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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Sep 14. 2023

그녀가 있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악성 민원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선생님이 계신 곳에요.

삯신이 쑤시는 관계로 모든 일정을 취소해 버렸다. 한의원에 가서 침이나 맞아야겠다, 싶은 생각에 남편도 일찍 출근시켰다. 늦잠으로 이미 지각인 강일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병원에 들를 참이었다. 꽤 쌀쌀해진 기온에 가을을 느끼며 긴 팔을 입을까, 바지를 입을까 고민하다 옷걸이에 널브러져 있는 치마와 티셔츠를  걷어입었다. 남색 치마와 상아색 티셔츠. 그러다 문득 한의원에 가기 전 들러야 할 곳이 생각났다. 다 입은 옷을 벗고 평소 잘 입지 않는 바지와 티셔츠를 꺼냈다.

습기가 사라진 가을 하늘

이제 막 터전 초입일 때 양배추에게 전화가 왔다. 거의 다 왔어요, 죄송해요를 외치며 액셀을 밟았다. 나들이 나갈 채비를 마친 알찬이들과 힘찬이들이 너른 마당에서 강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오늘 너나들이(형님들과 동생들이 함께 나들이 가는 날) 가는 날이구나. 급히 물통만 꺼내 강에게 건네고 가방을 알찬방에 가져다 놓았다.


차를 탈까 생각했지만 좀 걷고 싶었다. 대기에 스며든 가을을 온몸으로 누리고 싶었다. 내가 가야 하는 곳과 아이들의 나들이 동선이 겹쳐 잠깐씩 숨어 있자니 웃음이 났다. 그 틈에 올려다본 하늘 속에 맑은 빛 가을 색이 반짝이고 있었다. 망설이다, 단골 꽃집에 들렀다. 안쪽에서 꽃정리를 하시던 사장님이 분주하게 뛰어나오신다. 오늘은 어떤 게 필요하세요? 용산초에 가려는데 어떻게 사면되나요? 아, 다들 한 송이씩 하세요. 하얀 대국 하나를 얼른 뽑아 줄기를 손질하고 검은색 리본을 묶어 주신다. 꽃을 들고 나오니 세상이 달라졌다. 재잘거리던 알찬이들과 힘찬이들은 진작 관평천 어딘가로 숨어들었으므로 이제부터 혼자 오롯이 그 길을 걸어야 했던 탓일까?


관평천을 따라 사계절을 선현 하게 담아내는 벚꽃 나무들. 이 동네 자랑인 그 길은 돌아올 봄의 향연을 기약하며 가을볕에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난스러울 정도로 한적한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그녀도 이 길을 걸었을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국 감정이 쏟아져 내렸다. 내 아이의 담임 선생님도, 같은 동네의 주민도 아닌 내가 이렇게까지 슬퍼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반문이 생겼다. 하지만 답은 곧 찾아졌다. 자신의 아이들을 두고 결국 선택해야만 했던 한 엄마의 참담함과 좌절이 내내 가슴을 쳐 댔던 것이다.

화환 속에는 분노와 울분이 담겨 있었다.

길 끄트머리에서 모퉁이를 돌자 보이는 추모 화환들. 화환에 매달린 리본의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천천히 교문 앞으로 향했다. 검은색 옷에 국화를 든 나를 본 경비 아저씨께서 물어 오셨다.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추모하러 왔는데 들어가도 되나요? 아, 동료 선생님이세요? 아니요, 그냥 이 동네 주민입니다. 아저씨는 얼른 들어가 보시라며 길을 안내해 주셨다. 화환터널을 지나 도착한 공간엔 2~3학년즘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선생님과 단체로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 잠시 화환 뒤에 숨어 아이들이 선생님과 돌아가는 길까지 지켜보았다. 재잘대며 선생님의 뒤를 졸랑졸랑 쫓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나쁜 아이는 없다, 나쁜 어른만 있을 뿐’이란 말에 방점을 찍어 주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들고 온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고 그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았다. 애도하고 싶었는데 화가 나서 따졌다. 왜 돌아가셨냐고, 그들이 떠나야 하는 길을 왜 곱디고운 선생님이 가셨냐고, 이틀을 견디셨는데 살아서 저들을 벌 받게 했어야 했다며 따져 물었다. 답 없는 물음 끝에 너무 늦게 알아 미안한 마음과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이 길 위에서 스쳤을 선생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는 다짐과 남은 가족을 위해 기도 하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감정의 요동으로 추모답지 않은 추모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하늘은 여전히 맑고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 누리는 초가을의 영롱한 빛과 벚꽃 터널의 아름다운 계절들을 그녀도 어느 땐가 누렸을 텐데. 지금도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는데 그녀는 이곳에 없다. 365일 동안 370여 건의 민원을 넣었던 네 명은 붙은 목숨으로 세상을 원망하고 선생님을 원망하며 하루빨리 시간이 지나 벚꽃이 피기 만을 바라고 있겠지. 하지만 그 시절 선생님의 편에서 함께 버티던 학부모들이 하나, 둘, 그들로 인해 힘들었던 당시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선생님의 부군께서 고소 진행을 위해 증거를 수집하고 계신다. 돌아오는 봄, 아니 남은 평생 그들이 시린 겨울바람 속에 갇혀 있게 되길 바란다.


선생님께서는 이제 이곳의 상황은 모두 잊고 부디 자유의 나라에서 편히 영면하시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1년동안 370건의 민원은 왜곡된 이야기라고 하여 정정합니다. 건수는 중요치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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