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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규 Jan 10. 2020

디지털 디톡스 : 생각의 시간

생각주간까지 가지면 더 좋겠다.

머리가 너무 길어서 커트를 하러 갔다. 손발이 묶이는 상황을 오랜만에 경험하면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통해 ‘생각’에 대해 나눠야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지적 생산자를 위한 ‘생각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항상 뭔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콘텐츠 ‘소비’의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하고 뭔가를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뭘 보거나 귀에 꽂고 뭘 듣거나 한다. 은근히 스마트폰 중독 경향도 살짝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책을 보다가 기록할 것이 생각나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에버노트에 기록을 하다가 잠깐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재미있는 동영상들 뜨는 것 보기 시작한 후 수십 분이 순삭 되는 경험을 하면서 화들짝 놀랐다. 

디지털 콘텐츠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한없이 보고 또 보는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다. 그들의 알고리즘은 계속 중독되고 하던 것을 더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산’보다는 ‘소비’에 특화되는 과정을 강화한다. 사람이 더 많이 보고 소비할수록 더 많은 고객과 ‘시간'을 확보하고 그 과정에서 플랫폼은 데이터와 광고 가능성을 얻게 되니까. 결국 나의 시간을 빼앗아 플랫폼이 돈을 번다.  


‘생산’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행동인 것 같다. 소비는 쉽고 편한데 생산은 어렵다. 돈을 생각해보자. 돈을 벌기는 어려운데 쓰는 건 정말 쉽지 않나. 영상 콘텐츠의 경우도 마찬가지. 영상 만들기는 어려운데 보는 건 정말 순식간이지 않나. 이런 것을 보니 생산자가 되기 위해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소비한 후에라도 생각을 하고 생각 자체에 깊이 집중하면서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소비’ 하는 것도 좋지만 오롯이 나와 내 생각에 집중해보는 것은 더 중요하다. 소비는 정말 다양하게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한번 소비하고 마는 콘텐츠는 너무 아깝다. 나의 시간이.  

최근에 일부러 귀에 이어폰을 꽃지 않고 다니고 있다. 걸을 때 정말 다양한 생각이 난다. 그 생각들에 집중한다.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마구 확장하도록. 그러다가 잡아야 할 것은 기록하고 나중에 발전시키고. 철학자들이 산책을 자주 한 이유도 생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겠지. 오늘 머리를 자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손이 묶였다. 눈과 귀가 있지만. 선생님이 원하시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생각’에 집중하게 되었다.  


생각하는 힘은 생산의 중요한 원천이다. 지적 생산자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내어야 하고, 내 생각을 깊이 들어가며 발전시켜보기도 해야 한다. 한 가지 생각을 가지고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으며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반복해보는 것이다. 옆으로 넓게 펼쳐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보기도 해야 한다. 유사한 다른 생각들, 다른 영역의 생각들을 더하고 조합하고 연결하고 확장해보는 것이다. 이 외에도 생각을 강화하고 더하는 훈련은 많이 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위해 디지털 디톡스가 좋은 방법이 된다. 빌 게이츠는 실제로 한참 마이크로 소프트를 경영하던 시기에 매년 2주가량 휴가 기간 동안에 ‘생각주간'을 가졌다고 한다. 외딴곳에 책만 잔뜩 가지고 가서 독서하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다음 해의 중요한 경영 전략이 다 이 생각 주간에서 나왔다고 한다. 디지털 기기, 소모적 소비를 철저히 단절하고 생각의 강화에 집중하는 시간. 지적 생산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방법론인 것 같다.  

스마트폰을 더 줄이고 생각을 더하자. 의도적으로 생각의 시간을 내고 깊이 몰두해보자. 매일 잠깐 동안이라도, 한주에 몇시간이라도, 분기나 연별로는 조금 더 길게. 함께 외딴곳으로 가서 생각주간을 가지는 프로그램을 기획해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가능해질지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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