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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Feb 23. 2024

마음의 무통각증

<6주차 임상 기록>

  ‘CRPS’라고 부르는 병이 있다.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이다. 신체의 한 부분에 극심한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외상으로 손상을 입은 부위에 손상 정도보다 훨씬 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이 지속되면서 2차적인 다른 증상이 발생하는 병이다. 확실한 치료 방법도 없어서 극심한 고통이 끝도 없이 계속된다.


  그것과 정반대인 병이 있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못했다. ‘CIPA’라는 병명이다. ‘Congential Insensitivity to Pain with Anhidrosis’, 즉 ‘선천성 무통각 무한증’의 약자다. CRPS와 반대로 그 어떤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 차가움과 뜨거움은 물론 미각 중 매운맛도 통증의 하나이므로 알지 못한다. 자극에 반응할 수 없으니까 땀도 흘리지 않는다. 아프지 않으면 좋은 것 아냐 싶은가. 다음 사연을 들어보시라.


  교육방송 텔레비전에 소개된 사례다. 여기 꽃다운 고교생 소녀가 있다. 그녀는 CIPA 환자다. 엑스레이 사진이 나온다. 온몸이 성한 데 없이 부러져서 곳곳에 철심이 박혔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사소한 습관도 끔찍한 결말에 이른다. 손톱에서 피가 날 때까지 물어뜯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알지 못한다. 닳고 뭉개지고 꺾여서 이미 고장 난 무릎으로 계속 걷고 달렸다. 마침내 이제는 손 쓸 수 없는 다리가 되었다. 치료를 위해 대못 만 한 바늘이 들어온다. 무덤덤한 소녀의 표정이 안쓰럽다.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전이 되는 병이라 그녀의 동생도 같은 증상이다. 동생도 망가진 다리를 계속 쓰다 주저앉고 말았다. 치료 과정에서 의사 선생님이 그녀의 발을 ‘말도 안 되는’ 각도로 비튼다. 동생은 남의 다리를 보듯 무표정하다. 두 자매의 아버지만 고통으로 절규한다. 아기 때부터 예방 접종을 하면 다른 아이들은 다 우는데 자신의 자녀들만 그렇지 않았단다. 그때부터 무언가 잘못됐다고 직감했단다. 가엽고 안타까운 가족사다.


  인사이동 직후 마음의 통증과 관련한 여러 권의 책을 빌려 읽었다. 도서관에 가면 ‘불안’으로 시작하는 책 제목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현대인의 다른 말은 ‘불안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필자가 탐독해 본 바, 다양한 경력의 작가들이 설파한 마음의 불안은 극복하고 물리쳐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로부터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필수적, 필요적 방어수단이다. 없으면 오히려 인류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불안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다만 그것이 필요한 때에만 적절히 기능할 수 있게 어르고 달래는 것이 중요하다.


  면팀 1주차에는 마음의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간절히 애원하여 마음의 스위치를 꺼버리면 어떨까도 싶었다. 그러면 지금의 이 불안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어떻게든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스위치를 오래도록 꺼두었다가 나중에 딱 켠다. 그 시점부터 비로소 본래의 나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허튼 상상도 해보았다.


  그리하여 마음의 CIPA, 선천성 아니라도 후천성 무통각증에 걸리면 어떻게 될지도 그려본다. 마음의 엑스레이 사진을 라이트 박스(Light Box)에 끼운다. 여기저기 터지고 깨져서 꿰매고 덧댄 자국투성이다. 닳고 뭉개지고 깨어진 마음으로 계속 살아서 이미 고장 난 그것이 된 지 오래다. 어쩌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이 마음 한쪽으로 푹 찌르고 들어와도 역시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손쓸 수 없이 망가진 마음은 어느새 자아의 깊은 곳까지 침범했다. 껍데기만 남아 움직이는 여명(餘命), 그것은 망자의 보행과 다름없어서 대단히 기이하고 저주스럽다.


  몹쓸 상상의 실현 아닐지 싶은 인물이 마침 회사에 있었다. 나보다 한참 전에 팀장에서 팀원으로 내려온 나이 쉰 중반 부장이다. 그는 나보다 더 가혹한 조건이었다. 쓰임새를 인정받아 어디 다른 부서로 가지도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원래 있던 팀에 남았다. 과거 당신이 지휘하던 팀원, 이제는 팀장이 된 이의 업무 지시를 받는다. 전보다 아주 작은 업무 영역을 취급하며 그런대로 만족하는지 여부까진 잘 모르겠다. 부장은 이전에도 좀 생동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 무표정에 더 짙은 공허가 달라붙었다. 로봇의 금속 재질처럼 선득한 느낌마저 풍겼다.


  나의 사정으로 돌아온다. 이제 나의 불안은 내가 살아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내가 느낀 마음의 CRPS 역시 심한 ‘엄살’에 불과하다. 이제는 마음의 전원을 차단하는 소망 따위 꿈꾸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반전은 더 있다. 점심 먹고 산책길에 우연히 로봇 부장과 마주쳤다. 내가 그랬듯 비슷한 또래 동료와 걷던 참이었나 보다. 한데 회사에서 좀체 볼 수 없었던 산 사람의 표정과 몸짓이다. 딴에는 그게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그가 마음의 CIPA 질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까닭 없는 인류적 희망까지 품는다.


  아프면 아픈 대로, 아파서 아프다고 가끔 엄살도 부린다. 작은 병은 고치고 큰 병은 예방하며 사는 삶이 그저 제일이다. 고장 나서 아주 멈춰버린 마음, 그것은 스치는 옷깃에도 살을 베는 고통만큼이나 심각하고 위험하다. 나는 이제 몸소 부딪쳐서 비로소 손톱만큼 안다. 우리 한 뼘 자랄 딱 그만큼만 마음 아프기로 하자. 아픈 것 모르면 마침내 괴사 해서 완전히 무너져 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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