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팅을 끝내고 밥을 먹을 때, “띠링!” 하고 문자벨이 울렸다.
보낸 사람: “예쁜열매”
문자를 열어보니 종이로 만든 익선관을 쓰고, 손으로 만든 빨간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신발장에서 무릎을 세워 찍은 사진을 아들 녀석이 보내왔다…
“하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 터져버렸고, 주변 사람들이 다 궁금해해서 사진을 보곤
“역시 태민이답다! 귀여워!”라고 소리를 연발했다.
평소에 게임 시간 주세요 외엔 문자도 잘 안 보내는 녀석이 셀카까지 찍어 보내와서, 나도 모르게 흐뭇하고 따뜻한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임태민, 이거 뭐야? ㅋㅋㅋㅋ”
“엄마, 오늘 학교에서 이걸 만들었거든? 익선관이야! 부채도 내가 만들었어! 내가 이거 쓰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왔거든… 그리고 지금 다시 농구하러 갈 건데 엄마한테 보여주려고 영상 통화했더니 안 되어서 사진으로 보냈지.”
기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이 엉뚱한 녀석의 재기발랄한 캐릭터가 눈앞에 아른거려, 운전하며 오는 내내 실없는 사람처럼 웃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아들생각에 실실거리는 내 모습이 보이기라도 한건지 또다시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나 지금 인라인 타러 나가도 돼? 형이랑 같이 타기로 했어!”
“태민아, 보호장구 꼭 하고 나가야 돼. 헬멧도 쓰고 무릎 보호대도 하고 말이야!”
“엄마, 나 이제 완전 잘 타. 그리고 오늘 익선관 쓰고 나가야 해서 헬멧은 못 쓸 것 같애! 내가 진짜 조심해서 탈게!”
“태민아, 안 돼!!!!”
녀석은 두 번의 잔소리를 하기 전에 전화를 재빠르게 끊고 사라져버렸다. 그 익선관이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아들 녀석은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만든 익선관과 부채를 종일 쓰고 들고 다녔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편의점에 들러 사장님께 인사도 하고,
집에 와서 셀카 찍고 나에게 보낸 후 다시 나가 인라인을 타고 태권도를 갔으며,
놀이터에서 놀 때도 내내 쓰고 다녔다고 한다.
오늘도 나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낸 아들과 잠자리에 누웠다.
“너 오늘 하루 종일 그거 쓰고 다니니까 친구들이 뭐라고 안 해?”
“어! 뭐라고 안 해! 그리고 하면 어때? 아참, 점심 먹을 때도 쓰고 다녔거든? 근데 앞에 있는 여자애들이 계속 쳐다보는 거야! 그러더니 ‘정조대왕이다!’ 꺄르르르르르~ 하고 막 웃더라고. 그래서 내가 에헴~~~ 하면서 왕 흉내를 냈지!…”
“친구들이 그렇게 쳐다보고 뭐라고 하면 신경 안 쓰여?”
“뭐가 신경 쓰여? 멋있어서 쳐다보는 거겠지. 내가 오늘 정성 들여 만들었는데 하루 종일 자랑해야지!”
아들은 그렇게 보낸 하루가 무척이나 뿌듯하고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어른의 시선에선 10살 아들이 검은 종이에 알록달록 꾸며놓은 익선관을 쓰고
하루 종일 길거리를 누비며 시선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아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남들의 시선보다는 내가 정성 들여 만든 이 보물 같은 익선관을 분신처럼 쓰고 다니며 자랑하고,
그 행복감을 스스로 실컷 만끽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일상들,
특별한 이벤트까지도 우리는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저들이 나쁘게 보면 어떡하지? 내가 이렇게 하면 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이러는 것이 너무 튀는 건 아닐까?”
무수한 고민 속에서 때때론 나 자신보다 타인을 내 삶의 중심에 두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보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보다 나의 생각이 얼마나 견고한지,
남들이 날 아끼고 사랑해주는지보다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단단하게 사랑하고 있는지가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나 스스로를 아낌없이 사랑하면서 나오는 자존감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강인한 힘의 원천이 되며,
그것은 곧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가지는 이 순수함 속에
어쩌면 이 작은 행복의 씨앗이 조금씩 자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내면의 힘,
그것이 성장하는 어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