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벗들과 가진 저녁 자리에서 이야깃거리가 흐른다. 왜 사냐고. 인생의 목표가 뭐냐고. 서로들 그런 게 따로 있는지 주고받았다. 어떤 친구는 사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말했다. 오늘 같은 찰나를 이어 붙이면 꽤 근사한 삶이 아니겠느냐 자평했다. 다른 친구는 가족의 무탈과 안녕을 거론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자신은 어떠한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겠노라며 맑은 술을 털어 넣었다.
고인이 된 가수이자 음악인 신해철. 그가 생전에 어떤 강연회에서 힘주어 말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태어나는 것이었고, 우리는 그 목적을 다했기 때문에 남은 인생은 보너스 게임입니다. 그리고 이 보너스 게임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또 방송인 유재석 씨는 어느 오락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인생의 목표가 따로 없어요.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다만 여러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바람은 있습니다.”
자연스레 내 순서가 돌아왔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목표야. 사소한 행복도 좋고 가족을 위한 희생도 마땅하지만 그런 것도 어디까지나 내가 살아있어야 가능하잖아. 그리고 살다 보면 누구나 삶을 놓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잖아. 언제부턴가 그럴 때 나도 모르게 스스로 새기는 말이 ‘살자, 살아있자, 살아보자’ 이런 말들이더라고. 언젠가 늙고 병드는 순간이 삶에서 당연히 찾아오겠지만 그때까지는 반드시 살아 있으려고.”
취중에도 입이 저절로 굴렀다. 평소 자연스레 응결된 사유의 결정이 언어의 통로로 빠져나왔을 뿐이기 때문이리라. 앞서 유명인들이 남긴 말들은 백번 타당하다. 원대한 목표, 거창한 계획, 견고한 의지와 부단한 실행만이 인생을 결정짓는 건 아니다. 그런 엄숙주의야말로 우리의 삶을 경직되고 위태롭게 만드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거기에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보탠다. 태어난 것 자체로 목표를 이루었고 남은 삶이 보너스 게임이라면 그것 또한 너무 가볍다. 보너스는 말 그대로 얻지 않아도 그만인, 큰 손해가 아니므로 언제든 포기해도 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것 역시 경계해야 하므로 나는 나만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태어났으므로 ‘살아있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자.
살아있는 것이 삶의 기본적이면서도 궁극적 목표여야 하는 세상과 시대를 살고 있다고 통감함이 나만의 몫일까. '존버'라는 신조어의 자조적 어감이 아니더라도 생존 자체가 인류적 과제가 된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인가. 다른 무엇보다 나 혼자 인생이 아니다. 나 하나 편하자고, 無로 돌아가 영원한 안식을 얻자고 스스로 삶을 중간에 끊어내는 일 같은 건 그야말로 이기주의의 극단이다. 남겨진 이들의 고통은 어쩌나 이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있는 것’ 자체를 현생의 목표로 삼겠다. 생의 모든 조건이 휘청거렸어도 살아있는 것 하나만큼은 흔들림 없는 목표였던 삶이 마침내 결승점에 이르는 날 스스로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줄 수 있길 마음 깊이 바란다.
매년 9월 10일은 세계 보건 기구가 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