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이틀이 되었고 그 날들이 결국 매일이 되어 버렸다.
습관이라는건 무섭다
10살 남짓한 어린시절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했다. 그후 무시무시한 죽음의 그림자가 언제든 날 덮쳐올 것만 같았다. 그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가득찬 나의 감정이 너무나도 무서웠던 나는 엄마 아빠에게 혼나면서도 꾸준히 방을 가득 밝혀주는 형광등을 켜고 잠을 청했었다. 그 마저도 새벽시간에 내가 잠이 들수 있게 해주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는 대학교까지는 그 새벽에 환히 불을켜고 공부나 독서를 하며 잡념을 쫓아 낼 수 밖에 없었다. 군에 입대한 후에는 다행히 행정업무를 보게 되었었는데 가끔 있는 당직근무를 이상할 만큼 좋아했다. 전역하고 나서는 무료하고도 무서운 새벽시간에 글을 적는 것을 취미 삼았다. 직장을 다니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새벽으로 일을 미루기 일쑤였다. 그렇게 누군가는 나의 생활 패턴을 보고 새벽에 잠들지 못하는 것을 합리화 시킨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누군가들은 잠이 들었을 새벽이라는 시간은 나에겐 죽음을 무서워하던 어린날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습관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어느덧 20년 가까이 30이 된 지금까지 새벽에 잠이 들지 못한 나는 '오늘 새벽엔 무얼하지'라며 고민한다.
책읽기, 음악듣기, 글쓰기 그리고 강아지
"자기는 새벽에 잠을 잘 자지 않는게 항상 신기해" 가끔 거의 아침되어서야 잠이 들었다고 했을 때 그녀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물론 최근에는 일을 하다가 잠을 못자는 날이 많았다. 활발한 강아지가 괴롭힐 때도 있었고. 그 전에도 일을 하느라 잠을 못들었다고 하는 날들이 많았지만 오롯이 새벽시간 내내 일을 하는 편은 아니다. 새벽은 나에게 하루의 감정을 다스리고 마무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업되어 있던 낮의 감정을 진정시키려면 조용한 새벽의 시간을 필수적이다. 사업이라는 일의 특성 때문일까 아니면 워낙 힘들어 하거나 무거운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은 성격 탓 일까. 일때문이라고 가볍게 치부하기에는 밝은 모습을 유지하려는 낮의 시간이 나에겐 너무나도 버겁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외향적이건 내향적이건 단어 하나로 한 사람을 정의할 수는 없다. 우린 누구에게나 좋든 싫든 모순덩어리 이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낮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서 그럴까. 내가 보내는 잔잔한 새벽시간의 풍경은 언제나 비슷하다. 침대에 무드등 하나 켜놓고 우울하거나 잔잔하게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들, 감정을 다스려줄 자그마한 산문 혹은 에세이, 언젠가는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어 끄적여 보는 글쓰기, 우울하거나 잔잔해진 나를 가만히 다가와 달래주는 강아지. 이 네가지가 새벽시간을 가득 채워 준 후에야 비로소 나는 잠에 드는 듯 하다.
저녁에 일찍 잠드는 것을 기대하진 않아
10시, 11시, 12시 그리고 엄마, 아빠 입장에선 9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잠에 드는 시간이지 않을까. 많은 주변인들이 나의 생활패턴을 가지고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그들이 나를 걱정해서 하는 이야기 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맙기도 하다. 그렇지만 10년이상 거의 20년 가깝게 새벽을 다스림의 시간으로 보내온 나에게 그 패턴을 바꾸라고 한다면 대답은 '어렵다' 라고 할 것 같다. 한때는 나도 남들 잠드는 시간에 홀로 외롭지 않게 떠들지 않아도 될 수 있는 날들을 기대했다. 잠드는 시간을 바꾸려고 할 수록 나에게 그 시간들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러다 가끔 일찍 잠에 들 때면 사라져버린 나의 새벽시간은 다음날 아랑곳하지 않고 우울로 찾아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실패를 거듭할 수록 쿨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나에겐 새벽이 정말 소중하고 그 시간이 오히려 내가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더이상 일찍 잠에 들고싶어 하지 않는다. 새벽을 즐기고 자고 싶어할 뿐이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늘어나 매일이 되버린 나의 새벽을 나는 하루중에 가장 아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