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속 간절함에 대해

by 윤목

“너무 두서없고 횡설수설했었네요.”


‘정말 힘들었나 보다’


상담을 끝낸 내담자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앞두고 푸념 섞인 말투로 말을 건넸다. 어째서였을까. 내담자의 두서없는 말들에 섣불리 조언을 하기가 힘들어하던 내가 저 한마디를 듣고서야 내담자가 정말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은. 결코 집중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매 번 상담의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제한된 정보에서 자칫 하면 발생할 수 있는 상담의 오류를 범할 까 봐 늘 조심스러웠고 어떻게 하면 상대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어 놓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털어놓는 것. 그 과정 자체가 본인이 처한 상황을 정리하게 되는 시작이니까.


이 내담자는 나에게 수많은 정보를 털어놓았다. 두 사람 간의 관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시작을 하게 되었는지. 그러나 그 시작이 본인을 어떻게 힘들게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하여 말이다. 내가 던지는 물음에 긍정이다가도 부정으로 부정이다가도 긍정으로 돌아서는 내담자의 반응을 보며 나도 모르게 답답해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인지 딱 말하라고 다그치고 싶었다. 상담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담자가 본인이 듣고 싶은 이야기 혹은 이미 결정에 확신을 더해줄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선입견이 생겼던 것은 아닌가 싶다. 실제로 대다수의 상담은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들 처음부터 표면적으로 상담자에게 원하는 내용을 대놓고 듣길 바라지는 않는다. 대화를 하다가 보면 자연스레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결국은 '역시 그랬어야 했는데 말이죠' '그래야겠어요' '그러고 싶었어요'라는 이야기들로 마무리되는 상담이 대다수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내담자에게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순서 없이 횡설수설하는 내담자에게 나도 모르게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오늘의 상담을 요청한 내용은 이러했다. 남자와 여자는 전 연애들에 대한 같은 트라우마로 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남자는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표현하기를 바랐지만. 여자는 아직까지는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하는 상태.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마음을 열었을 때 혹시나 또 다칠까 하는 그 두려움. 그 두려움을 아직 이기지 못한 상태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기다 주겠다고 했으나 잦은 대화 흐름의 단절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 힘들다 이야기를 했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위해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했으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스스로가 참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보통 같으면 조금 더 노력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것이다.


"남자 친구가 노력하는거 알고 있다고 했어요"


이 한마디에 이 두 사람은 더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노력하고 있어 가 아닌 네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라는 이야기. 남자의 입에서 쉽사리 나오기 힘든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 깊은 마음을 주고 있지 않는다면 말이다. 기본적으로 서로가 대화와 공감을 할 수 있는 관계임이 틀림없었다. 여기서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맺게 해선 안된다.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두 사람은 투명하고도 안정적인 사랑이 되리라 생각했다. 조금만 버틴다면 말이다.


그러나, 어디까지 내담자의 마음이 상당히 중요했다. 해결을 할 의지가 있느냐. 내담자의 말투에서는 해결은 하고 싶지만 지레 겁을 먹은 상태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말투에서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횡설수설하시는 걸 보니 정말 카오스 그 자체의 상태이신 것 같아요."


결국은 이렇게 마무리 멘트에 대한 운을 띄웠다. 특별한 조언도, 어떻게 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방향성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내담자가 처한 상황에 같이 답답해하는 것이 다일뿐이었던 상담 내용이었다. 내담자의 마음 상태도, 그리고 그 내담자의 상대의 마음 상태도 결론을 짓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 힘듦을 토로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결국은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었고. 그 둘의 관계는 서로의 기다림과 대화에 달려 있었다.


어느 관계에 있어서든 대화는 참 중요하다. 사랑을 표현할 때는 사랑한다 표현해야 하고 힘들 때는 힘들다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대화였다. 비 언어적 표현은 긍정적인 것은 한없이 긍정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부정적인 것은 한없이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긍정의 이유를 설명하고 부정의 이유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설명함으로 인하여 조금 더 건강하고 솔직한 관계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내담자와 같이 아직 한 방향으로 정리하지 못한 경우에는 고민에 대한 이야기 조차 꺼내기가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 스스로에 확신조차 서지 않은 상태니 말이다.


상담에 있어 횡설수설한 내담자야 말로 정말 힘든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어느 쪽으로도 아직 본인의 이야기를 써가려고 마음먹지 못한 상태. 스스로와 환경이 만들어낸 혼돈 그 한가운데에서 있는 내담자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해결하고 싶은 그 '간절함'으로 상대와 보다 많은 대화를 해볼 것. 설령 그 대화를 통해 본인의 밑바닥까지 보여준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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