 꽤 오래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늘 그랬듯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은 착한 음식들을 잔뜩 담고 그다음에는 금지 음식인 야채맛 과자 하나를 몰래 카트에 넣었다. ‘이렇게 사면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겠지? 하나 정도인데 뭐.’ 숙소로 돌아와 과자를 서랍에 숨겨두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고 운동을 하러 가기 전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서랍 속에 두었던 그 과자 한 개를 뜯었다. 혀 끝부터 타고 강렬하게 흐르는 소금의 맛은 짭짤함을 넘어 황홀했다. 그 고소한 기쁨에 취해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였다. 그러나 곧이어 밀려오는 불안과 초조는 내가 누린 짧은 행복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죄책감은 언제나 한 세트로 따라왔다.
‘이걸 삼키면 몸무게가 늘겠지? 음식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말자.’ 두려움에 휩싸인 나는 차마 과자를 삼키지 못했고 몸 안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식욕을 철저히 부정했다. ‘잠깐. 그럼 맛만 보고 뱉으면 어떨까?’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는 씹고 뱉는 기괴한 행위를 했다. 심지어 다음 날 몸무게를 쟀는데 체중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맛은 느낄 수 있는데 살은 안 찐다니!’ 안심이 됐다. 먹지 않고 잘 참아냈다는 묘한 성취감까지 느껴졌다.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다이어트 유목민의 씹고 뱉기 투쟁
시간이 흘러 주말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 몸은 또다시 반사적으로 대형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착한 음식’과 ‘금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들을 카트 안에 모조리 쓸어 담았다. 미트볼, 스파게티, 빵, 라면, 과자 등등 혼자 들기에도 벅찰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을 양손 가득 낑낑거리며 들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무도 없는지 먼저 확인한 후 빠르게 만찬 준비를 시작했다. TV를 켜서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바스락거리는 과자 봉지 소리를 숨겼다. 유리그릇 위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깔았고 그 옆에는 방금 사 온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펼쳐 놓았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만 사용하면 밑 부분이 축축해져서 유리그릇을 받쳐 두었다. 음식을 입에 넣고 그 맛을 하나씩 충분히 느끼며 죽이 될 때까지 씹었다. 그럼 다음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음식들을 하나씩 뱉었다. 나는 고갈되고 있었다. 섭식에 대한 주도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약 10만 원어치의 각종 음식을 맛보고 씹은 뒤 죽이 되면 뱉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계속 씹고 뱉다 보면 유리그릇이 꽉 찼다. 음식물이 찰랑찰랑 넘치기 직전이 되어서야 턱이 뻐근한 게 느껴졌다. 몇 시간이고 계속하다 보니 침샘이 과도하게 분비된 것이었다. 게다가 아무것도 삼키지 않으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그럴 때면 물로 배를 먼저 채운 뒤 다시 씹고 뱉으며 배고픔을 참아냈다. ‘칼로리를 걱정하느니 살찔 것 같은 음식은 아예 먹지 말자.’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내게 허락된 깨끗한 음식만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만 먹으며 버텼다.
어쩌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간 피자집에서조차 나는 피자 한 조각을 마음껏 먹을 수 없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지만 친구가 먹는 피자가 한 조각, 두 조각씩 줄어들 때마다 만감이 교차했다. 떡 하니 눈앞에 놓여 있는 기름진 페퍼로니 피자 한 판을 바라보니 자연스레 침이 고였다. 피자가 딱 한 조각 남아있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이거 한 조각만 포장해 가도 될까?”
친구는 의아한 듯 물었다.
“안 먹는다며~”
나는 애써 태연하게 답했다.
“괜찮아. 나 요즘 신기한 방법을 터득했어!”
“그게 뭔데?”
“먹고 싶은 음식을 씹되, 삼키지 않고 바로 뱉으면 돼!”
“으익! 야, 그게 뭐야. 하지 마! 그냥 먹고 운동해.”
그 자리에서 나는 피자를 단 한 입도 먹지 않았다. 그럴 거면 왜 갔냐고? 그러게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안쓰럽다. 그냥 기분 좋게 몇 조각 먹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날 나는 포장해 온 피자 한 조각을 몰래 씹고 뱉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섭식 장애나 식이 장애라는 단어조차 몰랐고 내가 섭식 장애라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친구의 반응에 약간의 창피함과 머쓱함을 느낀 정도였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음식을 씹고 뱉는 행위가 정상적인 식습관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도 알아선 안 돼. 이 모습을 들켜선 안 돼. 빨리 몰래 씹고 뱉어야 돼.’ 떳떳하지 못한 채 숨어서 먹는 음식은 더럽게 맛이 없었다. 음식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친구들과의 만남도 피하게 되었다. 차라리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혼자 먹는 것이 편했다. 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보는 것조차 두려웠다. 화려하게 진열된 수많은 음식들 사이에서 내게 허용된 음식을 찾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생해서 힘들게 뺐던 살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 이유를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지하 감옥 속에 갇혀버린 것만 같았다. 탈출을 위한 시도를 반복할수록 나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결과는 명백했다. 굶주림을 독하게 참고 버텨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거라 믿었던 시간들은 보기 좋게 나를 배신했다.
씹고 뱉는 행위는 나를 괴물로 만들었다. 나는 음식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고 음식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먹고 싶은 순수한 욕망을 그저 소량의 깨끗하고 건강한 음식으로 덮어버리려 했다. ‘언제까지 이 지옥에서 살아가야 할까? 정말 이 짓을 평생 할 수 있을까?’ 수많은 번뇌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루 온종일 운동과 칼로리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는 오로지 다이어트와 성공이라는 목표만을 좇고 있었다.
‘칼로리를 섭취하지 않으면서 맛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이 씹고 뱉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 방법으로 금지된 음식을 맛볼 수는 있었지만 두려움 때문에 삼키지 못했다. 음식을 목으로 넘기지 못하니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고 포만감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음식에 대한 간절한 갈망은 집착과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터널 속을 터덜터덜 걸으면서도 나는 한 줄기 빛을 너무도 간절히 보고 싶었다. 더 이상 음식 앞에서 벌벌 떨고 싶지도, 친구들과의 술 한 잔이 두려워 약속을 깨고 싶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