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면접 & 첫출근 이야기 1
나는 시설관리직 공무원이다. 공무원 세계에서는 행정직에게 밀리는 기술직이지만 특별한 기술도 없어서 깍두기처럼 그냥 공무원에 껴주는 애매모호한 직렬이다. 그래도 어디 가면 공무원이라고 무시는 잘 안 받는다. 공무원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2016년 나는 공무원이 되었다. 2015년 노량진은 공시를 준비하는 청춘들로 온통 가득 찼다. 책으로 꽉 찬 가방을 멘 것도 모자라 프린트와 책을 한 보따리 품에 안고 종종걸음을 걷는 사람들은 내 기억에 별로 없었다. 다들 츄리닝을 입고 뭔가 바쁘고 분주한데 전체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때 공시세계에서 유명한 일타 국어 선생님이었던 이선재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니! 어떻게 된 게 저녁시간 노량진에 노래방, 술집에 자리가 없다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확실히 노량진은 놀자판이었다. 공무원 경쟁률이 60:1 정도였으니까 꽉 찬 교실에서 한 명이 합격할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현실적으로 59명은 떨어지는 거다. 2014년에 서울시 공무원을 2,104명 뽑는데 지원자가 128,526명이 지원했으니 126,42명은 떨어지고 다른 일을 알아보던가 재수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2016년 노량진에는 수 만 명이 있었다. 수 만 명을 10단계 공부등급으로 나눈다면 최고 높은 단계인 1단계와 2단계 그룹을 제외하고는 현실적으로 공무원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는 3~10단계 그룹은 절대로 공무원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도 1~10단계 수많은 사람들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밥시간이 되면 밥집은 배고픈 참새떼들로 가득 차서 조잘조잘을 넘어 왁자지껄한 이야기소리가 넘쳐났다. 노량진 메인스트리트 컵밥거리는 버라이어티 한 야시장을 방불케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독서실을 알아보려고 다니다가 4층정도 되는 독서실 안쪽에 창가 옆 좋은 자리가 보였다. 창문을 열면 길건너편 푸른 언덕은 눈의 피로뿐만 아니라 마음도 릴랙스 하게 해 주고 시원하게 뻗어있는 아스팔트 도로 위로 차들이 달리며 경쾌한 백색소음을 내주었다. 어두침침하게 암전 된 독서실에서 스포트 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햇살이 빛나는 최고의 자리였다.
자리를 가보니 책상 위에는 부드러운 재질의 커버가 깔려있었다. 피부의 마찰력을 최소화했으며 차가운 책상 표면의 온도로부터 소중한 체온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책상 위에 붙어있는 일체형 책장 위로 눈길이 갔다. 문학 전집들이 빼곡히 꽂혀있었는데 절대로 보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너무 빡빡하게 꽂혀있었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꺼내서 보려면 웬만한 다짐 없이는 볼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수험생활의 성패는 책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렸다. 보지도 않을 책들을 쌓아놓는 것은 장수생이 되는 비결이다. 역시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책상도 깨끗했다. 공부하는 자리는 특유의 느낌이 있는데 그 자리는 공부와는 상관이 없는 최고의 자리였다. 노량진에는 그런 자리가 많았다.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공무원이 됐냐면 나는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일반행정직 공채로 들어간 게 아니었다. 군대에서 무릎을 다쳐 의병제대를 했고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국가보훈처에서 진행하는 국가유공자 특별전행 시험이 있었는데 경쟁률이 3:1 정도였다. 그리고 과목도 사회와 한국사 두 과목만 시험을 봤다. 하지만 특별채용에서는 행정직을 뽑지 않았다. 운전직, 방호직, 시설관리직을 뽑았는데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시설관리직에 지원했다. 시험이 다가오는데도 사회 공부가 잘 안 되었는데 다행히 인강 선생님을 잘 만나 사회과목 점수를 괜찮게 받을 수 있었다.
