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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채목 Aug 02. 2020

더 편해졌나?

 어릴 적 나는 어머니께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 길을 걸어가면서 전화통화를 하고, 작은 TV를 들고 다니면서 길에서도 자동차 안에서도 TV를 볼 거라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나를 아주 신기하게 바라보셨던 기억이 난다.

 이젠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 된 그런 모습이 약 40년 전 30대 어른들에겐 말도 안 되는 공상과학 만화 속 이야기였던 것이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이던 1993년, 그땐 삐삐가 필수품이 아니었다. 1995년부터는 많이 보급됐지만 1993년 3월 당시엔 거의 100명 들어가는 강의실에서 학생 중에 삐삐가 있는 경우는 한두 명이 고작이었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나는 워낙 통신 기기에 관심이 많아서 대학교 입학하고 한 달 채 되기 전에 삐삐를 개통했다. 대학 4학년이던 1996년에 핸드폰을 개통했다. 그 당시엔 디지털 017이 나오기 전인 아날로그 방식의 011 혼자 독점하던 시대였다. 폰 하나 개통하는데 백만 원이 넘게 들던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서 전화를 개통했다. 부모님도 안 갖고 계신 휴대전화를 대학교 4학년인 내가 개통했고, 대학원 1학년 때는 새로이 출시된 디지털 017로 갈아탔다. 당시 나는 최첨단의 얼리어답터였다.

 요즘도 얼리어답터라는 소릴 듣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난 이제 얼리어답터가 아니다. 아니, 얼리어답터가 되길 포기했다고나 할까? 물론 난 스마트폰을 쓰고 sns를 활용하며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적절히 이용하고는 있지만, 시류에 맞춰 나가는 수준이지 먼저 앞서 나가는 얼리어답터는 아니라는 말이다.

 40년 전엔 공상이라고 여겨지던 휴대전화나 휴대 TV가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더 발전된 형태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등장으로 2G 폰은 사라지고, 3G 폰도 끝났고, 4G 폰 조차도 구닥다리 취급을 받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앞으로 5년 뒤 우리는 어떤 휴대기기를 사용하고 어떤 식으로 금융기관을 이용할까? 40년 전 상상력 풍부했던 아이는, 이제 40대 중후반이 되어 5년 뒤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문명의 이기...... 많이 편리 해 진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 것 아닌가?

 예전엔 정규 교육을 받은 후 삶의 지혜를 가지고 죽는 날까지 살아가는 데 별 불편함이 없었다. 9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 각 가정에 컴퓨터가 보급되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초고속 인터넷이 전국의 가정에 보급되면서,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어른들이 재교육을 받지 않으면 사회의 흐름에 뒤처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시험문제를 갱지에 만년필로 써서 출제하던 고교 교사인 내 어머니는 50세 전후 시점에서 새로이 컴퓨터를 배우고 워드 프로그램을 익혀서 컴퓨터로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프린트하셨다. 이젠 한글 표 만들기 등 문서 작성은 나 보다 더 능숙하게 잘하신다. 워드뿐만 아니라 엑셀, 파워포인트 등 문서 파일 전문가시다.

 전화는 걸고 받는 것만 되면 되는 줄 아시던 내 아버지는 59세에 문자 메시지 주고받는 방법을 내 동생에게 배우신 이후 전화보다 문자를 더 애용하신다. 환갑을 넘기 신 후 문화센터 등을 통해서 인터넷 활용법을 배우고, 이메일 계정을 만드신 아버지. 우리 딸들에게 이메일로 신년사도 하시고, 당부 말씀도 보내셨다. 현재는 그것을 대신 해 카카오톡 가족 단톡방에서 신년사뿐 아니라 매월 말일에는 한 달을 마무리하는 내용의 글을, 매월 첫날에는 새로운 한 달의 희망 메시지를 올리신다. 또한  스마트폰으로 영상 촬영을 해서 카톡으로 보내주신다. 부산과 서울에 떨어져 살면서도 부모님과 항시 소통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삼십 년 뒤, 아니 지금부터 삼십 년 동안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새로운 것들을 익혀야 뒤처지지 않고 중간은 갈까? 얼리어답터는 고사하고 뒤처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업무에 관련된 건 물론이고 그 외 일상생활에 관련된 것들까지도 끊임없이 계속 배우지 않으면 중학생에게도 초등학생에게도 뒤질 수밖에 없는 급격한 기술의 발달. 까딱 잘못했다간 할머니가 되기도 전에 할머니 취급받기 딱 좋다.

 

 우리가 편리하게 살게 된 만큼 그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일까?

 정녕, 우린 더 편해진 걸까?

 우리의 생활이 많이 편리해진 건 사실이지만, 결코 편해진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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