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어렵다

기다려주는게 정답인줄 알았다, 소통없는 기다림은 오해만 낳는 것을 몰랐다

by 윤목
마냥 기다리기는 너도, 나도 서로가 지쳐가는 길인 것을 이제야 알았다.


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의견차이도, 바라보는 목표에 대한 차이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차이들을 이야기하다 말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나는 극도로 꺼리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항상 상대를 기다려주는 입장이 되고 싶었다. 연애에 있어서도, 친구에 있어서도 회사 직원을 대함에 있어서도...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생각하는 것 그리고 행동하는것에 대해 상대가 이해해 줄 수 있을 날이 올 줄 알았다. 바보 같이 생각에 대해 스쳐가듯 말만 해놓고. 그간의 기다림으로 상대의 마음이 상했을 거라는 생각도, 그 상태에서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에 상대가 반발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조차 헤아리지 못했다.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아니었다.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내가 항상 "말을 해야 알지. 삼키면 누가 알아 준다니?" 버릇처럼 하던 말인데. 정작 이 말을 나 스스로에게 적용해 보진 않았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살다보면, 아차 싶을 때가 있다. 분명 남이 나에게 이렇게 해 주었으면 했는데 정작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회사에 언제나 술을 먹으면 전화를 하는 친구가 있다. 정말 친구는 아니고 '친한 누구'의 의미의 친구다. 작년부터 꾸준히 함께 술을 마시자는 '술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녀석이다. 오늘은 다른곳에서 술을 먹고 사무실에 와서 술한잔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역시나 나의 대답은 '거절' 이었다. 나는 자리만 지켜주기로 하고, 나를 대신할 다른 친구와 함께 3명이서 자리를 가졌다. 그간의 오해에 대한 이야기 들에 대한 것들을 풀어내는 자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누군가는 술을 마시면 솔직해 진다고 하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면 회포를 풀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솔직도 하고 회포도 풀어내는 그런 자리였나보다.


"제가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뭘 잘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갓 28살이 된 그 친구가 무겁게 털어놓은 고민이었다. 가장 듣고 싶었을 말이기도 하지만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다. 회사의 구성원이 잘하는 것으로 비즈니스 모델링을 해 가는 것이 회사의 모토임을 감안했을때. 우리 회사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발전해야 한다. 그런 회사의 구성원 중 하나가 본인이 뭘 잘하는지 뭘해야할지 고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저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마웠고 바라는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곱씹을 수록 이상한 뉘앙스를 느꼈다. 마음 한켠에서 콕 하고 찔리는 부분이 있어서 였을까. 마치 내가 방향을 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듯하게 들렸다. '하고싶은게 있으면 기획안 써와 하게 해줄게.' 한두번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저 스쳐가는 이야기로 가볍게 했었던 것이 그 친구에게는 와닿지 않았던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그저 그렇게 스쳐가듯 말하면 척하면 척 알아듣고 행동해 주길 바랐던 나의 욕심이 그 친구가 고민하게 만들었고, 그 고민이 오늘의 자리를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결코 외롭게 두거나 혼자 고민하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같이 고민하고 같이 길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마저 누군가에겐 나의 생각을 강요하게 되는 오류를 범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가치관도, 나의 생각도, 내가 이끌고 싶은 방향도 강하게 어필한 적이 없었다. 각자의 살아온 삶들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고민하고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었던 것이었다. 이런 생각 역시 나의 삶의 배경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그 친구에게는 말해주지 않았던 막연한 기다림이 그를 답답하게 만들어버린 역효과를 내버린듯 싶었다. 그 오해를 풀고 싶어서, 스스로의 성장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렇게 2시간 동안 우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이제 알겠어요"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2시간을 이야기 했다. 이미 쌓여 버린 오해를 풀기 위해 소통이 아닌 설득을 한 날이었다. 그 친구가 정말 내 의도를 알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의 작은 배려들이 소통의 부재를 낳았고 그 소통의 부재 나만의 기다림으로 예쁘게 포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오해를 낳았었다.


오늘은 내가 술 주정 덕에 또 다른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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