시험당일 시험장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험시간과 과목분배가 어떻게 되는지조차 모르고 오신 분들도 있었다. 시험지를 받고 문제를 풀어보니 난이도도 어렵지 않았다. 모르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두 과목 모두 100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부를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나는 인생에서 거의 유일하게 웃으면서 시험장을 나왔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시험을 잘 봤다고 말하지 않았다. 시험을 잘 봤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합격하는 걸 잘 못 봤다. 공부하면 알아주는 우리나라의 엘리트 중에 엘리트인 반기문 총장도 시험을 보고 왔을 때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나도 따라 했다. 필기시험 발표가 나고 예상대로 합격이었다. 그런데 100점은 아니었다. 100점을 맞으려면 200점을 맞을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새삼 알게 되었다. 진짜 100점은 아무나 맞는 게 아니었다.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여기저기 면접학원을 알아보기만 하다가 시간만 계속 흘렀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시간인데도 바보처럼 면접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 도서관에서 스피킹 강사의 책들을 보며 말하기 관련 책들만 읽었다. 예상 질문에 대해 준비하고 모의 면접처럼 실제로 면접 보는 훈련을 했어야 했는데 그런 중요한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면접 며칠 전날 엄마, 아빠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정장을 하나 샀다. 짙은 푸른색의 유명 메이커 정장이었다. 면접 당일 아침이 되었다. 집을 나서기 전 엄마가 응원의 말을 해줬다.
"황소를 때려잡는 패기로 파이팅!"
나도 엄마의 말을 따라 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들어 올렸다. 서울시인재개발원에 가야 해서 남부터미널에서 내려서 미용실을 찾아서 머리를 깎았다. 면접 보러 간다고 단정하게 깎아달라고 했는데 시골 총각이 다방에서 선볼 때 어색하게 머리에 기름을 바른 것처럼 이상했다. 뭐 어쩔 수 없이 돈을 내고 면접장으로 갔다.
서울시인재개발은 우면산 숲 속에 있었다. 어느 정도 산을 타야 하는 등산 코스다. 인재개발원에 도착해서 면접대기실로 들어가니 다들 경직된 자세로 앉아 있어 긴장감이 흘렀다. 다들 면접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았다. 사실 성적순으로 합격여부는 이미 결정되었고 사이코패스가 아니면 면접 결과만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점수가 높았던 나는 더 떨어지기 싫은 마음이 들어서였는지 진짜 너-무 떨렸다.
내 차례가 되고 면접실에 들어갔다. 앞에는 세명의 면접관이 앉아있고 그 앞에 반성의 의자 같은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자리에 앉아마자 나는 얼어붙었다. 너무 긴장을 한 것이다. 내 몸이 이렇게 뻣뻣해질 수 있나 싶었다. 마치 로보트가 된 것 같았다. 극도로 긴장을 한 나를 보고 걱정이 되었는데 면접관들을 웃으면서 긴장을 풀라고 했다. 그 말에 약간 긴장이 풀렸다. 첫 번째 질문이 날아왔다.
"가장 최근에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무엇인가요?"
"최근에 교회에서 여름 수련회를 잘 다녀왔습니다."
내 대답이었다.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다. 망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동문서답도 이런 동문서답이 없었다. 수습이 어려울 것 같은 면접관은 두 번째 질문을 날렸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역시 대답이 별로였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나요?"
"공무원이 돼서 좋은 정책을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나는 시설관리직도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줄 알았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면접을 완전히 망친 나는 마지막 히든카드를 꺼냈다. 엄마가 아침에 해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황소를 때려잡는 패기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용기를 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면접관들은 마지막 멘트가 재밌었는지 웃었고 나는 나왔다. 준비를 하나도 안 하고 면접은 참담했다.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 그때 면접 규칙이 있었는데 면접자는 면접 후 바로 집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면접을 보고 대기자에게 면접 질문들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까먹고 인재개발원을 구경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러다 산책하는 것처럼 대기자들이 있는 건물까지 갔다. 그때 생각났다. 면접 규칙이 말이다. 이런 제기랄!
나는 서둘러서 자리를 도망쳤다. 면접탈락자가 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허겁지겁 우면산을 내려오는데 양심에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 중대한 규칙을 어겼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공중전화기로 가서 인재개발원에 전화를 했다. 나는 오늘 면접을 본 사람인데 바로 집에 가야 하는 데 가지 말아야 할 구역을 구경 갔다고 면접 규칙을 어겼다고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은 혹시 내 번호를 추적해서 나를 떨어뜨릴까 봐 걱정돼서였다.
인재개발원 직원은 괜찮다고 그냥 집으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괜찮냐고 재차 물었고 별일 없었으면 됐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사실을 말했더니, 엄마는 그것 때문에 내가 떨어질 거라고 했다. 양심의 가책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금방 그것도 까먹었다. 참 아이러니하고 단순한 인간이다. 합격자 발표당일, 합격 소식을 들었다. 내가 합격했다는 사실보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좋았다.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점심에 부모님과 함께 중화요릿집에 가서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