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술가를 좋아했다

그땐 그랬다

by 윤목

"이번 설은 내려오지 말고 조금 잠잠해지면 내려오렴"


2021년의 설 연휴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채 서울에서 보냈다. 코로나 때문인지 덕분인지는 몰라도 매번 명절이 다가오면 언제 내려올 거냐는 질문을 쏟아붓던 부모님도 이번만큼은 구태여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며 말렸다. 의아하면서도 뜻하지 않은 휴식의 시간을 얻어 내심 기분이 좋았다. 코로나 덕에 일이 줄어 늘 연휴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연휴인 만큼 옆에 있는 사람과 조금은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조심해도 끝이 없을 거라 생각한 우리는 그간 일터와 집 그리고 매일 저녁 나가는 저녁의 야외 산책으로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대단히 특별하지는 않더라도 소소하게 따스한 설날을 맞이할 거리를 찾고 싶었다.


"나도 어릴 때는 예술가들을 꽤나 좋아했던 것 같아"


스치듯이 어제 그녀가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제 그녀의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역시 그랬었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었다. 음악가와 미술가 그리고 작가들을 동경했었다. 그 누구보다 사회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운 행동들과 생각, 그리고 그들의 유명세 까지. 그래서 그랬을까. 어릴 때의 나는 악기도 10여 년간 열심히 배웠고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들 옆에서 늘 맴돌기를 반복했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들처럼 유명해지고 몇억짜리 그림도 팔고 한 번에 몇백 몇천의 공연을 다니는 그런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면서.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잠시 어린 시절 그들을 동경하던 나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볼만한 예술영화를 검색했다.


'에곤 쉴레'


검색한 목록 가운데에 그녀가 손쉽게 골라내었다. 역시 선택지를 주면 곧잘 고르는 편이다. 짧은 시간 내에 영화도 골랐겠다 우리는 저녁 한상을 차려 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았다. 미술과 관련한 영화는 자주 보지 않는 편이었다. 미술보다는 음악 영화에 조금 더 치중해서 보는 것에 익숙했다. 영상이라서 그랬을까. 그 웅장한 사운드와 연주하는 모습이 나를 더 자극시켜주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미술은 시각적인 부분으로만 감상해야 하다 보니 음악영화보다 흥미가 떨어졌던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에곤 쉴레' 살아오며 한두 번 정도는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러나 잘 알지는 못했고 에곤 쉴레의 어떤 그림이 유명한 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기억 저편에 숨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먹던 밥 숟가락을 내려두고 구태여 검색하거나 찾아보지는 않았다. 어차피 영화를 보면 알게 될 내용들이었으니까. 그런 수고로움은 하지 않기로 했다.


밥을 먹으며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30분 정도가 지났다. 영화와 음식에 집중하느라 단절되었던 30분의 침묵을 깨고 그녀가 말을 꺼내었다.


"어려서 예술가들을 좋아했던 걸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게 들려오는 말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의 눈빛이 추억에 대한 회상과 동경에 반짝였다면. 영화가 시작된 30분 후의 눈빛은 실망과 어딘지 모를 불편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나 역시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서부터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예술활동이라는 미미한 목적 아래에 감추어져 있는 현실에 대한 도피, 그로 인한 주변 사람들의 힘듦과 고통들은 나와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딘지 모르게 위태로워 보여"


그녀의 말과 동시에 실컷 술을 들이켜고, 춤을 추고, 잠자리를 갖는 모습의 에곤 쉴레가 눈에 들어왔다. '위태로움' 확실히 그랬다 예술가가 되겠다며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위태로워 보였다. 그 위태로움이 어린날의 우리에겐 동경의 대상이 되게 만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시간에 할당된 공부의 양을 다 채워야 했던 우리에게 흥청망청이라 표현할 수 있는 그들의 삶은 부러웠고 그런 삶을 살아보는 것을 꿈꾸게 만들었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자유스러운 모습을 가진 이들이 더 쉽게 우리를 현혹하지 않았겠는가.


20대 중반의 나는 '예술'이라는 단어 아래에 잠재되어 있던 '심취함'과 '영감'에 대한 것을 느껴보고자 했었다. 결코 자랑은 아니지만. 노력했다. 느껴보려고. 그리고 잘못된 노력들을 해 보았다.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한 손엔 술을 한 손에는 불 붙인 담배를 들고 마시고 들이쉬며 아이디어를 짜내어 보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아이디어들은 곧 잘 나오기 마련이었다. 아무런 고뇌가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아이디어들 처음엔 몰랐다. 그 생각들이 오히려 독이 될 거라는 것에 대하여. 자극으로 인한 한두 번의 아이디어 메이킹은 나를 또다시 술, 음악, 담배의 세계로 안내했고. 아이디어에 대한 갈증은 커갔지만 고뇌 없는 아이디어는 고갈되어 갔다. 그리고 그 깊이도 점차 사그라져갔다.


어느 날이었다. 스스로의 작업물에 흔히 말하는 영혼이 없다고 느껴진 것은. 잘못된 노력의 산물들을 되돌아보자니 온통 자극적인 것들 뿐이었다. 남들이 혹 할만하기는 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것들. 그 결과물들을 보는 내 머릿속에서는 술과 담배에 취해 신나게 흔들어대던 스스로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렇게 나는 그 생활을 끊어 냈다. 껍데기와 같은 모습들 때문에.


나는 위태로워 보인다는 그녀의 한마디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했다. '에곤 쉴레'처럼 내가 심취하고 영감을 간절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미친 듯 "그렇지 그렇지"라는 단어를 반복해 내뱉을 수 있었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심취와 영감을 찾기엔 지나치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동경하던 그들의 삶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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