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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Nov 17. 2022

K의 쇼생크 탈출, 아니 퇴사

  파티션 너머로 옆 부서 팀원 K가 쭈뼛거리며 섰다. 어, K야, 무슨 일? 팀장님, 잠깐 드릴 말씀이.. 후임 직원이 자못 심각한 얼굴로 말끝을 흐리며 대화를 청하는 때는 딱 한 가지 이유뿐이다.


  K와 회의실 문을 연다. 탁자 모서리를 옆구리에 끼고 마주 앉는다. “팀장님, 저 실은 오늘까지 출근하게 됐습니다. 내일부터는 남은 휴가를 일부 소진하는데 다시 회사 나올 일은 없을 것 같아서요. 지금 인사드리려고 합니다.” 그럴 것 같던 대화 요청 사유가 여지없이 그렇게 판정된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온다. 아이고, 갑자기 무슨 소리냐.


  어디 다른 회사로 가게 됐느냐 물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렇지 않단다. 당분간 쉬고 싶단다. 갑자기 결정한 것 아니고 오래 생각했던 일이라고 답한다. 무슨 연유인지 물었다. 그동안 힘들었거든요, 하는데 뒷말은 안 들어도 될 것 같았다. 몇 해 전 유부남이 된 K, 제수씨도 동의한 것이냐고도 물었다. 물론이고, 아직 아이도 없으니까 아내 외벌이로 당분간 살아보겠단다. 쉬는 동안 남은 대학원 학기를 마칠 것이고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몸도 챙길 거라고도 알려주었다.


  K와는 예닐곱 해 전에 처음 만났다. 계약직 사원 실무 면접에서 지원자로 들어왔다. 다른 지원자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차분하고 성실한 인상이었다. 어려운 질문에도 조리 있게 답했다. 맹신하면 안 되지만 이른바 ‘스펙’도 살폈다. K는 2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해서 언론학을 전공했다. 졸업 학점도 우수했다. 정규직이 아닌 고용 형태, 기자나 피디 같은 방송 직군이 아닌 방송지원 직군도 괜찮겠느냐 물었다.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으면 더 큰 기회를 주실 줄로 안다는 대답에 그래, 너구나, 싶었다. K는 뱉은 말을 현실로 이뤄냈다. 2년 후 정규직 사원이 됐다.


  이야기가 이렇게 희망적으로만 흘렀다면 오늘의 작별은 없었을 터. 이제부터는 비관적 추측이다. 지원 업무의 특성상 K는 여러 부서를 거쳤다. 다양한 업무를 익히면서 나름의 통찰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어느 순간 업무적 시공간 안에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인식한다. 연차도 쌓이고 나이도 차는데 내 일에 전문성이 있나 자문한다. 정규직 방송 직군으로 입사한 후배들은 처음부터 나와는 다른 처우를 받는 것 같다. 경력으로 보나 업무 숙련도로 보나, 내가 먼저일 것 같은데 마치 2등 시민이 된 기분이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되는 것만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저들처럼 1등 시민이 되는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회사가 과연 내게도 기회를 줄까. K 안에 불만족의 침전물이 시나브로 쌓여갔을지 모른다.


  회사는 K에게도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종전까진 그런 기회가 아주 없지 않았다. K처럼 방송지원 직군 중에 심사를 거쳐 방송 직군으로 전환해준 사례가 더러 있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일하고 있고 나머지는 회사를 떠났다. 회사는 후자에만 천착했다. 애써서 직무 전환을 해주었더니 은혜도 모르고 배신을 해? 피디 시켜주니까 그 명함 가지고 금방 다른 방송사로 이직하더라, 책임자급 간부 중엔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결과, 직무 전환 심사 대상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나 그것은 확증편향이요 통계 해석의 오류다. 퇴사자는 늘 있어 왔고 그들 중 다수가 동종 업계의 타사를 새 일터로 삼는다. 당연한 이치다. 떠날 사람은 결국 떠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옥석을 가리느냐다. 빠져나가는 숫자가 있으면 공급을 더 늘리면 될 일이다. 우수한 구성원들에게는 직무 전환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했어야 옳다. 가는 이들은 가라고 두고 남은 이들을 살펴 그들이 더 크게 활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회사에게 더 이득이다.


  나도 회사의 일부다. K의 결심에 어떤 규모로든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내 책임도 있다는 말이다. 애초에 K가 이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면접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더라면, 나보다 힘 있는 이들에게 K도 응당한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피력했더라면, K가 힘들어할 때 그 마음을 좀 더 일찍 헤아렸더라면. 그러기에 K는 우수했고 회사는 어질지 못했으며 나는 아무 힘이 없었다. 시작을 응원했던 마음과 다른 애석한 결말에 많이 미안했다.


  K는 성실했다. 그래서 늘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잘하려고 하니까 긴장한다. 긴장하면 경직되고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면 당연히 힘이 든다. 몸도 마음도 지친다. 그 정도로 애쓰는데 돌아오는 보상은 마음 같지 않다. 열심히 달렸는데 고작 여기까지 온 건가 싶다. 고개를 돌려본다. 나보다 늦게 출발했는데 벌써 저만치 앞서는 이들도 보인다. 어쩌면 애당초 가는 길이 달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K가 이곳 회사에서 보낸 몇 년이 내가 보낸 시간 같아서 멋쩍게 한 마디 했다. 그래, 너 많이 힘들었겠다..


  형식으로서의 덕담이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진심을 말했다. “고생 많았다, K야. 너처럼 공들여 만든 아까운 숙련자를 붙잡지 못하는 이 회사는 바보다.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일하고, 꼭 내 일이 아니어도 눈에 들어오는 업무 공백을 알아서 메우는 너인데, 그런 직원을 어디 가서 또 구하겠냐. 너 같은 숨은 영웅을 언성 히어로(unsung hero)라고 부른다지. 네 회사 생활은 그야말로 영웅적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힘없는 내가 안다는 게 미안하고 안타까울 뿐. 너는 심성이 선하고 선한 사람은 불성실할 수가 없지. 어느 자리에서든 인정받을 거야. 이제 좀 쉬고 언제든 새로운 일 시작하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알려주라. 아, 인생의 어떤 변곡점이 생기든 당연히 연락 주고. 그리고 너 이제 한가한 것 아니까 조만간 연락하면 제수씨 허락받고 저녁때 튀어나와라. 한잔 부딪치게.” 팀장님 고마웠습니다, 하는데 내가 뭘 해준 게 있다고, 하며 받았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별명은 무관의 제왕이다. 1995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7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상을 하나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쟁쟁한 후보작에 밀린 탓이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영화라고 칭송한다. 영화에서 노인이 된 장기 복역수 ‘레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선한 주인공 ‘앤디’의 탈출을 묵묵히 응원한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자유의 몸이 된 두 사람이 어느 열대의 바닷가에서 해후하는 마지막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언젠가 K와 나에게도 그런 근사한 결말이 준비돼 있기를. 그때가 되면 K는 분명 자신만의 푸른 바다를 찾아냈을 거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보태어 나는 안다. 가족들 생각에 떠나지 못하는 나, 그렇지만 한 번뿐인 인생을 위해 떠나는 너, 그걸 지지하는 너의 아내, 우리 모두가 용감한 사람들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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